사회

헬멧이 자전거를 죽일지도 모른다

입력 2018.07.08. 09:16 수정 2018.07.0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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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자전거 헬멧 의무화'의 역설

자전거 사망사고 증가하자
헬멧 착용 의무화, 9월 시행키로
헬멧의 보호 효과는 인정하지만
'자전거 인구 감소' 부작용 우려

호주·미국 시행 중, 유럽은 보류
"자전거 인구 줄면 더 위험해져"
늘어나던 공공자전거도 '비상'
"전용도로 개선 등 제도 보완을"

[한겨레]

유럽자전거연합을 비롯해 헬멧 의무화 반대론자들은 헬멧의 실질적인 부상 감소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자동차와의 충돌 같은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면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 자전거 이용자들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오는 9월부터 시행됩니다. 동네 슈퍼에 갈 때도, 한적한 시골길을 느리게 달릴 때도 헬멧을 쓰지 않으면 ’불법’이란 말입니다. 아직 처벌 조항은 없으니 불법이라도 그냥 예전처럼 헬멧 없이 타게 될까요. 아니면 귀찮고 돈이 들더라도 헬멧을 마련해 쓰게 될까요. 그것도 아니면 자전거, 그까짓 거 안 타고 말까요.

병아리색 티셔츠를 입은 배우 한석규가 책을 읽으며 서 있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그의 앞을 지나간다. 지나치면서 자전거 후사경(백미러)을 돌려 빛을 반사시켜 한석규의 눈에 비춘다. 살짝 찡그렸다 이내 활짝 웃는 한석규. 그리고는 유명한 카피를 읊조린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1993년 전파를 탄, 서른살 조연 배우 한석규를 유명하게 해준 한 의류업체의 텔레비전 광고다. 이후 배우 정우성, 김태우로 주인공이 바뀌었지만 이 카피는 계속 쓰였다.

영화나 드라마, 광고 속 자전거는 주인공의 등장에, 낭만적인 만남의 도구로 즐겨 쓰였다. 그런데 만약 자전거를 탄 주인공이 헬멧을 쓰고 있다면 어떨까. 머리를 반쯤 덮은 헬멧을 쓰고 일상복을 입고 ‘생활형’ 자전거를 느릿하게 타는 주인공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헬멧을 쓰지 않으면 자전거 타는 장면을 찍을 수 없다고 한다면? 자전거는 ‘낭만적’ 영상에선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9월부터 처벌 없는 헬멧 의무화

오는 9월28일부터 적어도 합법적으론 헬멧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된다. 자전거 운전자 및 동승자의 헬멧(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로는 물론이고 차도나 인도(보도)에서도 적용된다. 지금까진 자전거에 어린이를 태울 때에만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었다. 이용자들의 혼란과 반발을 우려해 처벌 조항은 넣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헬멧 착용문화가 정착된 후에 처벌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지난 3월28일 법안이 통과된 이후 낸 보도자료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자전거 사고로 인한 응급 환자 중 머리 부상자가 38.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또 헬멧을 착용할 경우 머리 부상 정도가 8%~17% 줄어든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실험 결과를 언급하면서 “(헬멧이) 중상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9월 성인 머리모형(4.5㎏)을 이용해 낙하실험을 했는데, 모형을 자전거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20㎞로 떨어뜨린 결과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을 때 중상 가능성이 95.1%인 반면 착용한 경우엔 15.0%였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최근 5년간 자전거 교통사고 분석결과’를 보면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 대책 마련은 시급해 보인다. 2015년 6920건이던 자전거 교통사고는 2016년 5936건, 2017년 5659건으로 감소했지만, 사망자는 2015년 107명에서 113명(2016년), 126명(2017년)으로 증가했다. 2013년부터 5년 간 자전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1340명 중 헬멧 착용 여부가 확인된 94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09명(11.2%)만이 헬멧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941명 중 65살 이상 사망자는 556명이었는데 이들의 헬멧 착용률은 7%에 불과했다.

헬멧 의무화→자전거 이용 감소?

자전거 헬멧이 부상 위험을 줄인다는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산악자전거(MTB)나 도로사이클을 타는 이른바 ‘레저형’ 이용자들은 헬멧을 ‘필수품’으로 여긴다. 동호회 등에서 주최하는 단체 ‘라이딩’(모임)은 ‘헬멧 필수’를 참가 조건으로 내걸고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전거 헬멧을 굳이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헬멧을 찾아서 착용하는 이들이다.

자전거 헬멧 착용이 의무화하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목적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공원의 대여소 등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는 이른바 ‘생활형’ 이용자들이다. 처벌 조항이 없다지만 헬멧을 써야한다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까닭에 공공자전거나 자전거 대여점들은 자전거와 함께 헬멧을 ‘필수적으로’ 비치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을 구입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 것을 빌려야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호주는 1990년대 초반 세계 최초로 자전거 ‘헬멧(의무화)법’을 시행했고, 최근엔 헬멧 의무화가 자전거 이용 감소를 초래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45개국 81개 자전거 단체가 모인 비정부기구(NGO) 유럽자전거연합의 자료를 보면, 2011년에 조사한 호주의 자전거 인구는 1980년대 후반에 비해 37.5%가 줄었다. 특히 성인에 비해 어린이들의 이용률 감소 폭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에선 법 개정 요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의 최대 자전거 단체인 ‘바이시클 네트워크’가 지난해 8월부터 두달 동안 1만93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헬멧법이 수정돼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0%가 헬멧 착용을 강제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더 자주 타겠다고 답했다.

자전거 이용자의 감소는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중보건 전문가인 피터 린든 제이콥슨은 2004년, 유럽 나라들의 자전거 인구의 변화와 사고 발생 빈도 등을 분석한 결과 “자전거 인구가 많을수록 자동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결론을 내놨다. 자전거가 많을수록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더 의식하거나 배려하게 되고, 그들 역시 자전거 이용자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제이콥슨은 “따라서 자전거 이용자를 늘리는 정책이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나 독일 등 유럽의 자전거 강국들이 헬멧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 이유도 ‘자전거 인구 감소’라는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인구가 줄면 자전거 타기가 더 위험해진다’는 결론엔 헬멧 의무화 반대론자는 물론이고 찬성론자들도 동의한다. 유럽자전거연합은 “헬멧법은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대신 자전거 이용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다른 조치와 비교했을 때 효과적이라는 확실한 증거 없이 헬멧법을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자전거연합을 비롯해 헬멧 의무화 반대론자들은 헬멧의 실질적인 부상 감소(방지)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유럽자전거연합은 △자전거 헬멧은 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에 대한 저항성 여부만을 테스트해 생산되며 △호주와 스웨덴에서 ‘헬멧법’ 도입 이후 머리 부상이 감소하지 않았고 △헬멧이 회전 손상(신체가 회전하면서 입을 수 있는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효과에 의문을 품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도시자전거연구소 마르코 테 브뢰멜스트룻(Marco te Br?mmelstroet) 소장은 2015년 10월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헬멧의 보호 효과는 자전거 이용자가 자동차와 충돌할 때가 아닌 홀로 넘어졌을 때 정도로 제한적이다. 시속 32㎞(20마일)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부딪혔을 때 헬멧은 자전거 이용자를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머리나 얼굴 부상은 자동차 사고에서도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자동차 운전자에게 헬멧을 쓰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통사고 발생률이나 교통 인프라가 한국과 다른 유럽의 연구 결과를 한국 상황에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나온다. 사단법인 자전거21의 오수보 상임대표는 “헬멧의 효과는 해당 나라의 교통문화나 인프라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하는 게 더 합리적인데, 일본의 경우 자전거 헬멧을 착용했을 때 사망 요인이 3배 정도 감소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다만 (헬멧) 의무화가 아닌 권장하는 쪽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공영 자전거를 운영 중인 지자체들의 입장도 난처한 상황이다. 이용률 감소가 뻔히 예상되지만 이미 법개정이 끝난 마당이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2만대를 돌파한 서울시 공영 자전거 ‘따릉이’는 이번달 중순부터 한달 동안 이용자가 많은 여의도 일대에 헬멧 400개를 마련해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볼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일 세척한 헬멧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 함께 비치할 예정이다. 한여름이라 사용자 불만도 예상되고 분실도 걱정되지만 바뀌는 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4년부터 헬멧을 함께 제공 중인 대전시의 공공 자전거 ‘타슈’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파손되거나 분실되는 헬멧 비율이 90%에 이른다. 예산 낭비라는 비난도 듣고 있다”며 “개인 안전 장비는 이용자 스스로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운영 중인 자전거무료대여소 ‘두바퀴쉼터’ 에 붙은 개정된 도로교통법 안내문. 두바퀴쉼터는 100여대의 자전거와 20개의 자전거 헬멧을 대여하고 있는데, 헬멧 이용률은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배려문화·도로 개선 등 없으면…

헬멧 의무화로 인한 자전거 이용률 감소 우려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그런 반론을 모르진 않으나 (법 개정엔) 당장 지금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안전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측면이 있다”며 “자전거를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헬멧 의무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배려하는 문화를 먼저 조성해야지 자전거에 안전 장치를 덮어 씌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헬멧 의무화를 도입했을 때 기대되는 이익과 교통혼잡, 환경오염 등 자전거 이용률 감소로 인해 잃게 될 것들을 비교해야 한다. 유럽에서 왜 헬멧 의무화를 도입하지 않는지, 의무화를 시행 중인 호주에서 왜 법률 개정 요구 목소리가 커지는지 생각해보라. 기대되는 효과에 비해 잃는 게 더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자전거 이용자들은 헬멧 의무화가 오히려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굴레가 되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지금도 자전거가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에선 자전거 이용자의 과실 여부를 철저히 따진다. 헬멧 착용이 의무화하면 법이 규정한 헬멧 착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전거 이용자의 과실 책임을 더 많이 물을 수 있게 된다. 자전거를 대하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태도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 약자인 자전거 운전자의 부담만 키우는 결정이라는 비판이다.

현재 자전거 교통사고의 75% 이상이 자전거와 차(자전거 포함)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데, 사고의 또다른 상대방인 자동차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것도 자전거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형식적인 자전거 우선도로·자전거 전용도로 제도의 개선 △도심에서 자동차 제한 속도의 하향 조정 △자동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자전거 교육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도에선 보행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람에게 밀리고, 차도에선 ’왜 자전거가 도로로 나왔냐’며 자동차에게 밀리는 게 대한민국 자전거의 현실이다. 자동차의 ‘전투력’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절대 열세인 자전거에게 헬멧을 씌운다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까. 흩어져서 세력이 약해진 집단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헬멧이 자전거를 궁지에 몰아넣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