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설득 못한 '붉은 물결', 여자는 왜 화났나
불법촬영(일명 몰카) 편파수사를 주장하는 여성 수만 명이 또다시 서울 대학로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여성들만의 대규모 시위가 벌써 3번째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편파수사가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여성계 전문가들은 오히려 대통령의 발언이 여성들을 또다시 거리로 불렀다고 분석했다. 눈앞의 사안에 논리와 이성으로 접근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동안 쌓여온 여성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빨간 물결, 무더위도 아랑곳 않는 수만명 여성 시위대
7일 오후 3시부터 서울 혜화역 일대는 또다시 붉은 물결로 가득했다. 지난달 집회(주최측 추산 2만2000여명·경찰 추산 1만5000여명)보다 더 많은 3만여명(주최측 추산·경찰 추산 1만7000명)이 모였다.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에 참가한 여성들은 주최 측이 정한 빨간색 옷과 소품을 갖춰 대학로를 찾았다. 빨간색은 여성들의 분노를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정한 색이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달 9일 열린 집회만큼 대규모 인원이 참가했다. 이들은 서울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혜화역) 방향 약 700m 구간 4개 차로를 점거했다.
집회 주최측은 이날 "한국 여성 시위 역사상 유례없는 인원이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며 "그러나 청와대의 답변은 부실했고 실질적으로 제도가 개선되거나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두려움, 피해자가 됐을 때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시달려 왔다"며 "7월의 더위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분노와 의지, 용기를 보여주자"고 말했다.
◇편파수사 시비는 '방아쇠', 논리적 설명 안 먹혀…전통적 여성성 거부 '삭발식'도
집회 이름은 '편파수사 규탄'이지만 불법촬영으로 상징되는 일상적 성폭력 전체를 문제 삼고 있다.
편파수사 시비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주최 측은 "(홍대 몰카 사건에서) 여성이 피의자일 때 사회적 집중도와 언론의 주목도가 달랐다"며 "(여성 피의자를) 구속 수사한 방식과 사건 처리 속도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인멸을 시도해 구속됐고 피의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는 강의실이란 특성 때문에 사건 처리가 빨랐다는 당국의 '논리적 설명'은 이미 터져버린 분노 앞에서 무력했다.
경찰 지휘부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비판만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달 3일 국무회의에서 홍대 몰카 사건과 혜화역 시위에 대해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 "일반적인 (사법)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 더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높았다"고 발언했다.
주최측은 이날 "대통령은 사회적 처벌의 미온함 논의로 여성들의 문제의식을 축소하려 했다"며 "여성들의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폭력 해결 촉구를 넘어 사회 속에서 규정된 여성성 자체를 거부하는 양상도 보였다. 긴 머리를 잘라버리는 삭발식이 지난번 집회에 이어 또 진행됐다. 이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등을 4명이 잘랐다. 이중 3명은 완전히 삭발했다.
◇여성계 "분노 이해하고 근본 대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혜화역 시위 등으로 확산하는 페미니즘(여성주의)이 극단적 성대결로 치닫는 것을 경계한다. 성차별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로 해결해야 하는 만큼 남녀 간에 소통과 대화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계 인사들은 성차별에 시달려온 여성의 분노를 이해하고 근본 해법 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정부가 나름대로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며 "(불법촬영) 관련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고 정부 발표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었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집회 참가자들은 국민으로서 왜 차별받아야 하는지를 규탄하는데 여성의 집회를 단순히 남성에 대한 혐오로 보는 것 역시 문제"라며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분노의 크기와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대규모 집회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는 "여성들은 성폭력 범죄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워 집회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가시적 변화가 없다면 여성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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