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비무장지대 뒤덮은 지뢰 100만개..제거 가능할까

박수찬 2018. 7.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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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공병대원이 지뢰제거 과정을 익히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비무장지대(DMZ). 6.25 전쟁이 탄생시킨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공간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북으로 2km씩 후퇴하고 그 사이의 공간인 DMZ에는 중화기 반입이나 군대 주둔을 금지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라 불러야 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무기가 집중배치된 한반도의 화약고로 변한 지 오래다.

지뢰는 한반도의 화약고인 비무장지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다. 땅에 묻혀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아 폭발하기 직전까지는 존재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잘못 건드리면 발가락이나 발목, 다리를 절단해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야만적인 무기다.

비무장지대에는 지뢰가 100만여개 이상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한 군대가 6.25 전쟁 이후 60여년 동안 대치하면서 비무장지대에 지뢰를 매설한 결과다. 지금도 DMZ에 산불이 발생하면 땅에 묻힌 지뢰가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육군이 지뢰제거 작전 도중 발견한 M14 대인지뢰. 장마에 유실된 지뢰들이다. 육군 제공

4.27 판문점 선언 직후 남북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군사적 대치 국면이 해소되면 DMZ를 실질적 의미의 DMZ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DMZ 지뢰제거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

지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277년 중국 송나라에서였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의 지뢰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등장했다.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그 앞에 지뢰를 매설했다. 참호를 공격하기 위해 돌격하던 적군은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지뢰에 가로막혀 정지해야 했다. 이 때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차를 파괴하는 대전차지뢰가 등장했다. 6.25 전쟁과 중동전쟁 등 20세기 주요 전쟁에서도 1억개 이상이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널리 쓰였다.
지뢰제거 작업 도중 발견된 M15대전차지뢰. 미국 육군 제공

지뢰는 장갑차나 전차를 파괴하는 대전차지뢰와 사람을 공격하는 대인지뢰로 구분된다. 대전차지뢰는 수백kg에 달하는 무거운 압력을 받으면 폭발한다. 대인지뢰는 폭풍지뢰와 파편지뢰로 나뉜다. 폭풍지뢰는 폭발압력으로 다리 아래를 다치게 해 발목지뢰라고도 불린다. 파편지뢰는 파편을 수m까지 튀어 올라 폭발 반경이 넓고 살상력도 강하다. 
미국 해병대가 지뢰지대 통로 개척장비 미클릭(MICLIC)으로 미확인지뢰지대를 폭파하고 있다. 미국 해병대 제공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지뢰는 클레이모어다. 자면에 설치되는 클레이모어는 플라스틱 폭약과 쇠구슬이 들어있다. 폭발하면 쇠구슬이 일시에 특정 방향으로 퍼져 살상효과가 매우 크다. 지뢰와 달리 별도의 점화장치가 있어 원하는 시간에 폭발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클레이모어인 미국제 M-18은 1960년부터 미국 육군에 배치돼 베트남 전쟁에서 널리 쓰였다. 사용법에 따라 클레이모어 한 발로 1개 소대를 전멸시킬 수 있어 베트콩과 월맹군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DMZ 매설된 지뢰, 단기간 내 제거 가능할까

DMZ는 남북한 군이 매설한 100만여발의 지뢰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것은 정치적, 기술적으로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연합뉴스

우리 군이 매설한 지뢰는 M-14와 M-16 대인지뢰, M-15 대전차지뢰다. 전방 지역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M-14는 1955년 미국에서 개발된 것으로 신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구성됐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100g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 탐지도 쉽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대인지뢰를 개량한 M-16은 신관을 건드리면 지하에서 튀어 올라 공중폭발한다. 

북한은 목함(PMD-57), 수지재(PMN), 강구(BBM-82)지뢰와 ATM-72, ALM-82 대전차지뢰 등을 사용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목함지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탐지가 어려운 비금속 지뢰다. 2015년 8월 북한군은 목함지뢰를 DMZ로 통하는 문에 설치해 우리 군 장병 2명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2010년 7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사미천에서 주민 2명이 북한 목함지뢰를 가져가는 과정에서 지뢰가 폭발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 때부터 수년간 합동참모본부는 매년 여름철에 목함지뢰 주의보를 내리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DMZ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방안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달 6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DMZ 내 유해발굴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군 안팎에서는 “DMZ 지뢰제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DMZ 남측 지역 내 미확인 지뢰 지대는 97㎢로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한다. 그나마 DMZ 북측 지역에 북한이 매설한 지뢰는 추정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양측 모두 지뢰지대를 표시한 지도가 있으나 폭우나 홍수, 산사태 등으로 유실되면서 정확도가 크게 떨어져 위험성이 높다. DMZ 내 유해 공동발굴 전 지뢰제거가 필수적인 이유다. 실제로 2000년 남북 경의선 철도, 도로 건설 합의 이후 남측 지역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3만6000여발의 지뢰를 찾아내 제거한 바 있다.

DMZ 지뢰제거가 단기간 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DMZ 지뢰제거는 남북이 합의를 해야 가능하지만 북한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지만 군사 분야의 신뢰 구축은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군 소식통은 “DMZ에 지뢰가 있는데도 북한 군인이 지뢰지대를 뚫고 귀순한 사례가 적지 않고, 판문점처럼 지뢰가 없는 곳은 자동차를 몰고 넘어온 적도 있지 않느냐”며 “DMZ에 지뢰가 없어진다면 남한으로의 귀순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해 북한이 지뢰제거에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2015년 11월18일 국회 국방위 청원심사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박재민 당시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은 공병 3개 중대가 1년에 제거할 수 있는 면적을 묻는 질문에 33만㎡라고 답했다. 전국에 산재한 미확인지뢰지대는 9283만㎡. 이 중에서 민통선 이북 지역에 위치한 미확인지뢰지대가 9044㎡다. 군 독자적으로 제거하려면 약 300년이 걸린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은 지뢰제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한 아르헨티나군은 2만여발의 지뢰를 매설했다. 아르헨티나군이 철수한 직후 영국군이 지뢰제거에 나섰으나 인명피해가 속출해 1400발만 제거한 채 제거 작전을 중단하고 미확인지뢰지대를 설정해 사람의 출입을 금지했다.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고, 무게가 가벼워 지뢰를 밟아도 문제가 없는 펭귄들의 서식지로 바뀌었다.

군 당국도 2015년 8월 북한군 지뢰도발 직후 지뢰 탐지 및 제거 능력 향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뢰지대 통로 개척장비 미클릭(MICLIC)과 KM9 공병전투차 등을 운용중인 군은 지뢰제거 능력을 갖춘 장애물개척전차를 2020년대 초까지 도입하고 비금속지뢰 탐지도 가능한 신형 지뢰탐지기도 갖출 예정이다. 폭발물 탐지 제거 로봇을 개량해 지뢰제거에 투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드넓은 DMZ 내 지뢰지대를 제거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같은 현실적 문제를 들어 DMZ 전역에서 일괄적으로 지뢰를 제거하기보다는 경의선, 동해선 철로와 도로 건설처럼 남북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특정 지역부터 점진적으로 지뢰를 제거하는 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강원도 철원 DMZ 내 궁예도성지 공동발굴, DMZ 평화공원 조성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은 청정지역인 DMZ 생태 환경이 지뢰제거 과정에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DMZ 내 지뢰제거가 실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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