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급의 앤더슨 실바와 웰터급의 조르주 생 피에르가 2000일 넘게 챔피언 벨트를 사수하며 '독재 시대'를 구축하던 시절, 격투팬들은 언제나 챔피언이 승리하는 타이틀전 결과에 슬슬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격투팬들과 언론들 사이에서 강하게 추진됐던 경기가 바로 실바와 GSP의 슈퍼 파이트였다. 패배를 모르는 무적의 챔피언들이 맞붙는 것은 당시 UFC팬들에게는 최고의 '드림매치'였다.

하지만 실바와 GSP의 슈퍼파이트는 소문만 무성한 채 끝내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 쪽이 체급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두 체급 사이 중간 지점에서 계약체중 경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평소 체중이 90kg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진 실바가 80kg 초반까지 감량을 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GSP 입장에서도 4~5kg을 증량한다고 해서 비약적인 파워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서로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매치였다.

이처럼 '챔피언 vs. 챔피언'의 슈퍼파이트는 격투팬들의 단골 논쟁거리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는 8일(이하 한국시각)에 열리는 UFC226에서는 '챔피언 vs. 챔피언'의 슈퍼파이트, 그것도 헤비급 타이틀이 걸린 대결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내려 격투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는 사나이들은 UFC 헤비급 챔피언 스티페 미오치치와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다.

'이겨도 본전'이지만 미오치치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챔피언의 슈퍼 파이트는 두 남자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챔피언의 슈퍼 파이트는 두 남자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 UFC.com 화면 캡처


지난 2014년 두 살 어린 주니어 도스 산토스에게 판정으로 패할 때까지만 해도 미오치치는 그저 헤비급 중위권의 다크호스에 불과했다. 물론 준수한 복싱을 앞세운 타격은 물론 그라운드&파운드 능력 역시 평균 이상이었다.하지만 미오치치는 케인 벨라스케스의 레슬링, 도스 산토스의 한 방, 파브리시우 베우둠의 주짓수 같은 확실한 특기가 없어 타이틀 전선에 올라오기엔 한계가 뚜렷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미오치치는 격투팬들의 섣부른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스 산토스전 패배를 계기로 무섭게 성장했다. 2015년 5월 마크 헌트와의 경기에서 신장의 우위를 앞세운 원거리 타격으로 헌트를 5라운드 KO로 잡은 미오치치는 2016년1월 안드레이 알롭스키와의 대결에서도 54초 만에 일방적인 KO승을 따냈다. 그리고 2016년5월 (언제나처럼) 부상으로 빠진 벨라스케스의 대타로 들어간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베우둠을 KO로 꺾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챔피언이 된 후 미오치치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고향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1차 방어전에서는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4분 만에 KO로 제압했고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도스 산토스와의 2차 방어전 역시 1라운드를 넘기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 마지막 패배 이후 5연속 KO승의 쾌속질주. 그 중에서 1라운드 KO승만 4차례였고 상대를 1라운드에 눕힌 모든 경기에서 보너스를 챙겼다.

그리고 미오치치는 역대 그 어떤 헤비급 챔피언도 넘지 못했던 3차 방어전의 고비에서 카메룬 출신의 하드펀처 프란시스 은가누를 만났다. 은가누의 펀치에 고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미오치치는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은가누의 타격을 무력화시켰고 3라운드부터 체력이 떨어진 은가누를 마음껏 요리했다. 결국 미오치치는 은가누를 판정으로 누르고 UFC 역사상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헤비급 3차 방어에 성공했다.

지난 네 번의 타이틀전을 통해 헤비급 상위권 파이터들을 대부분 정리한 미오치치는 UFC226에서 4차 방어전 상대로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코미어를 상대할 예정이다. 사실 미오치치 입장에서는 낮은 체급의 선수와 싸우는 만큼 '이겨야 본전'인 경기지만 미오치치는 상대를 가려가며 싸우는 '비겁한 챔피언'이 아니다. 사실상 헤비급 정리를 끝낸 미오치치가 노련한 올림픽 레슬러를 상대로 어떤 경기 내용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불혹 앞둔 노장 챔피언 코미어의 마지막(?) 도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코미어(오른쪽)는 오는 8일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자격으로 미오치치를 상대한다.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코미어(오른쪽)는 오는 8일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자격으로 미오치치를 상대한다. ⓒ UFC.com 화면 캡처


지난 2015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존 존스에게 생애 첫 패를 당한 코미어는 이후 존스에게 설욕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존스는 약물 규정 위반 등으로 징계를 받으며 옥타곤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코미어는 그 사이 앤서니 존슨을 꺾고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전과 존슨과의 재대결에서 차례로 승리하며 2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2017년 7월 코미어는 다시 만난 존스에게 3라운드 KO로 무너지며 벨트를 빼앗겼지만 존스는 챔피언을 탈환하고 한 달이 지난 2017년8월 다시 금지약물이 적발되며 챔피언 벨트를 박탈 당했다. 다시 타이틀을 되찾은 코미어는 지난 1일 3차 방어전에서 스위스의 볼칸 우즈데미르를 2라운드 KO로 제압했고 두 번이나 약물에 적발된 존스와의 재대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서둘러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의 절대강자 미오치치와 코미어의 슈퍼파이트를 추진했다. 절친 벨라스케스의 존재 때문에 미오치치와의 대결을 꺼렸던 코미어도 벨라스케스가 양해 의사를 밝히자 대결을 수락했다. 미오치치도 만 35세(1982년생)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1979년생 코미어의 경우 곧 불혹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이다.

코미어는 UFC로 흡수된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헤비급이 낯설지 않은 파이터다. 하지만 미오치치는 UFC 헤비급에서 3차 방어까지 성공한 격이 다른 챔피언이다. 신장 180cm, 팔길이 184cm의 코미어가 203cm의 리치를 자랑하는 미오치치와 타격전을 벌인다면 승산은 많지 않다. 결국 코미어가 미오치치의 타격을 회피해 주특기인 레슬링을 구사할 수 있는 근거리로 접근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편 코메인이벤트로 열릴 예정이었던 맥스 할러데이와 브라이언 오르테가의 페더급 타이틀전은 할러데이가 뇌진탕 증상으로 이탈하면서 경기 자체가 취소됐다(오르테가는 타이틀전이 아닌 경기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UFC226의 코메인이벤트에는 은가누와 데릭 루이스의 헤비급 경기가 배치됐다. 페더급 타이틀전 무산은 아쉽지만 덕분에 헤비급의 빅매치 2경기를 이어서 볼 수 있는 UFC226대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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