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北 '완전한 비핵화'의 민낯,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박수찬 입력 2018. 7. 7. 10:03 수정 2018. 7. 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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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는 등 지난해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 않다. 북한은 그대로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직후 북한의 비핵화 이행 의지를 바라보는 국내외의 시각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다며 제재 완화 등의 선제적 조치를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핵심적인 분야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대북 협상을 위해 6일 방북한 상황에서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 측면에서의 북한 태도 변화 여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동북아시아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생색은 냈지만 행동은 없었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 등을 선언했다. 지난해까지 핵실험과 탄고미사일 시험발사를 수시로 단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다시 살펴보자. 회의에서 북한은 ICBM 시험발사 중지, 핵 비확산, 핵무기 선제 사용 포기 등을 천명했다. 이 중에서 핵 비확산과 핵무기 선제 사용 포기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명시된 핵보유국의 의무다. 핵무기 병기화 달성 선언이 더해졌고 핵군축이라는 용어를 썼다.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과 차이가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히 폐기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월 2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핵 비확산 카드로 미국에 생색도 냈다. 핵물질이나 기술 수출은 ICBM만큼이나 미국에 위협적이다.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리스트가 핵물질을 확보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고, 반미 국가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 198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을 하면서 해온 북한은 핵물질을 해외에 이전한 적이 없다. 핵기술 이전에 대해서는 2007년 시리아에 원자로 건설을 시도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바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북한이 시도할래야 할 수 없는 핵확산을 하지 않겠다고 생색을 내면서 미국에 당근을 제시한 셈이다.

핵실험장 폭파도 같은 맥락이다. 핵실험을 6번 진행하면 데이터가 축적되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실험을 할 수 있다. 굳이 핵실험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도 외국 전문가 입회 없이 폭파해 외부 검증도 하지 않았다. 한 예비역은 “북한이 말하는 자발적 비핵화 조치가 핵실험장 폭파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 핵능력의 핵심 요소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량을 늘리고 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탄도미사일 엔진 등에 들어가는 탄소복합재료를 개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함경남도 함흥 소재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외부 공사가 마무리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로켓발사장도 해체 움직임이 없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와 플루토늄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카드로 내놓는 대신 은폐가 용이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와 고농축우라늄(HEU)은 숨겨서 국제사회의 검증을 피하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번째)이 6일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 리용호 북 외무상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한은 비핵국가가 될까, 핵보유국이 될까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협상은 애초부터 북한에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마케팅’을 벌어야 할 상황이다.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2020년 재선이 어려워진다. 임기 안에 북한 비핵화라는 성과를 끌어내 미국을 안전하게 했다는 치적이 필요하다. 독재 체제인 북한에게 시간은 그들의 편이다.

시간에 쫓긴 미국은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란보다 핵능력이 고도화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치적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완전한 비핵화보다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SLBM 탑재 대형잠수함 등 미국 본토 위협 능력 제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는 비핵화가 아닌 부분적 핵폐기에 가깝다.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국내 여론을 반전시키고 북한의 추가 조치를 유도하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 일시 중단에 이어 또다른 양보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핵위기에 직면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강경자세를 취하면서도 무대의 뒷면에서는 많은 양보를 한 전례가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구소련이 쿠바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하는 대가로 쿠바 안전보장과 터키 핵미사일 철수에 이면합의한 사례가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비핵화가 됐지만 군사적 의미에서는 핵보유국으로 간주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이나 핵물질, 연구인력 등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이뤄졌는지 확신할 수 없고, 북한이 성실하게 비핵화조치를 취했다고 해도 실제 비핵화 여부가 증명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선거에 따라 집권하는 정치세력의 성향에 따라 대북 관계가 춤추는 것을 목격한 북한이 문재인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약속이 언제까지 효력을 갖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숨겨둘 가능성도 농후하다. 북한이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지역 내에서만 영향력을 갖는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남을 위험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같은 위험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면 북한에 줄 ‘당근’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가장 큰 이유는 국가안보 때문이었다. 안보를 위해 핵개발에 나선 국가들 중 핵보유에 실패한 국가는 없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 철폐와 냉전 종식으로 국가안보 위험이 크게 낮아지면서 비핵화를 단행했다.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려면 북한의 안보불안을 덜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협정이나 북미 수교가 그것이다. 문제는 평화협정도 북미 수교도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이다.북한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성향과 북한에 대한 불신이 겹쳐지면 북미 수교에 대한 미국 의회의 인준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평화협정도 같은 맥락이다. 종전선언이 거론되지만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북한의 체제 안보를 담보하기에는 부족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섬유와 종이 등을 생산하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시찰하고 공장의 현대화 사업 진행상황 등을 살펴봤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진짜 위기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다. 올해 안에 ICBM 해체 등과 같은 가시적 조치가 없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압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미치광이(Madman) 전략으로 맞설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반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일각에서는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양국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대화 국면이 최악의 위기로 급변한 전례가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다. 1961년 6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로 양측은 최악의 핵전쟁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 정부는 대화 국면이 대치 국면으로 급변할 것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까. 미국이 본토 위협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한국과 일본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비핵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북한과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정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상대할 준비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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