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北 '완전한 비핵화'의 민낯,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는 등 지난해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 않다. 북한은 그대로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 등을 선언했다. 지난해까지 핵실험과 탄고미사일 시험발사를 수시로 단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다.
북한은 핵 비확산 카드로 미국에 생색도 냈다. 핵물질이나 기술 수출은 ICBM만큼이나 미국에 위협적이다.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리스트가 핵물질을 확보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고, 반미 국가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 198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을 하면서 해온 북한은 핵물질을 해외에 이전한 적이 없다. 핵기술 이전에 대해서는 2007년 시리아에 원자로 건설을 시도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바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북한이 시도할래야 할 수 없는 핵확산을 하지 않겠다고 생색을 내면서 미국에 당근을 제시한 셈이다.
핵실험장 폭파도 같은 맥락이다. 핵실험을 6번 진행하면 데이터가 축적되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실험을 할 수 있다. 굳이 핵실험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도 외국 전문가 입회 없이 폭파해 외부 검증도 하지 않았다. 한 예비역은 “북한이 말하는 자발적 비핵화 조치가 핵실험장 폭파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비핵국가가 될까, 핵보유국이 될까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협상은 애초부터 북한에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마케팅’을 벌어야 할 상황이다.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2020년 재선이 어려워진다. 임기 안에 북한 비핵화라는 성과를 끌어내 미국을 안전하게 했다는 치적이 필요하다. 독재 체제인 북한에게 시간은 그들의 편이다.
시간에 쫓긴 미국은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란보다 핵능력이 고도화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치적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완전한 비핵화보다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SLBM 탑재 대형잠수함 등 미국 본토 위협 능력 제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는 비핵화가 아닌 부분적 핵폐기에 가깝다.
이같은 위험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면 북한에 줄 ‘당근’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가장 큰 이유는 국가안보 때문이었다. 안보를 위해 핵개발에 나선 국가들 중 핵보유에 실패한 국가는 없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 철폐와 냉전 종식으로 국가안보 위험이 크게 낮아지면서 비핵화를 단행했다.
진짜 위기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다. 올해 안에 ICBM 해체 등과 같은 가시적 조치가 없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압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미치광이(Madman) 전략으로 맞설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반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일각에서는 6.12 북미정상회담으로 양국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대화 국면이 최악의 위기로 급변한 전례가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다. 1961년 6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로 양측은 최악의 핵전쟁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 정부는 대화 국면이 대치 국면으로 급변할 것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까. 미국이 본토 위협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한국과 일본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비핵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북한과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정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상대할 준비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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