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왜 엄마들은 성남시장을 '마리 은수미네트'라고 부르나

권승준 기자 2018. 7.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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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잠금해제] 월 10만원 아동수당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 추진.. 성남이 부글부글
그래픽=이철원

'마리 은수미네트.' 지난 2일 취임한 경기도 성남시 은수미 시장의 새 별명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굶주린 군중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것이다. 아동수당을 전통시장 등 지역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 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는 은 시장의 공약 때문이다. 이 상품권은 지역 경제 활성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대기업 소속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쓸 수 없다. 현재 이런 지역 화폐는 전국에 60여 종 있는데, 성남이 가장 활성화한 편이다. 아동수당을 받을 가정을 중심으로 "엄마들 대부분이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으로 육아용품을 사는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이에 은 시장이 지난 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저귀는 현금으로 사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 '마리 은수미네트'의 시작이 됐다.

소셜미디어와 30~40대 엄마들이 모인 대형 인터넷 카페엔 매일 은 시장의 아동수당 정책을 비난하는 글이 수십 건 올라오고 있다. 시민 단체들이 반대 집회를 수차례 열고, 공약 반대 청와대 국민 청원도 계속 올리는 실정. 하지만 은 시장은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용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지역 화폐는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장점도 뚜렷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직전 성남시장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6년 이 상품권으로 성남의 만 24세 청년들에게 매년 청년수당 50만원을 주는 복지 정책을 폈다. 이 상품권 청년수당은 전국적으로 '포퓰리즘' 논란을 불러왔지만 비판과 함께 화제도 불러일으켰다. 이를 기점으로 이 지사는 소위 '보편 복지'를 상징하는 정치인 중 하나가 되면서 대선 주자급으로 성장했다.

"기저귀 더 비싸게 사라는 정책"

아동수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부터 시행할 복지 정책이다. 만 0~5세 아동을 둔 가구 중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 가구에 월 10만원씩 지원한다. 수당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가 댄다. 현금 지급이 기본이지만, 지자체별로 실정에 맞게 지급 수단을 정할 수 있다. 은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며, 이 아동수당을 성남 지역 화폐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 대신 성남시 예산으로 지역 내 소득 상위 10% 가구에도 아동수당을 주고, 수당에 1만원을 얹어서 총 11만원을 매달 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선 후에도 이 공약을 대표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우며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은 시장의 공약이 실현되면 다른 지역에 비해 돈을 더 받고 혜택 받는 가구가 늘어난다. 그럼에도 성남의 애 가진 부모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육아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성남 중원·분당·판교 등에 사는 만 0~5세 아동이 있는 10가구(3인 가구)를 무작위로 선정해 가계부를 들여다봤다. 이 가구들은 소득은 연 2500만원부터 9000만원까지 다양했지만 육아용품뿐 아니라 대부분 소비가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 위주로 되어 있는 건 비슷했다. 이들의 월평균 생활비는 약 145만원. 이 중 공과금·집세·통신유류비 등을 제외한 식비·육아용품 구입 등 소비 지출은 60만~70만원가량. 인터넷과 대형 마트가 아닌 곳에서 물건을 사거나 밥을 사 먹은 비용은 매달 3만~5만원 선에 불과했다. 취재에 응한 주부 김은영(가명·34)씨는 "아이를 데리고 쇼핑하거나 밥을 먹으려면 주차하고 유모차 끌고 다니기 편한 곳을 찾는 게 당연하다"며 "요즘엔 중원구에 사는 부모들도 주말이면 판교까지 애들 데리고 와서 쇼핑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은 시장의 정책이 실현되면, 아동수당의 혜택이 상대적으로 더 절실한 저소득층은 결과적으로 더 비싼 값으로 물건을 사야 하는 피해를 본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성남에 사는 주부 이지은(33)씨는 "기저귀나 가제 수건, 물티슈 같은 소모성 육아용품을 동네 가게에서 10만원어치 산다고 치면, 이를 인터넷에서 공동 구매하면 6만~7만원 정도"라며 "한 푼이 아쉬운 엄마들이 클릭 몇 번으로 편하게 배달받을 물건을, 굳이 유모차 끌고 동네 수퍼에 가서 비싼 값 주고 사야 하느냐"고 말했다. 상품권 지급에 따른 행정 비용도 논란거리다.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개인 통장에 입금하면 끝이지만, 상품권으로 수당을 지급할 경우 동사무소로 찾으러 가거나, 공무원이 집에 전달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세금으로 상품권 업자 배 불릴 우려도

물론 지역 화폐만의 장점도 있다. 은 시장의 아동수당 정책이 실현되면 연간 500억원가량의 상품권이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지역 경기 부양도 되는 셈이다. 성남시는 지역 화폐 가맹점이 5일 현재 3014곳이나 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어 사용에 불편함이 작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성남시는 "아동수당이 결국 생활 보조금인 만큼, 아동·육아용품 외에 필요한 소비를 지역 화폐로 하면 지역 상인들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취지"라며 "시민들의 반발을 고려해 숙의와 토론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은 시장 역시 지역 언론 간담회에서 "지역 화폐와 연계한 아동수당 지급을 놓고 반발이 있는데 사용 불편을 덜기 위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장과 협의해 부식비를 지역 상품권과 연계해 쓸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은 시장의 이번 정책이 향후 더불어민주당식(式) 복지 정책을 향한 민심의 향방을 가를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재명 도지사의 정치적 성공과 복지 정책에 대한 선호가 결합한 덕분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 화폐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민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기 때문이다. 전국 기초 지자체 중 30여 곳이 지역 화폐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처럼 아동수당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겠다는 지자체도 나올 수 있다. 적자 예산과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에선 아동수당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게 되면 국가 예산으로 지역 경기를 부양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제적 효과 역시 소위 '상품권 깡(할인 판매)' 문제를 고려하면 취지가 빛바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각종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성남사랑상품권'은 액면가보다 18~20%가량 할인돼 거래되고 있다. 성남시에서 1만원을 더 얹어준다고 해도, 결국 성남시 부모들은 현금 10만원을 받는 다른 지역보다 낮은 수당을 손에 쉬는 셈이 된다. 이 상품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인'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들이다. 이들은 낮은 가격에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이에 약간 웃돈을 얹어 되팔아 돈을 번다. 결국 시민 세금으로 조성된 돈이 '상품권 할인'을 중개하는 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성남시 주민 양모(26)씨는 "주변 친구 대부분이 청년수당을 상품권으로 받은 뒤 '상품권 할인'으로 현금화해서 썼다"며 "이제 사람들이 이렇게 지역 화폐를 현금화해서 쓰는 데 별 거리낌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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