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전 정부 저출산 정책 비판하더니..그대로 답습한 문 정부

이에스더.정종훈 입력 2018. 7. 5. 11:30 수정 2018. 7. 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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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저출산대책 분석
패러다임 전환 공언하더니
전 정부 정책 늘리고 넓히고
텅 빈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첫 저출산 대책이 발표했다. 그동안 전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정부가 과거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회의를 열고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확정해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번 핵심과제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주재 위원회 위원 간담회에서 제시한 패러다임 전환 기조를 반영했고, 특히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 개선에 중점을 두고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에 드는 추가 재정은 약 900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지난해 12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첫 회의 때부터 박근혜 정부가 만든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이 출산율ㆍ출생아 수라는 목표에 집착하고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2040세대 삶의 질을 끌어올려 합리적인 선택의 하나로 결혼ㆍ출산을 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이날 발표된 저출산 대책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 정부가 내놨던 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지원 금액을 인상하는 미세 조정에 그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2월 열린 제4기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3차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삶이 먼저다'를 기치로 제6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위원회가 밝힌 주요 정책 가운데 ‘1세 아동 의료비 사실상 제로화’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ㆍ정부지원 신설’ 등이 기존 정책 재탕의 대표적인 예다. 1세 아동에 대한 의료비 경감 대책은 신생아의 외래 진료비 중 환자 부담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내용이다. 여기에 기존에 있던 임신ㆍ출산 의료비 지원 바우처 카드인 국민행복카드 한도를 10만원 상향하고 출산 예정일 이후 1년까지 쓸 수 있게 해 아이에게 드는 의료비를 사실상 0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부모들의 부담이 큰 입원 진료비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 작은 것을 해놓고 생색내는 꼴이다.
만 8세 이하 아동에 대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기존 제도의 상한선을 올렸다. 육아 휴직 포함 최대 1년간 사용할 수 있고 임금의 80%(최대 150만원)를 지원하는 현행 제도를 육아 휴직 포함 최대 2년으로 확대하고, 하루 1시간 단축할 경우 임금의 100%(최대 200만원) 지원한다.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는 현행 유급 3일+ 무급 2일인 배우자의 출산휴가를 유급 10일로 바꾸고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가 5일 치 급여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1~3다 대책에서 한 두발씩 넓혀온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서울 경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온종일 돌봄 정책간담회에 앞서 돌봄교실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배우 장신영씨(경동초 학부모). [청와대사진기자단]
위원회는 "지금까지는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정책의 목표였지만 앞으로는 2040세대 삶의 질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정책은 모두 출산과 영유아기 자녀 육아 지원에 집중돼 있다. 반면 여성들의 경력 단절, 출산 포기를 부르는 초등학생 돌봄 절벽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경동초등학교를 찾아 직접 발표했던 ‘온종일 돌봄’ 정책은 별 진전 없이 그대로 담았다.
형평성 논란을 부를 정책도 포함됐다. 위원회는 출산휴가급여를 받지 못하는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해 출산 지원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단시간 근로자, 자영업자, 특수고용직에 대해 출산 시 90일간 월 5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는 이들에게 가입자와 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를 하겠다는 취지라면 고용보험 미가입자들을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지만 이런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몇 년 내 사회 체계의 극심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안일한 대책만 내놨다고 말한다. 올해 합계 출산율 1.0명 선이 붕괴하고 4년 내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몇 년 내 어린이집ㆍ유치원의 30%는 문을 닫고, 영유아 관련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실업자가 대량 양산될 수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너무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라 본다”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사회를 재구조화하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정책은 빨리 내놓을 수밖에 없으니 기존 정책을 답습하게 된 것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메시지가 정책에 담겨있지 않다. 특히 성 평등 관점이 빠져있다. 여성 입장에서 내가 이제는 '독박육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겠구나, 또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 집안의 아이가 아닌 나의 아이가 된다는 식의 뭔가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창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조정관은 "이번 대책은 지난 5월 31일 재정전략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2019년 예산에 반영할 단기대책 위주로 구성한 것으로, 근본적인 정책 방향은 기존 3차 기본계획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에 반영해 10월 중 발표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에스더ㆍ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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