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문서 '폰트 소송' 당해봤니?

2018. 7. 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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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폰트 제작업체 “라이선스 없으면 위법”… 저작권 분쟁 줄이어

서울 시민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공공단체인 서울NPO지원센터는 지난 5월 모 법무법인으로부터 공문을 하나 받았다. 센터 홈페이지의 자료실에 올라와 있는 한 PDF 문서가 폰트(서체) 저작권 위반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공문이었다. 법무법인 측은 “해당 문서에 쓰인 폰트에 대한 전자책(e-book) 라이선스가 없다면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라이선스 소유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내려받은 PDF의 폰트(글꼴) 정보. 이 PDF 하나에만 20개에 달하는 폰트가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센터는 발칵 뒤집어졌다. 문제가 된 PDF 문서는 센터 측이 작성한 문서가 아니었다. 서울시의 다른 공공기관이 작성한 문서였지만 센터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돼 올려뒀던 것이다. 당연히 문제가 된 폰트에 대한 라이선스가 있을 리 없었다. 센터 관계자는 “일단 해당 문서를 단순 게재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답변으로 보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PDF 문서에 포함된 폰트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그간 폰트 자체의 저작권 문제를 놓고는 여러 판례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PDF 문서의 폰트 문제는 법적인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온라인 상에 게재돼 있는 PDF 문서 중 상당수가 이 같은 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PDF 상당수가 폰트 내장형, 대책 시급

우리가 흔히 ‘폰트 파일’로 부르지만 폰트는 고유의 서체 형태뿐만 아니라 해당 서체로 자동 변환해주는 일련의 알고리즘을 가진 엄연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법원도 이를 근거로 수차례 판례를 통해 폰트를 “단순한 데이터파일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판결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인 만큼 저작권법 등 각종 법으로 보호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폰트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은 사실 하루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폰트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2000년대 후반부터 이미 관련 법적 소송이 줄을 이었고, 저작권 위반인지도 모르고 폰트를 쓰다가 소송을 당한 사용자들의 하소연이 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2013년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례별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이드라인만으로 일단락되지 않았다. 그 이후 최근 3~4년 전부터 PDF에 포함된 폰트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나 법원에서 아직 다뤄지지 않았다. PDF는 본래 미국의 어도비시스템즈에서 만든 문서파일 유형이다. 컴퓨터 운영체제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문서 프로그램과 호환되고, 어도비 측에서 관련 기술을 무료로 공개하면서 현재는 글로벌 문서파일의 표준처럼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PDF는 전자문서를 통칭하는 대명사처럼 쓰인다.

PDF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문서의 ‘깨짐’을 방지하기 위해 폰트를 문서 자체에 내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A라는 폰트를 이용해 PDF 문서를 만들어 배포했을 경우, 이를 온라인 상에서 내려받은 사용자의 컴퓨터에 A폰트가 없다면 해당 PDF 문서는 읽을 수 없게 된다. A폰트를 별도로 내려받으면 되지만 폰트를 매번 일일이 찾기도 어렵고, 불법 다운로드 문제도 있다. 그래서 PDF는 문서를 작성한 뒤 작성에 사용된 폰트까지 한꺼번에 문서에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렇게 하면 PDF 문서를 받을 때 폰트도 같이 받는 셈이 돼 누가 받아보든 문서가 깨질 일이 없고, 문서를 확대하거나 출력할 때도 고화질로 내용 확인이 가능하다.

사용자들에겐 유용한 기능이었지만 이 기능이 바로 PDF 폰트 분쟁의 씨앗이 됐다. 유료 폰트를 제작해 공급하는 업체들은 폰트의 라이선스를 오프라인 인쇄용과 전자책용으로 별도 구분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전자책용 라이선스는 통상 디지털콘텐츠를 PDF 등과 같은 전자문서로 변환하거나 변환한 PDF를 온라인에 게재할 때 등에 적용된다. 이에 폰트 제작업체들은 “특정 폰트에 대한 전자책용 라이선스가 없는 사용자가 이 폰트가 사용된 PDF를 온라인 자료실 등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저작권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NPO센터가 공문을 받은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폰트를 컴퓨터 프로그램 관점에서 보자면 라이선스 문제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불법복제, 전송 문제도 걸릴 수 있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폰트가 내장된 PDF를 전송하거나 다운로드를 허용할 경우 엄밀히 말해 폰트 프로그램을 임의적으로 복제하는 효과를 내므로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 “합법적으로 봐야 한다” 주장도

온라인 상에 무료든 유료든 내려받기가 가능한 PDF 중 태반이 폰트를 내장한 형태를 띠고 있다. 폰트 업체 주장이나 법조계 해석에 따르자면 온라인 상 PDF 중 얼마나 많은 PDF가 이 같은 분쟁에 휘말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폰트 저작권 문제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조차 유사한 문제로 분쟁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관련건으로 우리 회사에서 찾아낸 사례만 수천 건에 달한다”며 “못찾아내 문제를 안 삼았을 뿐 찾자면 사례가 끝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PDF로 문서를 만들 때 폰트 저작권 문제를 피해가면서 문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없진 않다는 게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입장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PDF로 저장 시 ‘이미지로 저장’을 선택하면 폰트 저작권 분쟁을 피해갈 수 있다”며 “이미지 변환과정도 비교적 간단하지만 사용자들이 이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기능을 잘 이용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이미지 저장 기능을 이용하더라도 이미 온라인 상에 올라와 있는 숱한 PDF들의 문제까지 해결할 순 없다. PDF 폰트 분쟁이 커지면서 국민들의 정보 접근성이 제한될 우려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PDF 폰트 문제로 분쟁에 휘말린 기관이나 단체 등은 아무래도 온라인 PDF 게재에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 NPO지원센터만 해도 공문을 받은 직후 해당 PDF를 홈페이지에서 내렸다. 공익활동을 위해 이 PDF 참고가 필요한 시민들에게 정보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셈이다. 사회적인 비용지출 문제도 생기고 있다. 서울시 산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PDF 폰트 분쟁에 휘말릴 걸 우려해 자료실에 있는 PDF를 모두 저작권 논란이 없는 폰트로 바꾸는 등 추가작업을 할 계획”이라며 “다소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PDF에 폰트를 내장해 전송, 게재, 배포하는 경우 등은 저작권법 등의 예외조항인 ‘공정이용’ 원칙을 적용해 합법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폰트 업체들이 주장하는 전자책용 라이선스 문제에 대해서도 “해당 라이선스 부여나 관련 약관 등이 과연 사용자 보호 가치나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정당하게 만들어진 것인지부터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어떤 방향으로든 이 문제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술 발전과 변화된 사용환경 등 여러 제반요소를 고려해 PDF를 포함한 폰트 저작권 문제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세워 공개할 방침”이라며 “업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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