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른 번째 죽음..5년만에 다시 차려진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남지원 기자 입력 2018. 7. 3. 16:07 수정 2018. 7. 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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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쌍용차에서 해고된뒤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중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분향소를 설치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희생자 30명의 영정 걸개그림 앞에 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다. 이준헌 기자

“2012년, 22명의 영정을 안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1년7개월간 이곳을 지키며 억울한 죽음을 알리다 공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30번째 죽음에서 끝내야 합니다.” 3일 오전, 뙤약볕 아래 쳐진 간이천막에 상복 차림으로 앉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앞에 하얀 국화가 쌓였다. 무더운 날씨에 국화꽃 잎사귀는 이미 모두 시들어 축 늘어졌다. 5년 전 22명이었던 걸개그림 속 영정은 이제 30명으로 늘었다. 김 지부장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중씨(49)의 영정을 안고 추모객을 맞았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쌍용차에서 해고된 뒤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이날 5년만에 다시 차려졌다. 김주중씨는 2009년 8월5일 경찰의 강제진압 때 공장 옥상에서 집단폭행을 당한 뒤 구속됐고, 풀려난 뒤에는 정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해고된 후 직장을 찾아다녔지만 ‘폭도’라는 낙인이 찍힌 쌍용차 해고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는 새벽에 화물차를 운전하고 낮에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구조조정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에 자살을 하거나 심혈관질환 등으로 사망한 해고자·희망퇴직자와 그 가족은 30명에 이른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못 구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근경색으로 숨진 희망퇴직자도 있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인이 숨진 뒤 돌연사한 무급휴직자도 있었다. 쌍용차지부는 조합원과 가족 22명이 사망하자 2012년 4월 대한문 앞에 합동분향소를 세우고 쌍용차 사태 알리기에 나섰다.

이후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는 한국 노동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샌델 등 한국을 방문한 해외 석학들도 잇따라 분향소를 찾았다. 2012년 11월에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큰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미생>의 동명 원작 웹툰에는 주인공 장그래가 첫 출근 날 상사의 손에 이끌려 쌍용차 분향소를 찾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분향소는 중구청으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다가 1년7개월만인 2013년 11월 쌍용차 평택공장 앞으로 옮겨졌다. 쌍용차 노사는 2015년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지만 아직까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120여명에 이른다. 그 사이에 8명이 더 세상을 떠났다. 노조는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복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이행됐다면, 회사가 복직 시점이라도 알려줬다면 김주중 조합원은 가족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날 분향소 설치 전 기자회견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외친 김 조합원에게 정부는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회사는 아직 복직 시한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분향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던 근처에 모여 있던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한문은 태극기의 성지”라며 노조 관계자들을 가로막고 밤늦게까지 충돌을 벌였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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