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스피커의 그림자①]육아 도우미와 중독 사이..어린이 노리는 업체들

한진주 2018. 7. 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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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AI스피커 '카카오미니'


엄마 대신 AI 스피커부터 찾는 아이들
인형 친구처럼 '정서적' 의존 생길 수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 있을지 불분명
결국 의존의 문제.."세심한 관찰 필요"
업체들 '잠재고객' 영유아 공략에 적극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인공지능(AI) 스피커는 적인가 친구인가. 아마존과 구글,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달려드는 두 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섬뜩함을 주는 물건. 아직 본색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은 AI 스피커가 한국에 상륙한지 16개월됐다. 그 사이 100만개의 AI가 우리 가정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굴지의 이동통신사와 포털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AI 스피커가 할 수 있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AI 스피커에 대한 우려와 불안도 공존한다. 크게 보면 중독과 보안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스마트홈ㆍ스마트시티라는 신세계의 중심에 설 것으로 기대되는 AI 스피커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2편에 걸쳐 살펴본다.

#40대 직장인 A씨는 AI 스피커를 집안에 들여놓은 뒤 '이대로 괜찮은가'하는 생각을 자주한다. 다섯 살 된 딸이 하루에도 수십번 씩 AI 스피커에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 마냥 '예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핑크퐁 틀어줘" "신데렐라 동화 읽어줘"라는 딸의 정확치 않은 발음을 AI 스피커는 잘도 알아듣는다. 엄마보다, 아빠보다 딸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음료수병 만한 플라스틱 전자제품이란 사실이 찜찜하기만 하다.


◆아이 키우는 AI, 커지는 중독 불안감=부모들은 비디오 테이프를, 휴대폰을, 태블릿 PC를 육아 도우미로 활용해왔다. 아이가 작은 화면에 몰입돼 시간을 보내는 게 마뜩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있다가 엄마가 돌봐줄게"하는 약속은 아이가 아닌 본인에게 하는 것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보면 아이는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고, 죄책감은 더해졌다.

AI 스피커는 조금 다르다. 아이가 무언가 '능동적' 역할을 한다. 기계가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위와 같은 죄책감이 덜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AI 스피커를 육아 도우미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 스피커가 우리보다 널리 보급된 미국에서는 이미 유아 중독 현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비영리재단 '커먼센스 미디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녀가 있는 10가구 중 1가구는 AI 스피커 등 음성인식 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동화 콘텐츠를 이용한 시간은 총 13만시간에 달했다. 한국 어린이도 AI 스피커의 열혈 이용자다. 카카오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1분기에 가장 많이 재생된 장르 1위는 동요, 2위는 자장가였다.

어린이와 AI 스피커의 관계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이런 환경이 장기적으로 아이의 성장과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와 부모 간 애착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에서 18개월짜리 아기가 내뱉은 첫 마디가 '엄마'가 아니라 아마존의 AI 스피커를 호출하는 '알렉사'였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이 밖에 유튜브에서는 어린이들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AI 스피커에 끊임없이 말을 거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어린이가 "반짝반짝 작은별 들려줘"라고 요청했는데 성인용품 검색 결과를 들려줘 부모가 제지시키는 영상도 있다.

스틸왜건 래디스키 소아과 박사는 미 언론 샌프랜시스코 크로니클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AI 스피커에) 무례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한다 해도 항상 정확한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이를 잡으면 세상을 잡는 것이다"=아마존의 에코닷 키즈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질문ㆍ답변부터, 오디오북ㆍ게임ㆍ음악감상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아마존은 어린이의 말을 더 잘 알아듣기 위해 부모 동의를 얻어 어린이 전용 프로필(계정)도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어린이에게 더 좋은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속내는 AI 스피커가 어린이의 목소리를 더 잘 구분하고 이해하도록 AI를 훈련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바비인형을 만드는 업체 '마텔'은 어린이 전용 AI 베이비시터 '아리스토텔레스'를 출시하려다 반발이 일자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AI 스피커에 카메라를 탑재해 어린이를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갖췄다. 마텔 측은 영상을 암호화해 저장하겠다고 했지만 제품 출시를 중단하라는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국내 업체들도 세계적 추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네이버는 키즈 콘텐츠를 확대하기 위해 7월 초부터 인기 동요 3000곡을 클로바 스피커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동화도 1400개에서 5000개로 늘린다. 카카오는 카카오미니에 어린이의 이름을 넣어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어린이와 대화할 때 칭찬해주는 기능을 적용했고 유명 유튜버의 목소리를 담아 설명해주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박한선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정신의학과 전문의)은 "학령기 이전의 아이가 인형을 상상친구로 생각하듯,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AI 스피커를 친구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이 과정에서 아이는 기계가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프란 월피시 가족관계 정신치료사는 최근 IT 전문매체 톰스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숙제 도움이나 알람 등 편의기능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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