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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리즘 포비아] ① "관광객은 꺼져"…베네치아 주민들이 뿔났다

송고시간2018-06-3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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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유명 관광지 중심 '관광 혐오증' 확산

검문소 설치에 관광세 신설까지…"관광객 분산 정책 필요"

[※ 편집자 주; 베네치아 등 유럽 유명관광지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삶과 터전을 위협받는 원주민들의 저항, 즉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 : 관광 공포증. 관광 혐오증)가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투어리즘 포비아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이 주말마다 거리로 나서 '못 살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처럼 마을 단위 관광지뿐만 아니라 여수 같은 중소관광도시, 광역관광지인 제주에서도 주민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국내외 유명관광지의 투어리즘 포비아 현상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지역 활성화에 치우친 나머지 원주민 삶을 헤아리진 못한 양적 팽창 위주 관광산업 진흥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관광산업과 원주민의 상생방안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5편짜리 특집기사를 30일부터 7월 4일까지 매일 1편씩 송고합니다.]

"관광객은 집으로"
"관광객은 집으로"

스페인 북부 오비데오 시청 인근 벽에 적힌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 문구.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관광객은 가라"(Tourist go home)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물가가 치솟고 지역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몸살을 앓는 유럽 일부 여행지를 중심으로 관광객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각국이 앞다퉈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을 진흥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관광객 공포증·혐오증을 뜻하는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가 확산 중이다.

투어리즘 포비아는 지역 규모와 비교해 너무 많은 관광객을 의미하는 과잉관광(overtourism), 낙후한 지역에 중산층이 몰리면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빗대어 관광객으로 인해 주민이 타지로 내몰리는 것을 지칭하는 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과 함께 반(反)관광 정서를 대표하는 용어다.

투어리즘 포비아가 단적으로 나타난 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시가지가 실핏줄 같은 운하로 연결된 베네치아는 독특한 경관과 유구한 역사, 미술 축제인 비엔날레로 널리 알려졌다.

베네치아 인구는 5만 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관광객은 2천500만 명에 육박한다.

한때 17만 명이었던 인구는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 반면 관광객은 늘어났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베네치아가 크루즈선을 타고 왔다가 서너 시간 정도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들 때문에 '바다 위의 디즈니랜드'가 될 위험에 처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관광객이 증가하고 전통적인 상점과 공방이 도심에서 밀려나자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객 유입을 반대하는 전단이 곳곳에 배포되고, 항의 시위도 이어졌다.

이에 베네치아 시정부는 지난 4월 베네치아 도심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회전문 형태 검문소를 설치하고,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주민만 출입하도록 했다.

관광객 검문소 설치한 베네치아
관광객 검문소 설치한 베네치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설치된 검문소.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은 4월 1일 홍등가 관광 규제를 시작했다.

오후 11시 이후에는 홍등가 관광을 할 수 없고, 20명이 넘는 단체관광도 금지했다.

5명 이상 인솔하는 가이드를 대상으로 유료 허가증 제도를 신설하고, 가이드는 관광객이 특정 가게나 홍등가 노동자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팔마에서도 급증하는 관광객에 대처하는 정책을 잇달아 마련했다.

바르셀로나는 도심에서 숙박업소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관광버스 도심지 통행을 제한했다.

스페인 동부 마요르카 섬에 있는 도시인 팔마는 주택을 주민이 아닌 관광객에게 임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관광세 도입이 화두로 떠오른 나라도 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인기를 끌면서 관광객이 증가한 노르웨이에서는 지난해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관광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뉴질랜드 정부는 호주와 태평양 섬나라 국민을 제외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관광세 25∼35달러를 걷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광학계에서는 투어리즘 포비아가 등장한 이유를 관광객 증가와 여행지 편중에서 찾는다.

특정 여행지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수십 년 전에는 개발도상국에서 여행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선진국 관광객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유럽 일부 도시에서 투어리즘 포비아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관광객이 몰리면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상업시설로 바뀌기 때문에 거주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2030년에는 관광객이 1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관광객을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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