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난민 브로커가 말했다 "134만원 보내면 서울 취업 보장"

권선미 기자 2018. 6.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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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가장한 기자, 브로커에게 상담 받아보니

한국은 전 세계에서 난민(難民)을 인정받기 까다로운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에서 난민 자격 심사를 받은 외국인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의 비율은 1.5%였다. 캐나다는 60%가 넘는다. 그런데도 올 들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 난민 신청자가 급등하는 데는 '난민 브로커'들의 역할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난민 브로커들은 페이스북 등에 '수백만원만 내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주겠다'고 광고하고 있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서울 취업을 100% 보장한다'는 글도 있다. 일단 난민 신청만 하면 이의신청, 행정심판 등을 통해 최대 3~5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난민법 때문에 한국이 난민 브로커의 '표적'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6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예멘인(책상 앞)이 여권을 보며 통합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통합신청서는 외국인 등록을 하거나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기 위해 작성한다. 책상 뒤에서 녹색 티셔츠를 입고 서있는 사람도 신청서를 작성 중인 예멘 난민. 그의 옆에서 두 난민이 일하는 양식장의 한국인 고용주가 신청서 작성을 돕고 있다. /김지호 기자


지난 26일 기자는 인터넷에서 '난민들의 제주행을 돕는다'는 글을 올린 난민 브로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를 '간디'라고 밝힌 그는 인도 남동부 첸나이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30세 예멘인인데 한국에 갈 수 있느냐"고 영어로 쪽지를 보내자 그는 "서울 가서 취업도 할 수 있다. 100% 보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1200달러(약 134만원)만 내면 제주도에 가서 G-1 비자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난민증(refugee card)만 있으면 서울에 가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난민 신청을 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외국인이나,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당분간 한국에 체류해야 하는 외국인에게 G-1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그는 "최근 20대 인도인 두 사람을 제주도에 보냈다"면서 지난 5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발급한 외국인등록증 2장을 보내왔다. 외국인등록증은 G-1 비자를 받을 때 함께 나온다.

'간디'의 페이스북에는 예멘인뿐만 아니라 인도인, 방글라데시인, 터키인들의 문의도 있었다. 간디는 "한국에서 하루 10~11시간 정도 일하면 한 달에 10만~12만5000루피(163만~204만원)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수수료가 비싸다"는 글에는 "제주도까지 가는 과정을 알면, 수수료가 비싼 이유를 알 것"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행을 알선하는 난민 브로커들은 국가에 따라 150만~500만원을 받고 한국행을 알선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로 입국한 외국인 난민 신청자는 최근 3년간 연(年) 200~300명 수준이었지만 올해에는 6월 21일 기준으로 1063명으로 늘었다. 올해 신청자 가운데는 예멘인(549명)뿐만 아니라 중국인(353명), 인도인(99명), 파키스탄인(14명), 기타 국가 출신(48명)도 있다. 외국인들의 난민 신청을 돕는 행정사들은 "난민 신청자가 갑자기 몰린 것으로 봤을 때 브로커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실제 전쟁과 폭정(暴政)을 피해 해외로 나가는 '진짜 난민'들도 브로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 가운데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온 '경제적 이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부추기는 사람이 난민 브로커들이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중국인들이 제주도로 무(無)비자 입국한 후 '모국(母國)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하고 일감을 찾아 육지로 간 경우가 많았다"며 "이 과정에 개입했던 브로커들이 중국인 대신 예멘인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의 난민 신청을 알선한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의 설명이 사실과 다른 경우도 많다. 한국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노린 것이다. 기자는 '간디'에게 "제주에 가도 서울로는 못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법무부는 지난 4월 30일부터 예민인들이 제주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출도(出島)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는 "사실이 아니다. 일단 G-1 비자만 있으면 서울에 가는 데 문제없다"며 "입국도 제주, 인천(공항)에서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 가운데는 "한 달 안에 서울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왜 우리를 제주도에 가두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인이 난민을 신청하면 ▲법무부 난민 인정 심사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법무부 난민위원회 재심사 ▲행정심판 등을 통해 최대 3~5년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느슨한' 난민법 때문에 한국이 난민 브로커들의 '목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하나'의 강신업 변호사는 "진짜 위기에 빠진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난민 신청만 하면 몇 년이고 눌러앉을 수 있는 현재 심사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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