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봉하마을의 '이별 약속'을 잊었나

김승현 2018. 6. 28.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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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정치부 차장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지난해 5월 23일 봉하마을의 추도식은 장엄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 참석하겠다”던 대선 선거운동 기간의 약속을 지켜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이라면서 읽어 내려간 추도사는 ‘역설의 레퀴엠(진혼곡)’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노무현 정신’을 소환했다. 이어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면서 봉하마을과 5년간의 이별을 고했다. 함께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회한과 분노는 뒤로 돌린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대통령 당선 14일째였던 이날의 의식은 국민 통합의 메시지였다. 동시에 계파와 진영으로 얼룩진 한국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도 담겨 있었다.

1년 뒤인 지난달 노 전 대통령의 9주기 추도식 때 문 대통령은 ‘약속대로’ 봉하마을에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중이었다. ‘있어야 할 곳’에 없었지만 그의 부재는 오히려 존재감을 내뿜었다.

한 달 뒤인 지난 23일 문 대통령의 부재가 또 다른 곳에서 화제가 됐다. ‘3김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김종필(JP) 전 총리의 상가였다. DJ·YS와 함께 한국 정치에 거대한 공과(功過)를 남긴 그의 빈소에 문 대통령은 27일 영결식이 열릴 때까지 조문하지 않았다. 여권의 유력 인사들도 조문 행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이 훈장을 추서하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유족들에게 예우를 갖춰 애도를 표하라’고 했다. 조문은 이것으로 갈음한다”고 설명했다.

1년 전 봉하마을에서 한 약속을 기억하는 국민에겐 생경했다. 국민 통합을 위해 ‘있어야 할 곳’을 피했던 문 대통령이었기에, 같은 이유로 ‘없어도 되는 곳’은 오히려 더 살펴볼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지난 26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보수 쪽이 무너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끌어안아 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JP가 안 계셨으면 김대중 정권은 성립되기 힘들었고, 이후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도 성립되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굳이 정치공학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의 이번 부재는 아쉽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을 꿈꾼다던 1년 전의 비장한 추도사, 그래서 더 애달팠던 봉하마을의 빈자리를 보고 들었기에 더 그렇다.

김승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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