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과함께

2018. 6. 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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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축복’을 뜻하는 예멘에서 평화의 섬 제주로 온 난민은 올해 561명이다. 숫자는 사람을 가린다. 심지어 물화한다. ‘난민’이란 단어는 이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주지만, 사람 하나하나의 고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폭탄에 목숨은 건졌지만 배에서 가슴팍까지 찢어진 상처를 꿰맨 자국이 있는 주유소 직원 에브라임,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에 왼쪽 다리와 목이 잘려나간 옆집 아저씨와 그 아들을 지켜봐야 했던 대학생 알하라지, 미사일에 동료를 잃은 전직 기자 이스마일, 이유 없이 총에 맞아 죽은 동생 소식을 들어야 했던 옷장사 아흐메드와 그의 아내…. 미처 다 듣지도 못한, 들어도 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561개의 아픔들.

이들은 ‘이슬람 난민’이란 하나의 묶음으로 타자화되고 있다. ‘사’를 피해 ‘생’을 찾아 제주까지 찾아온 손님을 맞는 우리의 언어는 냉대를 넘어서 공포스럽다. 협박, 증오, 저주의 언어들이 ‘청원’이란 이름으로 쏟아진다. 차마 입에 담기 낯 뜨거운 말들이 널렸다. “조혼 풍습이 있는 나라, 우리 아이들을 이미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을 거다” “난민을 북한으로 보내라” “좋은 무슬림은 죽은 무슬림뿐이다”….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한다. 살려달라고 내민 손을 뿌리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가라고 합창한다.

청와대 청원 중 ‘난민’이란 단어로 검색되는 청원은 1076건(6월22일 21시 기준)이다. 매일 수십 건씩 늘어난다. 대부분이 난민 추방, 난민법 폐지, 이슬람 저주, 난민 지원 중단 등 부정적 내용이다. 최신순으로 청원 100건을 분석해보니, 난민에 대한 긍정적·우호적 청원은 단 1건에 불과했다. 1994년 난민을 받기 시작한 뒤 대중적 난민 혐오 정서가 이렇게 폭발한 것은 처음이다. 다수의 청원은 ‘모든 문제를 난민 탓’으로 돌린다. 범죄, 일자리, 주택, 세금 등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난민 이슈와 엮어 더욱 악화될 거라고 야단법석이다. 지난 23년을 다 더해도 인정된 난민은 792명에 불과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치곤 과잉불안처럼 보인다.

추방을 통한 해결책은 반문명이다. 1951년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유엔난민협약)은 난민을 탈출국으로 재송환하거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나라로 추방하지 못하게 했다. 체류는 예멘에서 피란 온 ‘손님’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잖은 한국 사회 구성원의 인식 수준은 67년 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태도에도 못 미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우리도 이 협약에 가입해 있다. 유엔난민협약의 한계를 보완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난민의정서)는 ‘지역적 제한 없이’ 난민이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중동에서 왔든지 미국에서 왔든지 차별해선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제주 난민들을 무슬림 국가 예멘에서 왔다는 이유로 더 차별적 시선으로 대하고 있다.

우리는 난민에 이중서사를 갖고 있다. 178개국 740만 재외동포를 ‘글로벌 한민족 공동체’로 자랑하면서도, ‘확장된 우리’를 받아줬던 국제사회로부터 난민을 받는 데는 야박하다. 재외동포 중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이주했던 과거는 기억에서 편리하게 지워버렸다. 난민을 포함해 이주민을 마주하는 우리의 시선도 이중적이다. 배타주의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선별적 배타주의와 선택적 차별에 가깝다. 선진국 출신, 특히 영어권 백인 이주민과 동남아 등 저개발국 출신을 대하는 시선이 너무 다르다. 한국 땅에서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는 대부분 후자의 경우에 작동한다. 예멘 난민을 대하는 태도도 후자와 맞닿아 있다. 열등한 난민이 동질성과 우월성을 지닌 ‘우리’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난민 혐오 여론이 들끓자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는 6월18일 입장을 밝혔다. “현재 폭력, 질서의 부재, 대규모 실향, 기근 등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예멘으로 그 어떤 예멘인도 강제송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의 단호한 입장이다.” 그렇다. 강제송환은 야만이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난민과함께’는 지난 4월 요르단 자타리 난민촌에서 시작된 유엔난민기구의 캠페인 슬로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월25일부터 1주간 진행됩니다. <한겨레21>도 이번호(제1218호)부터 ‘#난민과함께’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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