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어디 갔어?" 文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방문 논란

고성민 기자 2018. 6. 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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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 방문 논란
울고 있는 손흥민 끌고 와 ‘기념촬영’
김 여사 라커룸 입장엔 “성적 감수성 부족”

지난 24일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이 끝난 직후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 라커룸에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이날 로스토프 아레나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수행원들이었다. 2 대 1 패배. 연패(連敗)로 사실상 16강 진출이 어려워진 상황이라 라커룸 분위기는 침울했다.

◇文대통령 “손흥민이 어디 갔어?”
문 대통령이 입장하자 신태용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과 선수단이 일렬로 도열했다. “잘했어요.” 김정숙 여사가 이날 두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수비수 장현수(27·FC도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병 김민우!” 상주 상무 소속 김민우(28)가 경례를 붙였다. 주장 기성용(29·스완지시티)은 미처 상의를 입지 못한 상태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선수단을 세워놓고 “여러분들, 많이 아쉬울 텐데, 그러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으면 된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모습 보여주었고요. 다들 파이팅 한 번 하세요. 파이팅!”이라고 연설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멕시코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경기가 열린 지난 24일 국가대표선수들의 라커룸을 찾았다. /청와대 제공

경기 종료 직전 추격골을 넣은 손흥민(26·토트넘)은 ‘일렬횡대’ 대열에 서지 못했다. 상의를 벗은 채 라커룸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손흥민이 어디 갔어?” 문 대통령이 그를 찾았다.
이후 문 대통령은 손흥민 손을 잡아끌어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오른팔을 세워 올리는 ‘파이팅’을 시켰다. ‘파이팅’ 하면서도 손흥민은 계속 울었다. 문 대통령은 차갑게 얼굴이 굳은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에겐 “선배님이시고 하니 격려 말씀하셔야지”라며 웃었다.

청와대는 4분짜리 ‘격려 방문’을 사진으로 편집해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대통령이 직접 관전하고 현장에서 선수단을 격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글과 함께였다. 정부가 운영하는 KTV국민방송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손흥민의 ‘라커룸 눈물’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선수들은 대통령 방문 사실 몰랐을 것”
청와대 의도와는 달리 ‘격려 방문’ 사진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온라인 공간에서 “패배로 침울해하는 선수단 라커룸을 찾아가는 것이 온당한가” “울고 있는 선수까지 불러 세워서 ‘쇼(show)통’ 해야 했나” “문 대통령이 꼰대 같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날 선수단은 대통령·영부인의 방문을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팀 선수들은 대통령 방문 사실을 몰랐을 것 같다. 왜냐하면 경기하는데 필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선수들도 감정이 있을 텐데, 패배한 직후에 일렬로 서고 싶었을까요. 대통령이면 우는 사람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 찍어도 됩니까. 격려 방문 동영상만 봐도 선수단의 참담한 분위기가 느껴지던데…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요.” 직장인 전모(31)씨 얘기다.

김정숙 여사가 선수단 라커룸에 동행한 것을 두고 ‘성적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라커룸은 운동선수들이 옷 갈아입는 공간으로 나체(裸體)인 경우도 있다. 사전에 대통령·영부인 방문을 몰랐을 선수단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최모(28)씨는 “라커룸은 선수들의 사적인 공간인데, 여성인 김 여사가 선수들 동의도 없이 벌컥 방문했다면 잘못”이라면서 “상의를 벗은 선수, 울고 있는 선수들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찍어대는 모습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고 말했다.

대통령 내외를 옹호하는 여론도 있다. 취업준비생 엄모(28)씨는 “만약 라커룸에 가지 않았다면 ‘패배해서 대통령이 선수단을 응원하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았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이 라커룸에 사진이나 찍으러 간 것은 아니고, 중요한 외교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방문했던 것”이라는 견해도 일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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