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운동'에 숨은 여성혐오..'메갈 사냥꾼'은 누구?

2018. 6. 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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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쫓겨나는 여성들] 2회

[한겨레]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메갈 사냥’을 ‘소비자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특정 개인을 향한 사이버불링과 같은 ‘혐오 범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 심지어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가 빌미가 됐다. ‘메갈’이라는 딱지가 붙은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들의 창작물은 하루아침에 게임에서 사라졌다. 작업 의뢰도 줄었다. 사실상 해고이고, 곧 업계 퇴출로 이어진다. 여성혐오 발화는 이제 밥줄을 끊는 ‘실질적 위협’이다. “어떠한 사상 검증도 ‘그래도 되는 일’이 됐다.” 2018년 게임업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혐오의 씨앗이 자라나는 웅덩이.’ 게임 웹진 인벤과 비디오 게임 정보 커뮤니티 루리웹, 국내 최대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의 각종 게임 갤러리(게시판)를 가리켜 한 여성 게임이용자는 ‘스포닝 풀’(spawing pool)에 빗댔다. ‘스포닝 풀’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공격 무기인 ‘저글링’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생산 기지다. 이같은 게임 커뮤니티가 ‘메갈 사냥’이 탄생하는 기지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 ‘사냥’이 ‘놀이’가 된 게임 커뮤니티

10대부터 30대까지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메갈 사냥’은 개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트위터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러스트 작가들은 좋은 표적이다. ‘사냥꾼’들은 작가들이 직접 쓴 트위트는 물론이고 아르티(RT)하거나 ‘마음에 들어요’를 누른 기록, 심지어 어떤 사람을 팔로잉하는지도 확인한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거나 소설 <82년생 김지영> 내용을 공유해도 ‘메갈 거름망’에 걸릴 수 있다. 여성단체 또는 이미 ‘메갈’로 판명된 동료 작가를 팔로잉하거나 ‘한남’(‘김치녀’의 대항표현으로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용어)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빼박(‘빼도 박도 못하다’를 줄인 말) 메갈’이다.

사냥꾼들은 이렇게 모은 ‘메갈’의 증거를 갈무리해 게임 커뮤니티로 옮긴 뒤 동료 이용자들에게 묻는다. “이 정도면 메갈 아님?” 이구동성 댓글이 달린다. “빼박인데”, “이 게임도 메갈 묻었네”, “제작사 쪽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배신감과 분노가 한꺼번에 타오른다. 과거 ‘남성의 돈을 밝히고 남성을 경제력으로 평가하며 남성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려고 하는 여성’을 ‘김치녀’로 통칭하고 비난했듯이, 이제는 ‘메갈’ 의혹을 받는 작가를 두고 ‘남성 소비자 덕에 돈을 벌면서 남성을 비난하는 괘씸한 여성’이란 프레임을 씌운다.

여성 일러스트 작가들은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 문화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다음 차례는 ‘정의 구현’이다. 게임 공식 카페 등에 “메갈 작가 해결 안 되면 게임을 접겠다”, “불매운동으로 조지겠다”고 항의 글을 올린 뒤 회사의 반응을 기다린다. 신속하게 일러스트를 내린 ‘기특한’ 게임을 공유하며 추가 지출을 하고 이를 서로 인증하기도 한다.

‘메갈 낙인찍기’는 이들에게 일종의 주목경쟁(▶관련 글 :주목경쟁의 시대)을 위한 놀이 문화다. 더 많은 추천을 받기 위해 일러스트 작가의 신상을 터는 행위가 반복되기도 한다. 악성 댓글을 단 이용자 70∼80명을 고소했던 작가 박지은씨는 “‘메갈 리스트’를 왜 썼냐고 물어보면 99%는 ‘잠깐 재미로, 관심을 좀 얻으려고 그랬다’고 한다”고 말했다. ‘메갈 사냥’ 피해를 입은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 ㄴ씨는 “자신들과 생각이 맞지 않는다 싶으면 ‘메갈’ 딱지를 붙인다”며 “혐오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재밌는 놀이나 스포츠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디시인사이드(‘디시’)로 대표되는 하위문화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는 “게임 커뮤니티 이전에 인터넷에 ‘디시’가 존재했고, 게임 커뮤니티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디시’의 문화와 이용자층을 다수 흡수했다”고 봤다. 상호존중이나 예의는 결여돼 있고, 조롱과 냉소가 논리를 앞서는 ‘디시’의 논리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메갈 사냥’이 ‘놀이’가 되는 동안, 정작 ‘메갈리아’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페미니즘의 의미는 뒤틀리거나 삭제된다. 빈 자리는 무지와 몰이해가 메운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메갈’을 “반사회적인 인신공격을 일삼는 사람들”, “집단 이기주의”, “패륜 혐오집단”으로 정의한다. 페미니즘은 “광우병급 선동”, “정신병”,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된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란 말이 유행처럼 댓글로 달린다.

아예 덮어놓고 비난에 동참하기도 한다. 지난 1일, ‘선입견시러요’란 별명을 사용한 이용자는 인벤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메갈의 뜻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쁜 사회악은 사라져야 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굳이 필요치 않다. 김 대표는 “이들은 주장이 맞고 틀린 것 자체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쩔건데?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할 건데?’라는 식이다.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여러 결이 있고 주장이 갈리지만, 그걸로 대화할 의지는 없다”고 꼬집었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도 게임 커뮤니티에 들어가 활동하고 그 문화에 익숙해지면 ‘여성혐오’를 공고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이를 재생산하는 주체가 된다”고 했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 ‘소비자 운동’으로 포장된 ‘사이버불링’과 ‘갑질’

게임 커뮤니티 남성들은 일러스트 작가들을 ‘메갈’로 낙인찍고 업계에서 쫓아내는 행위를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메갈 사냥’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면, 여성혐오 발언을 한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기업이나 여성혐오 콘텐츠를 담은 TV 프로그램, 연극 등을 불매 운동한 여성들의 ‘소비자 운동’을 ‘미러링’하는 것일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버젓이 나오는 건 게임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남성들에게 남성에 견줘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성상민씨는 “단순히 소비자 운동이라 정당한 게 아니라, 그 운동 안에서 어떤 주장을 내세우냐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소비자 운동’이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정당성을 흔든다. 이들은 ‘여성’이자 ‘자르기 쉬운’ 외주 일러스트 작가를 표적 삼을 뿐 정작 페미니즘 운동의 가치를 상찬하는 게임업계의 남성들은 공격하지 않고 있다. 게임 커뮤니티 내에선 “회사가 ‘메갈’을 이유로 정직원을 해고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다른 노조나 여성단체가 성명을 발표할 수 있으니 외주 작가를 공략하라”는 식의 ‘꿀팁’이 공유된다.

반면 블리자드사의 게임 ‘오버워치’의 제프 카플란 디렉터가 지난해 2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다이스 서밋 2017’ 기조 연설에서 <페이머즈>의 전신인 <전국디바협회>를 언급하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세상의 가능성을 보라’라는 오버워치의 가치를 (한국의) 이용자들이 받아들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고 극찬했지만, 남성인 카플란 디렉터와 블리자드사는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았다. ‘오버워치’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 남성 게임개발자는 “남성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밝혀도 공격이 계속 이어지진 않는다.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여성이나 외주 작가 등) 약자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심리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의 ‘소비자 운동’에는 운동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고, 특정 개인에 대한 사이버불링과 작가에 대한 이용자들의 ‘갑질’만 고스란히 남게 된다. 작가 박지은씨는 이를 두고 “페미니즘 같은 이념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박씨는 “‘악플러’를 고소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말은 ‘어떻게 작가가 이용자를 고소할 수 있냐’는 거였다. 그들은 권력구도에서 자신을 위에, 작가를 아래에 두고 갑질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불특정 다수가 가하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이버 불링은 여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동한다.

“‘성기를 찢어버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2016년 ‘넥슨 사태’ 이후 사이버 스토킹을 심하게 당했다. 1년 정도는 인터넷을 안 했을 정도다. 지금도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게임 커뮤니티에 ‘쿵쾅이 또 시작했네’라며 바로 글이 올라온다. 나에 대한 정보를 커뮤니티에 올리면 ‘베스트’ 글에 올라가니까, 내가 싫다면서도 나를 통해서 관심은 얻고 싶은 거다.” (작가 박지은씨)

“‘죽어라’, ‘자살해라’, ‘망해라’ 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두 번 다시 한국 업계에서 안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있고, ‘니 애미’, ‘니 애비’를 운운하며 ‘패드립’(패륜적인 발언)을 치는 사람도 있다.” (일러스트 작가 ㄱ씨)

“사이버스토킹이 시작되면서 트위터에서 내가 3년 전 ‘마음에 들어요’ 표시를 한 걸 찾아냈다. 나는 기억조차 못하던 트윗을 골라내 ‘메갈’ 낙인을 찍었다.” (일러스트 작가 ㄴ씨)

전문가들은 현실 속에서 혐오표현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함께 볼 때,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를 똑같이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 “메갈이나 일베나”는 성립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씨앗이 잘못 움튼 것은 아닐까. “메갈이나 일베나 다를 게 없는 혐오 종자”라는 식의 주장이 여성이라는 특정 정체성을 지닌 개인에 대한 신상털이, 사상검증, 사이버불링, 노동권 침해를 모두 정당화할 수 있을까. 남성에 견줘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 아닐까.

김수아 강의교수(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는 “‘소비자운동을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메갈’이) 사회에 해악을 미친다고 하는데 그걸 증명하지 않고, 그냥 ‘메갈이나 일베나’라고 통칭하면서 (여성혐오 표현을 ‘미러링’한) 특정 표현을 문제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과)도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메갈리아’에 대해 “사회적 효과를 보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똑같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여성혐오적 말이 여성차별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러링’ 차원에서 발화되는 남성혐오적 말이 남성차별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혐오스러운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들이 낳는 사회적 효과에 주목”해야 하고,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는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메갈 사냥’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소위 ‘메갈’이 사용하는 용어가 남성의 실제 삶이나 사회에 폐해를 입힌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그런데 여성 일러스트 작가가 한국여성민우회 계정을 ‘팔로우’하는 일이, 계약해지된 동료 작가를 지지하는 글을 공유하는 일이, 페미니즘 관련 트위트에 ‘마음’ 표시를 하는 일이 남성 게임 이용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을까? ‘한남’이란 딱지가 그들의 생계에 타격을 입히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혐오는 남성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명백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김수아 교수는 “지금 게임 영역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혐오표현으로 경멸, 멸시를 하는데 끝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며 “1960∼70년대 미국에서 인종 혐오표현이 부각되면서 흑인들을 직장이나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었던 것처럼 여성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표현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개인이 사상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이런 방식으로) 특정 집단으로부터 계속 검열을 받는 현상은 민주사회에 굉장히 큰 해악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말했다.

<페이머즈>에게 ‘페미니스트 게이머’의 정의를 물었다.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답이 돌아왔다. ‘혐오의 웅덩이’는 과연 누가 깊게 파고 있는가.

▶혐오에 쫓겨나는 여성들 1회 :“메갈 잘라라” 한마디에…게임업계 밥줄이 끊어졌다

박다해 이유진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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