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난민 빗장' 주변국 "폭발 직전"..낯선 땅 한국까지

심윤지·최민지 기자 2018. 6. 2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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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예멘인 500여명, 아덴만에서 제주도까지 온 까닭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과 후티 반군의 격렬한 교전으로 폐허가 된 예멘의 남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를 떠난 난민들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짐을 실은 차량에 올라탄 채 하자주 북부의 임시 난민 캠프에 도착하고 있다. 하자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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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 500여명이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후 한국에서도 난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난민 문제가 이미 전 세계적 화두가 된 상황을 감안하면 국내의 난민 논의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중동에 있는 인구 2800여만명의 나라 예멘인들은 어떤 연유로 8300여㎞ 떨어져 있는 제주까지 찾아들게 됐을까.

난민들이 주로 선진국에 체류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대부분은 고향과 가깝고 언어·종교가 비슷한 주변국에 머물고 있다.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주변국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이다. 주변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이미 많은 수의 난민을 받고 있다. 더 이상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유럽은 2015년 이후 난민 신청자가 대거 유입하자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다. 들어오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출입문은 점점 닫혀가는 상황이다.

■ 예멘 사태 어디까지 왔나

‘아랍의 봄’ → 내전 → 국제전 국내 유민 200만·월경 19만명

예멘에 난민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장기간 지속되는 내전 탓이다. 2012년 2월 33년간 장기 독재한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물러났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바람 ‘아랍의 봄’이 예멘에 당도하면서다.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예멘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슬람 수니파인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를 대통령으로 한 과도정부가 시아파 후티 반군과 충돌했고, 그 사이 암약하고 있던 알카에다 추종 세력까지 활개를 쳤다.

2014년 8월 시아파 맹주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이듬해 1월 대통령궁까지 접수하고 하디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내전은 격화했다. 하디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2016년 유엔 중재하에 평화협상이 진행됐지만 이내 결렬됐다.

이후 2년 가까이 후티 반군은 사나를, 과도정부군은 남서부 아덴을 거점으로 대치하고 있다. 2015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최소 1만3600명이 내전 중 사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유민은 200만명, 국경을 넘은 사람도 19만명에 육박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예멘 전역에 돈 콜레라로 약 90만명이 감염되고 2000명이 사망했다. 지난 22일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인구 2800만명 중 2220만명이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사우디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반군 점령지이자 최대 구호물자 통로인 예멘 남서부 호데이다항을 사실상 탈환하면서 인도적 위기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예멘 난민 어디로 갔나

난민 주로 주변 이슬람국 선호 요르단엔 시리아인만 60만명 말레이도 로힝야족 등 15만명 문제는 경제력 한계·내부 반발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17 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주변국인 요르단(3703명)이다. 이어 이집트(2477명), 말레이시아(1155명), 수단(886명) 등 이슬람권 국가가 뒤를 이었다. 지리적·문화적으로 예멘과 유사성이 있는 국가들이다.

1994년 난민 빗장 푼 한국엔 예멘인 1005명, 전 세계 0.4%

종교나 문화가 다른 한국은 예멘인들에게 인기 있는 피란처가 아니다. 1994년 법무부가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이래 지난 21일까지 한국에 망명을 신청한 예멘인은 총 1005명으로, 전 세계 예멘 난민의 0.4%에 불과하다.

문제는 예멘의 주변국이 이미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 약 60만명(정부 추산 140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난민협약 가입국은 아니지만 미얀마 로힝야족 출신 6만6000여명을 포함해 약 15만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난민 대부분은 빈곤선 아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장은 “당국이 체류를 허용해도 취업이나 교육 기회는 엄격하게 제한하다보니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멘 난민들은 ‘살 만한 곳’을 찾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제주까지 떠밀려왔다. 지난 4월 예멘 북서부 이브 지역을 탈출해 제주로 왔다는 아메드 압두(23)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미국도, 유럽도, 사우디도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며 “제주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어쩌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난민 수용의 불평등

난민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주변국 쏠림 현상은 더 뚜렷해진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들에게 가장 많이 난민(인도적 체류자 포함) 지위를 인정한 나라는 350만명을 수용한 터키다. 대부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었다. 터키 다음으로는 파키스탄(139만명), 우간다(135만명), 레바논(99만명), 이란(97만명) 등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나라들이다. 반면 유럽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독일은 97만명으로 6위에 그쳤다. UNHCR은 전 세계 난민의 85%가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고 추산한다.

주변국들은 대부분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멘 내전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난민 유입이 급증하자 더 이상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요르단은 2016년 2월 난민 수용 능력이 “폭발 직전”이라며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원 규모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정부 연간 수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용을 난민 지원에 써왔던 요르단은 결국 같은 해 10월 국경 폐쇄를 선언했다. 적은 일자리를 두고 주민과 난민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잇단 테러가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변국들은 이제 난민들과의 ‘공존’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19일 최근 터키 지방정부연합이 시리아 난민에게 무료 언어 강좌를 제공하고 시리아인의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법령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간다 역시 구호단체 지원물자를 주민과 난민이 3 대 7로 나누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난민들이 당장 귀환할 가능성이 없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 짐을 떠안기란 불가능하다. 당장 자국민의 반발이 심각하다. 지난해 터키 빌기대학교 연구팀이 진행한 ‘시리아 바로미터 2017’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리아인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는 질문에 터키인 2명 중 1명꼴(46.5%)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완전히 동의한다’는 1.1%에 불과했다.

■ 누가 책임질 것인가

UNHCR에 따르면 전쟁, 폭력 등을 피해 고향을 떠난 강제이주민은 2017년 말 기준으로 6850만명에 이른다. 역대 최대 규모다.

‘난민 협약’ 강제성 없어 실효 EU 셈법 제각각, 해법 ‘방황’

하지만 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1951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는 한국을 포함해 총 144개국이 가입했다. 난민 문제를 국제사회 책임으로 규정한 이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난민을 분산 수용하게 하는 ‘쿼터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어 각국은 출입국 관련 법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난민 수용을 제한하고 있다.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의 난민을 수용해온 유럽도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난민 문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유럽연합(EU) 16개 회원국 정상들은 서로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만 확인했다. 이 회의에선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해 어떤 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다. 유럽 외부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이었다. 각국 정상들의 셈법이 제각각이어서 애초에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난민 분담 수용에 반대하는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심윤지·최민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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