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장 안해, 치마 입지마".. 거세지는 탈코르셋 열풍

김은영 기자 2018. 6. 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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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강박에서 벗어나자… 탈코르셋 운동 확산
‘화장, 치마는 코르셋’ vs ‘탈코르셋 강요하는 게 코르셋’ 신경전도

사진 인증 SNS 인스타그램에서 #탈코르셋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5000개에 가까운 게시물이 검색된다. 상당수가 화장품을 부수고 짧게 자른 머리를 인증한 내용이다./인스타그램 @saenal_y

# “허리까지 기르던 긴 머리를 짧게 잘랐어요. 많이 망설였는데, 자르고 나니 속이 후련해요.” (대학생 김모 씨, 21세)

# “중3 때부터 화장을 했어요. 화장하지 않은 날엔 친구들이 ‘화장은 매너야’, ‘입술이라도 바르지’라고 했죠. 하지만 왜 그렇게 얼굴에 신경에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젠 화장 안 할래요.” (고등학생 한모 씨, 19세)

# “치마 입고 친구를 만났는데 저더러 ‘코르셋을 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저 치마가 좋고 편해서 입었을 뿐인데,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었다고 하니 난감했어요. 이제 치마나 원피스를 입는 게 눈치가 보여요.” (대학생 박모 씨, 24세)

“저 ‘탈코(탈코르셋)’해요.” 요즘 10~20대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는 ‘탈(脫)코르셋’이다. 탈코르셋이란 화장이나 긴 머리 등 여성에게 강요되온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사회 운동으로 최근 빠르게 번지고 있다. 여성 체형 보정 속옷인 코르셋을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해 만든 신조어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말자는 내용을 담았다.

◇ 치마 입으면 코르셋? 1020세대 ‘탈코르셋’ 설전

뷰티 유튜버 배리나 씨는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가 화장하는 동안 ‘회사 편하게 다니네’, ‘요즘은 화장하는 게 예의야’라는 자막이 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들이다. 공들여 화장을 마친 그는 다시 화장을 지우고 안경을 썼다. 그리고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4일 공개된 이 영상은 현재 163만여 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뷰티 유튜버 배리나 씨는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하는 영상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유튜브 영상 캡처

10~20대 여성 회원이 주축이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원피스와 블라우스를 추천하는 게시물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전 같으면 ‘몇 번째 옷이 예쁘다’, ‘그 옷 어디 거냐’라는 댓글이 오갔을 테지만, “이것이 코르셋’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어 “이런 옷 말고 바지나 티셔츠 같은 옷을 입어라” “긴 치마도 편한데, 치마는 무조건 코르셋인가?”라는 설전이 벌어졌다.

대부분 ‘코르셋’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공감하면서도, 옷차림과 코르셋의 연관성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옷은 모두 코르셋이다”라는 쪽과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입지 못하게 하는 게 코르셋 아니고 뭐냐”라는 쪽으로 갈렸다. “나는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피곤하다”며 회피하는 이들도 있다.

청소년들도 탈코르셋 운동에 적극적이다. 얼마 전엔 10대 청소년으로 구성된 평택시 청소년 페미니즘 연합 동아리가 탈코르셋에 동조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교사 최인아 씨(39)는 이들의 생활양식에 주목했다. 정 씨는 “요즘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교복을 입는다. 아예 교복에 틴트(Tint·입술에 바르는 색조 화장품) 주머니가 달려 나올 정도”라며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인증하는 SNS 소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강박감이 크다. 그 스트레스가 탈코르셋 운동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 초등학생도 화장... 외모 강박이 만든 탈코르셋 운동

남성들도 탈코르셋에 관심을 둔다. 대학생 김재현(26) 씨는 “친구들과 여성의 외모를 품평한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고백했다. 이동우(22) 씨는 “길을 가다 숏컷을 한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내 생각과 다르게 오해를 살 수 있을 거 같아서”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1968년 미국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에 반대해 쓰레기통에 브래지어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여성들./핀터레스트

일각에선 급진적인 태도를 우려한다. 대학원생 정나리(27) 씨는 “SNS상에서 인증하는 게 번지면서 탈코르셋이 유행이 된 느낌이다.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게 탈코르셋의 본질인데, 무조건 남들이 하니 따라 하고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조롱하는 거 같아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송지은 씨(35)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의미 있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 운동이던 처음 시작은 과격하지 않나. 다양한 논의를 거치다 보면 결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로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탈코르셋 운동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1968년 미국에선 미인대회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치마와 속옷 등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50여 년이 지났지만 탈코르셋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주연을 맡은 엠마 왓슨은 실제로 코르셋 착용을 거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탈코르셋 운동은 지속해서 퍼지어야 한다. 단, 타인을 조롱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선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꾸밈을 거부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듯, 꾸미는 것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1920년대 짧은 머리에 코르셋이 필요 없는 ‘가르송 룩’을 선보인 샤넬./핀터레스트

그렇다면 패션사에서 여성을 ‘진짜’ 코르셋에서 해방한 이는 누구일까? 1900년대 초 프랑스 디자이너 폴푸아레는 코르셋이 필요 없는 의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탈코르셋은 여성 인체 해방을 의도했기보다, 스타일의 혁신이 목적이었다. 의도적인 해방은 샤넬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1920년대 선보인 ‘가르송(garcon) 룩’을 통해 이뤄졌다. 짧은 머리에 단순한 H라인 원피스와 바지를 입은 모습은 이전의 요조숙녀와는 다른 자유분방한 신여성의 이미지로 여성들의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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