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원영이 사건을 책상물림 검사가 해결?..자괴감 든다"

남빛나라 2018. 6. 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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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검사 "경찰 수사지휘 해서 암장될뻔한 사안 규명"
형사과장 "그런 수사지휘는 필요치 않습니다" 반박글
"수많은 경찰이 발로 뛰며 해결한 사건을 언론플레이"
"사무실 있던 검사가 사실 호도..책상 앉아 서류만 봐"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문 발표에도 검경 또 충돌 양상
【평택=뉴시스】이정선 기자 =지난 2016년 3월14일 진행된 故신원영군 암매장 사건의 현장검증 모습.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서 친부 신모씨(38)가 현장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2016.03.14.ppljs@newsis.com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정부가 지난주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한 가운데 2016년 발생한 '원영이 사건'을 둘러싸고 검경이 진실 공방을 벌였다. 현직 부장검사는 이 사건을 예로 들며 검찰 수사지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과장은 경찰 내부망에 "그런 수사지휘는 필요치 않습니다"란 제목의 글을 게시하며 검찰 측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원영이 사건'은 추운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화장실에 6세 아이를 가둔 채 학대하고, 냄새가 난다며 발가벗겨 락스를 들이붓고 찬물을 뿌린 채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원영이의 계모와 친부는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먼저 강수산나(50·사법연수원 30기)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지난 22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수사지휘 사례를 통해 본 검사 수사지휘의 필요성'이란 글을 올려 해당 사건에서 경찰 수사의 미진한 부분을 검찰이 수사지휘해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를 했지만 검찰 지휘를 통해 제대로 처리될 수 있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담당한 박덕순 전 경기 평택경찰서 형사과장(현 수원서부서 형사과장)은 25일 경찰 내부망에 '강검사님 그런 수사지휘는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박 과장은 "올해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한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원영이를 상기하며 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개인적으로는 피해자의 시신을 직접 만졌을 당시의 느낌이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거절했다"며 "하지만 언론만 접한 많은 경찰 동료분이 오해할 것 같아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글을 올리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수많은 경찰관이 발로 뛰어 해결한 사건이다. 이를 사무실에 앉아있던 현직 검사가 사실을 호도하면서 '경찰관이 수사의 기본인 금융계좌추적을 하지 않아 자신이 이를 지휘해 사건을 해결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사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같은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박 과장은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서장님을 전담팀장으로 하고 지방청 광역수사대, 강력계 직원 23명을 지원받아 총 57명의 경찰관이 정말 밤잠을 설쳐가며 수사했다"며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 보는 검사는 우리가 피의자 진술에만 의존, 수색 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사 방향을 다면화해 물 샐 틈 없이 수사했던 것이며 한쪽으로만 수사치 않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강 부장검사가 2차례에 걸쳐 강력3팀장을 불러 갔더니 '사체 찾는 게 중요하다'며 '금융정보 확인하라, 디지털 포렉식 하라'고 지시했다더라"면서 "이미 다 하고 있는 것이며 수사의 기본인데 겨우 그걸 지시하려고 바쁜 수사팀을 검찰청으로 오게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글에 따르면 원영이 계모와 친부의 금융거래내역을 살핀 경찰은 부부가 이상한 장소에서 초콜릿을 구입한 흔적을 확인한 끝에 해당 가게 근처에 원영이 친할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묘 주변을 수색하던 중 삽자루를 발견해 이들 부부에게 원영이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송치 하루 전 평택지청에서 열린 수사회의에서 강 부장검사는 박 과장에게 "피의자의 죄명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고 물었다.

박 과장에 따르면 강 부장검사는 "살인죄로 하지 말고 아동학대치사죄로 의율(법을 사건에 적용)하라. 경찰에서 살인죄로 의율했는데 검찰에서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요구했다. 이에 박 과장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관들을 수사팀에 합류시켜 법률을 검토 중이니 경찰의견은 내일 송치의견서로 보내겠다"고 답했다.

박 과장은 "이후 경찰에서 살인죄로 의율 송치했고 검찰에서도 살인죄로 기소, 유죄의 판결을 받게 된 것"이라며 "만약 강 부장검사의 구두 지휘대로 아동학대치사죄로 의율 송치하고 검찰에서 살인죄로 기소했다면 그 검사는 경찰관이 법률 적용을 못했다고 또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을까 의심된다"고 썼다.

그는 "강 부장검사의 글을 보니 전교 1등 하는 학생을 교장 선생님이 불러 수학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고 그다음 날에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마치 자신이 열심히 지도해 그 학생이 전교 1등 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건을 하면서 검찰과 법원에 고마웠던 점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사가 신속히 법원에 청구해줬고 법원 또한 신속히 발부해줬다는 점"이라며 "검사와 검찰청 직원이 관련된 사건, 특히 전관 변호사가 개입된 사건에서도 원영이 사건처럼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사가 신속히 법원에 청구해주면 우리 사회가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 좀 더 깨끗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촉구했다.

강 부장검사는 지난 22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에 대한 유기적인 수사지휘로 피의자들의 신병을 조기에 확보하고 피해자 사체를 신속히 발굴함으로써 암장될뻔한 사안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글에 따르면 검찰은 경찰에 '진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피의자들의 신용카드, 교통카드, 폐쇄회로(CC)TV 분석 등 수사 범위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기본적인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강 부장검사는 "치밀한 법리 검토로 학대를 한 계모와 방관자인 친부를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 공범으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고 검찰의 역할을 강조했다.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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