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건물주, 월세 4배 올린 후 "싫으면 나가라"

김노향 기자 입력 2018. 6. 25. 08:27 수정 2018. 6. 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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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임차인의 눈물 ① 있으나 마나한 '보호법'
 

본가궁중족발 사태가 일어난 서울 서촌마을 /사진=머니투데이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갓(god)물주로 풍자되는 건물주의 무소불위 갑질이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가게 월세를 3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려 망치로 폭행당한 ‘본가궁중족발 사태’를 계기로 임차인들은 하나둘 거리로 나와 법앞에 평등한 임대차계약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회원들은 지난 6월15일 국회에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20일에는 세입자의 재계약을 거부해 2년째 소송 중인 서울 노량진 박문각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처럼 법이 세입자의 임대차 재계약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들어올 때는 세입자 마음이지만 나갈 때는 건물주 마음대로인 현행법상 허점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제2의 궁중족발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이에 <머니S>는 상가 임차인 보호 제도의 현주소와 해외사례, 법 개정의 필요성 등을 낱낱이 분석했다.<편집자주>

# “족발값은 족발집 주인이 정하고 임대료는 건물주가 정하는 게 자본주의가 워킹(working)하는 방식이지.” 세입자와 임대료 인상을 놓고 갈등을 빚다 망치로 폭행 당한 ‘본가궁중족발 사태’의 당사자인 건물주 이모씨(60)는 최근 가게 안을 촬영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정용택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존재함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법 위의 갑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이씨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세입자 김모씨(54)는 건물주의 계좌번호를 몰라 월세를 법원에 공탁하며 대항했지만 ‘리모델링’을 명분으로 내세운 명도소송과 강제집행 앞에 무력해지자 망치를 들었다.

# “1층 세든 카페는 우리 학원 수강생이 다 팔아준 거나 마찬가진데 고마운 줄 알아야죠. 앞으로는 우리가 직접 운영해 학생들이 커피 마시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할 겁니다.” 세입자의 임대차 재계약 요구를 거부해 2년째 소송 중인 서울 노량진 박문각빌딩 관계자는 “법이 세입자만 보호하고 임대인의 재산권은 보호하지 않는다”고 따졌다. 이 건물 세입자 박지호씨는 5년 동안 인테리어비를 투자하고 홍보활동을 해 한달 매출 500만원의 카페로 키워놓았지만 건물주가 재계약은 물론 박씨와 새 세입자의 권리금계약마저 거부하자 소송으로 긴 세월을 싸우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린 궁중족발 사태는 단순히 ‘망치 폭행’이라는 사건 뒤에 숨은 건물주의 무리한 임대료 인상 등 갑질이 드러나 세입자에 대한 동정여론을 형성했다. 궁중족발 건물주가 가게 월세를 4배 올린 이유는 건물값을 올려 팔려는 의도지만 그 이면에는 보호기간 제한, 권리금 거부 등 현행법상 허점을 이용해 건물주가 맘만 먹으면 세입자를 내몰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망 피하는 ‘나쁜 건물주’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세입자의 임대료를 한번에 5% 초과해 인상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또 세입자가 재계약을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계약초기 5년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인테리어비 등을 많게는 수억원 투자하기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 폐업하거나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5년 이상 계약을 원한다.

건물주가 이런 세입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명도소송 등으로 가게 되면 대개 건물주가 승소한다. 계약 당사자가 서로 합의한 기간이 만료돼서다. 세입자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도 발생하는데 이번 궁중족발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건물주 이씨는 세입자 김씨가 “나가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자 법원에 명도소송을 내 승소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12차례 강제 퇴거명령을 집행했다. 2차 강제집행이 있던 지난해 11월9일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용역 직원은 김씨 손이 싱크대에 낀 것을 보고도 억지로 끌어내다가 손가락 4마디가 부분 절단됐다. 이 과정에서 국가를 대리해 강제집행을 감독하는 집행관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강제집행 현장의 폭력은 대부분 건물주가 불법고용한 사설용역 직원으로부터 발생한다. 집행관도 빠른 시간 안에 집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런 폭력을 방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4월 주최한 ‘집행관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집행관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각종 비리와 부당한 집행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관계자는 “세입자 김씨의 폭행은 정당화할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상인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한 법과 제도가 있다”며 “조물주 위 건물주, 갓(god)물주의 나라로 풍자되는 한국사회의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시행착오 겪는 권리금문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또 다른 쟁점은 권리금이다. 권리금은 기존 세입자가 영업활동을 통해 이룬 매출증대, 단골손님 증가, 주변상권 발달 등에 대한 무형의 가치를 새 세입자에게 파는 것이다. 새 세입자는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권리금계약을 맺는다. 때로는 임대료보다 높은 권리금도 있어 건물주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일부 건물주는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빼앗아 자기가 운영하려고 하거나 가족·지인 등에게 넘겨주기도 하고 세입자를 내보낸 뒤 직접 새 세입자를 구해 높은 임대료계약을 맺어 이득을 취하는 등 다양한 수법을 활용한다.

이에 따라 2015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세입자 간 권리금계약을 거절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건물주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월세를 과도하게 올리는 방법으로 새 세입자를 구하는 행위를 방해하기도 한다.

박문각 사건도 권리금 갈등이 있었다. 세입자 박씨는 상권이 침체돼 공실이던 상가를 싼값으로 계약한 뒤 수개월동안 매일같이 건물 앞에 불법주차된 트럭을 구청에 신고해 손님이 잘 드나들게 만들었다. 또 인근 상인들에게 홍보비를 내 가게마다 포스터를 부착했다.

장사가 잘되자 권리금을 지불하겠다는 새 세입자가 나타났지만 박문각 측은 상가를 직접 운영할 계획이라는 이유로 권리금계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행법에 따라 건물주는 세입자를 내보낸 자리에서 1년6개월 동안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는 1년6개월 동안 영리활동을 포기하면 건물주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금전부담이 적은 건물주일수록 개의치 않는다.

박씨 측 변호인인 조성훈 변호사는 “돈 많은 건물주는 손실을 감수하기도 하고 1년반 동안 리모델링해서 새 세입자와 고액의 임대료로 계약해 손실을 보전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박문각 건은 학원 확장을 이유로 세입자 재계약을 거부했는데 학원 운영 역시 영리활동이라는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상태”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6호(2018년 6월27일~7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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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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