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즐기자" 버는 족족 쓰는 中 월광족, 구찌 가치 66% 끌어올렸다

황수연 2018. 6.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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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벌어 한달 쓰는 소비행태.. "저축보다 소비"
월급 다 쓰고 모자라 부모에게 손 벌리기도

“나를 더 나아 보이게 만드는 건 항상 가장 중요해요. 사람들한테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어요.”
명품 회사에서 일하는 마커스(26)는 치장에 관심이 많다. 버는 돈의 대부분을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데 쓴다. 스위스 화장품 라프레리의 로열 회원일 정도다. 한번 쇼핑하러 가면 최소 4만 위안(약 684만원)을 쓰는 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커스는 중국의 ‘월광족(moonlight clan)’ 중 한명이다. 월광족이란 달을 뜻하는 ‘월(月)’과 동사 뒤에 붙어 ‘다 써버리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광(光)’을 합친 신조어다. 그달 월급은 그달 다 써 월말이면 남는 월급 없이 빈털터리 상황의 20~30대 밀레니얼 세대를 가리킨다. 주로 외국계 금융회사나 예술, 미디어, IT 업계 종사자가 많고, 의류나 화장품을 사는 데 월급의 대부분을 쏟아붓는다. 외식·여행 등에 소진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구찌 매장. [AP=연합뉴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월광족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구찌의 가치를 대폭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케팅리서치 업체 칸다 밀워드 브라운이 발표한 올해 ‘브랜드Z(BrandZ)’에서 구찌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보다 66% 뛴 224억 달러(약 24조9200억원)로 평가받았다. 브랜드가 속한 모기업과 소비자 인식 등을 모두 아우른 평가다. 신문은 “월광족이 주요한 기여자”라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씀씀이가 헤픈 젊은 쇼핑객 덕에 그 어느 때보다 구찌의 가치가 상향됐다”며 “쇼핑 인구의 통계학적인 변화라기 보다 폭주족 같은 월광족의 소비현상이 구찌 성장의 많은 부분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지금을 즐기자” 수백만 원 펑펑도

PR 회사에 다니는 릴리(29·여)는 대표적인 월광족이다. 한 달에 1만5000위안(약 257만원)을 버는데 이 중 3분의 2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쇼핑하는 데 쓴다. 3000위안은 친구와 함께 사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월세로 나간다. 부모님은 차나 집을 사려면 돈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고 잔소리하지만, “지금은 돈을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정이 좋은 달은 저축하기도 하는데 저축은 날 행복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는 게 릴리의 얘기다.

자신을 클린턴(24)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내일은 없는 것처럼 돈을 쓴다”고 말한다. 벌어들이는 돈의 70%를 노는 데 쓴다. 나머지는 스파 마사지나 하이엔드 홈 액세서리, 충동적인 의류 소비 등에 나간다. 한 물건에 그의 월급 절반 가까이인 90만원가량을 들이는 건 문제 되지 않는다.
구찌 매장 앞에 줄을 길게 선 중국인들. [파이낸셜타임스 캡처]
뉴미디어 회사에서 일하는 티엔느(30·여)도 “저축보다 삶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춘절을 맞아 모로코로 일주일간 여행을 갔는데 100만원가량을 썼다. 월급 절반이 대출금을 갚는 데 들어가지만,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바(Bar)나 클럽, 전시관 등을 꼭 찾는다. 상하이에 사는 드셀레(29)도 여행에 그의 평균 월급인 1만 위안(약 171만원)을 아낌없이 쓴다.


풍족하게 자라 저축보단 “자유롭게 소비”

SCMP에 따르면 월광족이란 용어는 2011년 즈음부터 서방 언론들이 쓰기 시작했다. 중국 광저우의 15~35세 젊은 층 10명 중 3명 이상(35%)이 월광족 소비 행태를 보인다는 조사가 나온 뒤다. 월광족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유입된 즉흥 소비문화가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호황기에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데다 갓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한 Y·Z 세대가 자유롭게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저축을 한 부모세대와 달리 현재를 즐겨야 한다는 게 월광족들의 생각이다.
중국 위안화. [로이터=연합뉴스]
이들이 한 자녀 정책 시행 때 태어나 ‘소황제’처럼 대접받으며 자란 영향도 있다. 해외 유학 당시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돈 걱정 없던 클로이(24·여)는 저축하지 않고 쓰는 소비 습관이 그때 굳어져 바꾸기 어렵다고 말한다. 버는 것보다 많이 쓰고 모자라면 지금도 부모에 손을 벌린다.

소액 대출 애플리케이션이나 온라인 신용카드 등 새로운 핀테크 수단이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습관에 영향을 준 측면도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보수적 소비 환경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젊은 층이 기회와 부흥이란 시진핑 주석의 비전에 반응하면서 소비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칸다 밀워드 브라운의 브랜드Z 부문 글로벌 평가 책임자인 엘스페스 청은 “시진핑의 ‘차이나드림’이 소비자들에게 미래는 밝을 거란 사실을 확신시켰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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