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철로 위로 울려퍼진 '평화의 노래'

2018. 6. 25.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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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3칸짜리 열차·버스로 이동하며
백마고지·월정리역·고석정 등서
라이브 공연·얘기 이틀간 이어져

이승환·크라잉넛·장기하와얼굴들
글렌 매트록·뉴턴 포크너 등 참여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로 퍼질 것"

[한겨레]

23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에서 선우정아가 노래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위대한 록 공연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거든.”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영화 <스쿨 오브 락> 주인공 듀이 핀(잭 블랙)의 대사를 인용했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반전, 평화의 가치를 내걸어 세상을 바꾼 것처럼 오늘 출발한 이 기차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길 바랍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는 승객들에게 말했다. 23일 아침 9시35분 서울역을 출발한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은 백마고지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23일 아침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DMZ 피스트레인 앞에서 아프리카 공연팀 쿨레칸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이날 운행한 세칸짜리 특별열차는 23~24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열린 ‘디엠제트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하나다. 축제에 참여하는 150명이 탄 열차에서 라이브 공연과 여러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마틴 엘본 축제 공동집행위원장은 “한반도에서 평화가 이뤄진다면 전세계 어디든 평화가 퍼져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프로그래머인 그는 지난해 한국 디엠제트를 찾았다가 “음악축제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이번 축제를 추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에서 백마고지가 아니라 평양, 모스크바,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표를 파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를 불렀다.

23일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공연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백마고지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철원 노동당사로 이동했다. 해방 직후 북한 관할이었던 이곳에 지어진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때 파괴돼 뼈대만 남아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축제 오프닝 공연이 열렸다. 차진엽 무용가와 그가 이끄는 팀 ‘콜렉티브 에이’는 노동당사 안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과거 이곳에서 고문받고 학살당한 이들의 아픔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는 아름답고 슬펐다. 선우정아는 노동당사 앞마당에서 ‘비온다’ 등을 노래했다.

23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에서 ‘차진엽 콜렉티브 에이’ 무용가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오프닝 공연 후 버스는 민간인통제선 안 월정리역으로 이동했다. 서울과 원산을 오가던 경원선 기차역이었으나 분단 이후 폐쇄된 곳으로,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과 가장 가까운 남쪽 마지막 기차역이다. 끊긴 철로 앞에 세운 무대에서 백현진과 방준석이 결성한 듀오 ‘방백’, 강산에,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가 노래했다. 무대 뒤로는 녹슨 열차가 멈춰서 있었다. 옆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적은 간판이 서있었다. 강산에는 “남북으로 철도가 개통돼 시베리아까지 달릴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기차 타고 갑니데이~” 하고는 1집 수록곡 ‘예럴랄라’를 불렀다.

23일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특별 공연에서 강산에가 노래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버스는 다시 민간인통제선 밖으로 빠져나와 철원군 동송읍 고석정으로 이동했다.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팔경의 하나로, 임꺽정의 전설이 있는 명승지다. 고석정 인근에 잔디광장, 놀이공원 고석정랜드 등이 있는데, 이곳에 축제 메인 무대인 ‘피스 스테이지’와 ‘플레이 스테이지’를 마련했다. 이틀에 걸쳐 이승환, 크라잉넛, 장기하와 얼굴들, 이디오테잎, 새소년, 잠비나이, 씽씽, 이상순 등 다양한 장르의 31팀이 무대를 달궜다.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 원년 멤버 글렌 매트록을 비롯해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조이스 조나단, 내한공연을 매진시키는 등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타이 포크 가수 품 비푸릿,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 출신 전자음악 듀오 제노비아 등 외국 음악가들도 참여했다.

23일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특별 공연에서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가 노래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 제공

올해 처음 연 이번 축제는 무료로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하면 추첨이나 선착순 마감으로 티켓을 줬다. 축제 사무국은 23일 첫날 공연에만 1만명 넘게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고 자평했다. 사무국은 내년에도 축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축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은 “내년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세계적 거장 뮤지션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올해는 지방선거 때문에 도에서 준비를 제대로 못했지만 내년에 또 한다면 확실하게 준비하겠다”고 지원을 약속했다.

철원/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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