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빵포장 알바에 '수습 딱지' 붙이더니..최저임금 10%를 깎았다

2018. 6.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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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orz]
3부 '법의 사각지대' 초단시간 노동자
③ 내 통장에 꽂힌 6840원

[한겨레]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쫓겨 낮밤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맞교대 노동자와 감정·감시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가 앞선 장면이었습니다.

‘노동orz’ 세번째 장면은 초단시간 노동입니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많은 법과 제도의 예외 사유입니다. 청년·여성·고령층 등 노동시장의 약자들은 ‘알바’라는 이름으로 법의 사각지대에 퍼즐 조각처럼 배치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이재임

4월30일 월요일 새벽 6시. 파리바게뜨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망했다. 왜 오늘 같은 날 생리가 터지지.’ 가방 안주머니에 생리대를 쑤셔 넣었지만, 일하는 동안 한 개라도 꺼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생리통 탓에 허리와 무릎이 뻐근했다. 출근 전 근로기준법을 검색했다. ‘제73조.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 주3일 출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에게 그런 건 법에나 있는 말이었다. 구인구직 누리집 ‘알바천국’이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 32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해 9월 공개한 설문결과를 보면, 생리휴가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는 96.3%에 달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주변에 생리휴가를 쓰는 사람이 없어서’(37.9%), ‘말하기 어려워서’(18.5%)였다. 둘 다 맞는 얘기였다.

마침 이날 같은 시간대에 일했던 혜윤(30·이하 모두 가명) 언니가 몸이 아파 결근했다. 일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매장에서 든 사람은 티가 안 나도 난 사람의 자리는 티가 났다. 평소 3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하려니 말 그대로 ‘숨 쉴 틈’조차 없었다. 주문이 밀려 손님 줄이 매장 입구까지 늘어섰다. 결국 매니저의 에스오에스(SOS) 신호를 받은 사장님이 오전 11시께 매장에 나와 포스(계산)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오후 1시. 출근하고 5시간 만에 생리대를 갈 수 있었다.

※누르면 확대됩니다.

‘초단시간’이어서 포기한 것

근로기준법은 초단시간 노동자의 노동조건 앞에서 미끄러진다. 생리휴가뿐 아니라 휴게시간도 마찬가지다. 4시간 이상 일할 경우 30분, 8시간 이상 일할 경우 1시간씩 휴게시간을 제공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제54조)은 초단시간 노동자의 업무 스케줄과는 어긋났다.

주말 오후 4시30분에 출근했던 애슐리에서는 빠르면 4시45분, 늦어도 5시 전에 식사를 겸한 휴게시간인 ‘밥차’를 쓰라는 지시가 무전으로 떨어졌다. 저녁 6시 무렵 손님이 몰려들기 전에 휴게시간을 모두 쓰게 하려는 ‘시간 안배’였다. 쉬지 않고 근무하다 과로로 건강을 잃거나 근무시간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는 휴게시간 도입 취지와 동떨어진 얘기다. 애슐리 근로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휴게시간은 업무 진행 상황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매니저의 ‘밥차’ 지시는 ‘법적으로 휴게시간을 보장하긴 하겠지만,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는 절대 쉴 수 없다’는 암묵적인 룰과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강요된 휴게시간이 끝나면 그 뒤로 5시간 가까이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다.

휴게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건 다른 초단시간 노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리바게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사장님이 기자에게 물었다. “원래 법적으로는 30분 휴게시간을 줘야 하는데 이 시간은 무급이야. 중간에 쉴래? 아니면 5시간 빨리 일하고 퇴근할래? 어차피 이 시간대 알바하는 애들은 오래 일하지 않으니까 보통 5시간 일하고 바로 퇴근하더라고.” 잠깐 고민하던 찰나 매장 2층 구석에 있는 직원 휴게실이 눈에 들어왔다. 휴게실에는 직원이 앉아 쉴 수 있는 철제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기에 앉아 30분을 쉰다고? 무급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계산이었다. “그냥 5시간 일하고 바로 퇴근할게요.”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었다.

초단시간 아닌 주당 15시간 일해도
주휴수당 없고 근무시간에 최저시급만
숙련 불필요한 단순노무종사자인데
1개월 ‘수습기간’ 최저시급 90% 지급 ‘사용자 지휘 아래 대기시간도 근로’
근로기준법 규정은 지켜지지 않아
퇴근체크 뒤 10분여 지나야 진짜 퇴근
근로계약서 아예 작성 않는 경우도

애초에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이디야커피에서는 휴게시간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기자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일했던 지환(26)이 말했다. “손님이 갑자기 많이 몰리지만 않으면 일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아요. 그래도 가장 힘든 건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거? 하루 다섯 시간이지만 쭉 서 있으면 무릎이 진짜 아프거든요. 매대에 의자 하나만 있어도 좋을 것 같긴 해요.”

‘밥차’ 때 샐러드바 음식을 한 접시 먹을 수 있는 애슐리를 제외하면 파리바게뜨와 이디야에서는 밥을 주지 않았다. 저녁시간, 이디야커피 알바를 하다 배가 고프면 매장에서 파는 허니브레드를 구입해 지환이와 나눠 먹었다. 파리바게뜨에선 전날 팔다 남은 빵이나 판매 시한이 지나 냉장고에 넣어둔 샌드위치를 먹었다. 캡쳐해뒀던 파리바게뜨 구인공고를 확인해봤다. ‘근로조건: 식사 제공합니다’. 구인공고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아득했지만, 누구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업주가 식비?식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사업주의 재량이다. 못 파는 빵이라도 먹는 게 다행이었다.

4월18일 오후 1시, 파리바게뜨 알바를 마치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휴대전화로 뉴스를 읽다가 멈칫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 식대, 교통비 등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 ‘사장님 재량’ 덕분에 먹었던 샌드위치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기자가 근무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슈크림을 빵에 넣는 ‘크림작업’을 하고 있다.

‘초단시간’이라도 이건 불법입니다

4월14일부터 3주간 일했던 애슐리·파리바게뜨·이디야커피는 모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주 15시간을 일했던 파리바게뜨 알바는 정확히는 ‘초단시간’이 아닌 ‘단시간’ 노동이다. 그래서 주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 주어지는 주휴수당 적용 대상이었지만, 주휴수당에 관한 내용은 근로계약서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시간대에 일했던 미래(26)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주휴수당을 받아본 적 없다. 딱 일한 시간에 최저임금을 곱해서 받았다”고 말했다.

‘최저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돈이라서 최저임금’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알바 노동자들의 현장에선 슬픈 현실이었다. 기자가 작성한 파리바게뜨 근로계약서에 ‘붉고, 굵은’ 글자로 등장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최초 계약시 1개월은 수습기간으로 하며, 수습기간 동안의 급여는 90%로 한다. 근무태도, 업무능력, 책임감,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여 정식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파리바게뜨 시급 7600원, 그 90%는 6840원으로, 2018년 최저임금인 7530원보다 690원 낮은 금액이었다. 사장님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며 “처음 한 달은 배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도 처음 사람을 쓰면 위험부담이 있으니까 일부러 수습기간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법은 근로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에 한해 수습근로자의 3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10%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노무 종사자의 경우 숙련을 위한 별도의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꼼수로 악용하는 사업장이 많다는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해 9월 국회는 ‘단순노무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수습 중이라도 최저임금을 삭감할 수 없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정했다. 기자가 근무한 파리바게뜨 빵포장 알바 노동자는 ‘음식 관련 단순 종사자’였으므로, 기자가 맺은 근로계약은 위법이었다. 해당 기간 받지 못한 임금 10%는 첫 기사(<한겨레> 6월18일치 1·5·6·8·9면)가 나가고 이틀 뒤인 지난 20일 기자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알바 노동자의 급여는 노동시간에 최저시급을 곱하는 단순한 ‘산수’다. 그래서 근로계약서에서 가장 건드리기 쉬운 건 ‘임금’ 다음이 ‘시간’이었다. 애슐리에서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보면, “급여산정방법 : 출퇴근 시간은 분 단위로 측정하여 산정한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론 매장에 10~15분 전에 도착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사무실로 가서 출근 시간을 분 단위로 적었다. 퇴근할 땐 사무실로 가서 퇴근 시간을 적고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사무실에 적은 퇴근 시간보다 10~15분 늦게 매장을 나섰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시간’은 근무시간이 아닌 셈이다. 파리바게뜨와 애슐리도 마찬가지였다. 점주들은 하나같이 “유니폼 갈아입는 시간을 고려해 5~10분 정도 일찍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50조는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때문에 유니폼을 갈아입는 행위도 노동시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노동과 관계된 필수적인 부수 행위인 데다, 업소에 도착해 사용자의 실질적 지휘·감독 아래에 머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바노조가 지난 2015년 패스트푸드 알바노동자 238명을 조사해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97%에 이르는 231명이 “(출근 시) 유니폼을 갈아입거나 도구를 정비하는 업무 준비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출근 체크 전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8분42초, 퇴근 체크 뒤 매장을 나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52초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폼 환복 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 미지급과도 맞물린다. 파리바게뜨에서는 유니폼 환복시간까지 포함해 평균 5~10분 정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지만, 매대 옆에 있는 근무표에는 ‘다른 알바노동자들을 따라’ 칼같이 ‘08:00~13:00’이라고 적었다. 임금도 근무표에 적힌 만큼 지급됐다. 2층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카페의 쓰레기를 1층으로 들고 내려와 정리한 뒤에야 ‘진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알바노조 설문조사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퇴근 체크 뒤에도 일했다”에 응답한 57%(136명)는 기자와 비슷한 잔무를 처리했을 것이다. 먼저 매장을 나서는 초단시간 노동자의 ‘무임금’ 초과노동은, 업주 등 매장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매너’이자 ‘센스’처럼 여겨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듯.

기자가 근무한 이디야커피 매장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다.

초단시간이어서 견뎌냅니다

애슐리에서 작성한 ‘단시간근로자 근로계약서’에는 ‘주 15시간’이라는 말이 정확히 3번 등장했다. “주휴일 : 비대상(1주 평균 15시간 미만 근무자)” “주휴일(1주 평균 15시간 이상 근무한 자), 근로자의 날을 유급휴일로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통상근로자의 근로시간에 비례하여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한다(주 15시간 이상 근로자).” 모두 초단시간 근로자를 ‘예외’로 배제하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이다. 사용자가 구인공고에서 지정하고 근로계약서에 기재해 둔 노동시간,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초단시간·단시간 노동을 구분하는 탓에,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은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를 통한 ‘합법적인 차별’의 근거로 작동한다.

4대보험도 마찬가지다. 1시간이라도 일할 경우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산재보험과는 달리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건강보험은 모두 각각의 시행령을 통해 ‘1개월간 소정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자(1주 15시간 미만)’는 ‘적용 제외 근로자’로 명시하고 있다. 애슐리는 4대보험 가운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했지만, 파리바게뜨의 근로계약서에는 4대보험과 관련된 내용이 아예 없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이디야커피에서는 4대보험에 가입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한치의 에누리 없이 ‘최저임금×시간’으로 통장에 입금된 월급을 보며 ‘4대보험 때문에 따로 삭감된 금액은 없었겠구나’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2015년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토대로 인권위가 분석한 보고서(2016)를 보면, ‘근로형태별 사회보험 가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초단시간 노동자의 국민연금·고용보험 미가입률은 각각 92.5%, 97.9%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대보험 가입이 법으로 의무화된 단시간근로자·전일제 근로자는 국민연금 미가입률이 70.2%·19.2%, 고용보험 미가입률이 75.0%·24.4%로 크게 차이를 보였다.

청년유니온 이기원 노동상담팀장은 “4대보험 가입이 법적으로 보장된 단시간 노동자도 실제 가입률이 낮은데, 초단시간 노동자는 아예 법적으로 4대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합법적’인 차별을 받는 셈”이라며 “당장의 권리 보호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청년들의 국민연금 가입이 늦어지면서 미래에 예상 가능한 노후 소득이 줄어드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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