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의 야망..글로벌 벤처 시장 질서 뒤흔든 '공룡펀드'의 1년

조진형 입력 2018. 6. 25. 02:01 수정 2018. 6. 2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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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가운데)과 라지브 미스라(왼쪽) 비전펀드 최고경영자(CEO)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관계자와 함께 한 모습. [FT 캡처]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투자 펀드인 ‘비전 펀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야망이다. 지난해 손 회장은 이 펀드를 출범시키며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관련 유망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로부터 450억 달러를 모금받는 등 무려 1000억 달러(112조원)의 투자금을 이끌어냈다.

지난 1년 간 비전펀드는 내로라 하는 최첨단 기업들에 잇따라 출자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왔다. 스타트업 당 평균 투자액이 무려 9600억 원에 이른다.

비전 펀드가 투자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세계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와 중국 최대 택시앱인 디디추싱 등이다. 지난해 12월 비전 펀드는 컨소시엄 형태로 우버에 93억 달러(10조원) 규모를 출자해 단번에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전 펀드는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유망 스타트업들에 엄청난 현금을 쏟아붓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라고 진단했다.

지난 2년간 소프트뱅크의 주요 계약(단위: 10억 달러). [FT 캡처]

손정의 회장의 비전 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엔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우선 ‘빠른 속도로 거금을 들이는’ 과감한 투자 방식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이는 “당장 손실을 내더라도 미래성만 있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손정의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반면, 비전 펀드 조직 내부의 ‘알력 다툼’에 따른 우려도 있다. ‘손정의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되는 도이치뱅크 출신 라지브 미스라 최고운영자(CEO) 세력과 기존 ‘손정의 충성파’ 세력 간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다. FT는 “두 집단 간의 의견 불일치가 비전 펀드의 투자 방향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도이치뱅크 출신 금융맨, 벤처 시장 질서 바꾸다

비전 펀드의 라지브 미스라 CEO. [WSJ 캡처]

지난해 취임한 미스라 CEO는 비전 펀드의 투자 방식을 ‘공격적’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FT는 “미스라는 과거 도이치뱅크 근무 시절, 채무에 시달렸던 소프트뱅크에 도움을 준 경험으로 손정의 회장과 연이 닿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스라는 지난해엔 사우디 아라비아의 무하마드 살만 왕자로부터 450억 달러에 달하는 펀드 모금을 이끌어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미스라는 비전 펀드의 CEO로 임명됐다고 FT는 전했다.

FT는 미스라 CEO를 ‘비정통적인(unorthodox) 투자 사업가’라고 묘사했다. 타 대형 펀드처럼 미국 실리콘밸리, 혹은 대형 벤처캐피탈로부터 자금을 모금하는 대신, 옛 금융계 동료들을 대거 활용해 자금을 조달했다고 한다. 대형 펀드의 ‘투자 흐름’을 효율적으로 개선시키려는 목적에서다.

한 비전 펀드 관계자는 “(기술 전문가가 아닌) 금융 전문가가 세계 최대 규모의 IT 투자 펀드(비전 펀드)를 이끈다는 점이 경이롭게 느껴졌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비전 펀드는 독특한 지분 보상 방식을 채택했다. FT는 “일반적으로 (대형 펀드의) 외부 투자자들은 우선주의 62% 가량을 지분으로 받는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외부 투자자들에게) 전체 지분을 보장해준다”며 “비전 펀드의 투자가 성과로 이어질 경우 외부 투자자들이 누릴 이득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투자 의사결정 역시 빠르게 이뤄진다. 소프트뱅크와 비전 펀드 두 곳에서 계약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비전 펀드의 의사결정 과정은) 마치 미국 서부개척 시대(The Wild West)를 보는 것 같다”며 “투자 결정은 초고속으로 이뤄진다. 사업 팀 간에 격렬한 경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데, ‘형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스라 CEO 對 손정의 지지파, 불투명한 비전 펀드의 미래

한편에선 미스라 CEO를 견제하려는 내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바로 소프트뱅크 계열사 출신의 ‘손정의 충성 세력’이다.

FT는 “미스라 CEO는 지분 투자·출자 등 비전 펀드의 ‘금융’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손정의 충성 세력은 ‘사업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두 집단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FT는 소프트뱅크 관계자를 인용해 “두 세력 간에 (사업 방향을 두고) 큰 분열(schizophrenia)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이어 FT는 “소프트뱅크 주주들 사이에서도 (비전 펀드의) 거버넌스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손정의 회장 자신도 (두 세력의 갈등에 따른) 내부 정보 유출이 심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최근 로펌을 고용해 직원들의 외부 접촉을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론 피셔 소프트뱅크 부회장은 FT와 인터뷰에서 “지난 1년 간 우리가 채용한 다양한 배경의 직원들은 (기업 내에서) 큰 그룹을 형성했다”며 “조직 내부에서 (사업 방향이) 일치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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