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DMZ 바로 앞에서 평화 노래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읽음

이혜인 기자

“위대한 록 공연, 한 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스쿨 오브 락>에서 괴짜 선생 듀이 핀(잭 블랙)은 공부압박에 눌려있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이같은 말을 한다. 음악은 저항의 수단이자 평화의 메신저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면서 노래해왔다.

제1회 DMZ 피스트레인(Peace Train·평화 열차) 뮤직페스티벌이 지난 21일 시작해 24일 막을 내렸다. 남북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첫 발을 내딛은 뮤직페스티벌은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던 지난해 말 싹을 틔웠다.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메인 프로그래머인 마틴 엘본이 DMZ를 방문 후 영감을 받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에게 ‘우드스탁 페스티벌’ 같은 평화 페스티벌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페스티벌은 특히 관객들이 서울역에서 DMZ 피스트레인을 타고 출발, 백마고지역까지 도착해 노동당사와 고석정, 민간인 통제 구역 내에 있는 월정리역 등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월정리역에서 음악 공연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승강장에서는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 밴드 ‘쿨레칸’이 잼베를 두들기며 즉석 공연을 펼쳤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승강장에서는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 밴드 ‘쿨레칸’이 잼베를 두들기며 즉석 공연을 펼쳤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오전 9시35분. 140여명을 태운 피스트레인이 서울역에서 출발했다. 열차에는 뮤직페스티벌로 가는 일반관객 70여명을 비롯해 뮤지션과 미술가, 대학생들, 영국·중국·스페인 한국 취재진,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함께 탔다. 승강장에서는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 밴드 ‘쿨레칸’이 잼베를 두들기고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3칸의 열차를 승객들이 꽉 채웠다. 열차가 출발하자 안내방송 대신 비틀스의 ‘위 캔 워크 잇 아웃’(We can work it out)이 흘러나왔다. ‘인생은 매우 짧아, 서로 으르렁대며 싸울 시간이 없어, 친구여’(Life is very short, and there‘s no time for fussing and fighting, my friend)라는 가사의 노래다. 열차가 백마고지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 가량 열차 안의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박원순 시장은 “여러분 정말 꿈같죠? 즐겁죠”라고 탑승객들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저는 사실 백마고지로 가는 티켓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는 티켓, 더 나아가서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표를 팔고 싶어요. 또 문화와 예술이 평화로 가는 통일로 가는 데 중요하다 생각해요. 춤은 다같이 출 수 있잖아요.”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열차 안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열차 안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박은석 음악평론가 등 몇몇도 음악과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2호칸 앞쪽에서는 작은 공연이 시작됐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를 시작으로 ‘난 어디로’ ‘물 좀 주소’ 등의 노래를 불렀다. 7초 만에 매진된 피스트레인 예매에 성공해 열차를 타게 된 탑승객 남유연씨(24)와 강도형씨(24)는 즐거운 모습이었다. 강씨는 “15년 전만 해도 통일 포스터 그리기 대회도 자주 열리고, 남과 북이 꽤 가까웠는데 그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었다. 최근에 문화교류 하는 것을 보면서 15년 전의 감정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남씨는 “기대가 크진 않았는데 막상 열차를 타고 보니 주제에 몰입하면서 남북 평화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열차 안에서 뮤지션들의 공연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 피스트레인’이 운행됐다. 이날 열차 안에서 뮤지션들의 공연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낮 12시, 기차가 잠시 역에 정차한 동안 탑승객들은 행사 주최 측이 나누어준 도시락을 먹었다. 사회자는 “여러분이 드시는 만두는 당면을 넣지 않고 이북식으로 만든 만두고, 주먹밥은 북한식 두부밥입니다. 도시락 하나에도 의미를 넣었습니다”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캐나다인 필립 알라르와 일본인 켄지 마키노조는 도시락을 다 먹고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들로, 이 열차를 타고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 작업을 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 켄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나는 것을 TV로 보면서 친구와 ‘와,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며 “많은 일본인들이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는데, 최근 들어 안전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알라르는 “언젠가 한국은 통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에서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콜렉티브 A’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오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에서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콜렉티브 A’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버스로 갈아타고 노동당사로 이동했다.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 외벽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포탄 자국이 있고, 계단에는 미군 전차가 만든 바퀴 자국이 남아있다. 뼈대와 외벽 일부만 남은 2층짜리 건물 안에서는 댄스 퍼포먼스 그룹 ‘콜렉티브 A’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한 무용수가 건물 입구에서 노동당사 건물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공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무용수들이 건물 앞, 옆, 뒤쪽으로 옮겨다니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관객들은 무용수들을 따라 건물을 한 바퀴 빙 돌면서 관람했다. 콜렉티브A를 이끄는 차진엽 무용감독은 “노동당사는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왔을 때는 감탄사가 나오도록 아름다운 곳이지만, 알고 보면 슬픈 역사를 말하는 공간”이라며 “멋진 작품과 공연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이 곳에서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추모의 마음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 건물 앞에서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가수 선우정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오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 건물 앞에서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가수 선우정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이어 노동당사 앞 마당에서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그러려니’와 ‘비온다’ 등의 노래를 불렀다. 선우정아는 “특별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게 돼 참 즐겁다. 제가 오늘 선보이는 노래 ‘비온다’에는 평화, 화합의 메시지가 담겨있어 꼭 들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시간 정도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있는 공연장소 ‘월정리역’에 가기 위해서는 ‘지시 불응시 발포’라는 경고문구가 쓰여있는 검문소를 지나야만 했다. 푸른 들판이 펼쳐진 길을 달리며 버스기사 황재현씨(45)는 “철원역에서 출발해 119㎞를 달리면 금강산까지 갈 수 있다. 철원 사람들은 아직도 이곳을 ‘역전앞’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열린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월정리역’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한국전쟁 시 폐역이 된 월정리역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의 간판이 세워져있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열린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월정리역’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한국전쟁 시 폐역이 된 월정리역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의 간판이 세워져있다.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두 번째 공연 장소인 월정리역은 남측에서 DMZ가 시작되는 남방한계선 바로 옆에 있다. 역에는 ‘鐵馬(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크게 쓰여진 표지판과 ‘평강 19㎞, 원산 123㎞’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여기서 직선 거리로 4㎞만 더 달리면 북한이다.

어어부프로젝트 보컬인 백현진과 음악감독 방준석이 결성한 ‘방백’에 이어 강산에가 작은 역사에 차려진 무대에 올랐다. 강산에는 “여러분, 평화가 오고 있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한 후 ‘명태’와 ‘라구요’를 불렀다. 공연 후 무대에서 내려온 강산에에게 소감을 물었다.

“시각적으로 이렇게 끊긴 철도를 보고… 이 벽을 넘으면, 이 벽만 뚫리면 된다는 것 아니에요. 이거 뚫리면 아무 것도 아니란 거죠. 지금의 평화 무드를 계속 유지해서 이 벽이 뚫릴 수 있도록, 평화에 기회를 주자는 겁니다. 존 레논이 1970년대에 오노 요코와 반전 평화 퍼포먼스를 하면서 ‘평화에 기회를 주세요’(Give Piece a Chance)를 노래했잖아요. 존 레넌의 노래를 이어받아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날이 오길 바랍니다.”

지난 23일 열린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월정리역’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가수 강산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열린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월정리역’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가수 강산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펑크록의 전설로 통하는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스 원년 멤버인 글렌 매트록(62)도 월정리역에 와서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이날 저녁 고석정에서 열리는 공연 무대에 서기 전 이곳을 찾았다. 그는 “저 위에 올라가서 북한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어 “굉장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와서 이같은 공연의 일부가 돼 영광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과 만나보니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외부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외국도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음악을 통해서 경계를 짓기보다는 경계를 허물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음악인들과 펑크록을 연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물론 북한분들은 좀 어색해하실 수 있지만…(웃음) 미국 트럼프는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행동한 것 같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북한이 세계로 나올 물꼬를 터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열린‘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의 철원 고석정 무대에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연을 마친 후 관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지난 23일 열린‘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의 철원 고석정 무대에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연을 마친 후 관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제공

이날 철원 고석정에서 펼쳐진 본공연에는 강산에, 이디오테잎, 장기하와얼굴들 등이 출연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6000여명(주최측 추산)의 관객이 모였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밝게 빛나는 고석정에서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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