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입 4캔=5천원도 억울한데 수제맥주 700개 '위협'..국산맥주는 웁니다

이선애 2018. 6. 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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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2년 만에 두배 400억 훌쩍…5년 내 1500억
규제 완화 업고 '훨훨'…제조업체 83곳으로·브랜드만 700여개
주류업체 "국산 맥주만 역차별…동등한 위치 만들어달라"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수입 맥주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규제 완화를 등에 업고 수제맥주가 훨훨 나네요. 국내 맥주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동등한 위치에만 설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네요."

하다하다 이젠 '수입맥주 4캔에 5000원'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수제맥주 역시 국내 맥주업체에게 위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수제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하우스맥주, 지역 특색을 살린 맥주를 말한다.

24일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16년 200억원 규모였던 시장은 지난해 350억원에서 4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수제맥주 제조업체는 2015년 51곳에서 지난해 83곳으로, 2014년 54개에 불과했던 수제맥주 면허건수는 지난해 95여개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수제맥주 종류는 700여개 넘는다.

수제맥주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14년 주세법 개정의 영향이 크다. 당시 직접 양조시설을 갖춘 장소에서만 소매 판매가 가능했던 법률이 외부 유통 허용으로 개정되면서 곳곳에 수제맥주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제맥주 대중화의 불씨를 지핀 것은 프랜차이즈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는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안주를 개발하고, 물류 유통망을 구축하며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일부 매장은 지역 양조장과 공동 개발한 맥주를 판매하며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올 초 전국에서 운영중인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매장수는 약 500개로 추산된다. 매장수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며 수제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브랜드 생활맥주는 2014년 설립 후 만 4년만에 전국 150개 매장을 오픈하며 수제맥주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부산, 대전, 안동 등 전국 각지 소규모 양조장과 함께 개발한 수제맥주 20여종을 전국 매장으로 유통하고 판매한다. 브랜드 매출은 매년 100% 이상 증가하며, 지난해 30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생활맥주와 크래프트브로스가 공동 개발한 '강남페일에일'의 인기가 거세다. '강남역' 특유의 심볼을 활용해 고객의 높은 호응을 이끌었다. 이후 강서, 부산, 제주 등 지역명을 활용한 수제맥주가 지속 등장하며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CU에서 판매하는 강서맥주는 지난해 기준 서울 전역을 통틀어 강서구(23.8%)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마포구(17.9%)와 양천구(12.6%) 등 서울 서쪽 지역에서 강서맥주를 많이 마셨다. 통상 전체 맥주 매출 1위는 강남 지역이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승세다.

주세법 개정안 등을 통해 정부가 시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제맥주 시장의 성잠 잠재력은 크다. 협회는 5년뒤에는 2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등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월부터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중소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를 취급하면서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그리고 수제맥주까지 3파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다양한 맛과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수입맥주와 수제맥주와의 경쟁 환경이 불리하기 때문에 이는 국내 맥주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동등한 위치를 계속 외치고 있다. 우선 수제맥주에만 편중된 주세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2018년 주세법이 또 한번 개정되며 소규모 주류업체에서도 편의점이나 마트같은 소매점으로의 유통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적 특색을 지닌 수제맥주는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각광받으며,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주세법 개정안은 세금 혜택과 판로 확대를 통해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를 육성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마트에서 진행됐던 수입맥주 할인행사.

일단 소규모 맥주시설의 세제 부담을 덜기 위해 과세표준 경감범위가 확대됐다. 과세표준의 40%를 인하해주는 기준을 연간 출고량 기준 300㎘에서 500㎘로, 60% 인하 기준도 100㎘에서 200㎘로 확대됐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의 저장고 용량도 기존 75㎘에서 120㎘까지 늘어났다. 무엇보다 유통채널이 다변화됐다. 해당 영업장에서만 팔 수 있었던 소규모 제조업체의 맥주를 일반 마트와 편의점에서도 팔 수 있게 된 것.

수입맥주에 대해서는 과세표준 차이로 국산맥주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국산맥주는 도저히 이 가격을 따라갈 수 없다는 '역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국산맥주도 규제를 받지 않으면 이 같은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제대로 된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마트에서 진행됐던 수입맥주 할인행사.

수입맥주에는 수입신고가격에 관세가 붙은 원가에 72%의 주세가 붙는다. 국산 맥주의 제조원가에는 판매관리비, 영업비, 제조사 이윤 등이 포함돼 있지만, 수입가격에는 국내 판매관리비와 이윤이 포함돼 있지 않다. 수입업체가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하면 세금을 적게 부담하고 유통 과정에서 가격을 올려 팔 수 있는 구조다.

국내 주류업계 관계자는 "수입업체가 이후에 이윤을 얼마를 붙이던 제품에 붙는 세금은 달라지지 않는데, 수입원가가 1000원인 제품을 2000원에 팔든, 5000원에 팔든 수입업체 재량에 달렸다"며 "판매가를 부풀린 후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수입맥주 반값 할인판매가 기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수입맥주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성을 앞세워 국내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특히 최근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홈술' 문화가 확대되면서 수입 맥주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주요 편의점에서는 이미 수입 맥주의 매출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국내 주류업계 관계자는 "수입맥주는 외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사실상 수입가격은 확인이 어렵고 수입업체가 정하기 나름이다"며 "반면 국산맥주는 모든 거래 과정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 사실상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결국 정부가 국산맥주는 발전을 안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주류업체들이 국산맥주의 품질 발전에 집중하기 보다 수익이 많이 남는 수입맥주의 판매 비율을 더 높이기 위해 수입맥주 라인을 확대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오비맥주가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카스'를 미국에서 수입해 기존 카스보다 12% 싸게 파는 것을 지적하면서 "오비맥주의 미국산 카스 수입만 봐도 국산 카스의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국내에 있는 해외 기업은 생산지를 국내에서 해외로 돌려 역수입하는 것이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그런 추세가 가속화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국내 맥주 제조업이 위축되며 일자리까지 감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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