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2018.06.24. 오전 08: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AD
"김희애가 그동안의 김희애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 작품입니다."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를 본 관객이라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김희애하면 떠오르던 '우아함'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웠다. 연기 경력만 36년인 배우가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움을 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돋보기안경에 희끗희끗한 새치가 돋보이는 짧은 머리, 무려 10kg의 증량. 외적인 차이는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일본어와 부산 사투리로 꿈까지 꿨겠어요.(웃음)" 생소한 언어를 꿈 꿀 정도로 터득하기까지, 무엇이 베테랑 배우를 그렇게 몰입하게 했을까. "작품을 많이 해왔지만 끝나고 운 적은 처음이에요. 결국 해냈다는 안도감, 쌓아왔던 울분과 허탈함이 섞여 터져 나왔죠. 도저히 끝날 거 같지 않았거든요." 촬영 3개월 전부터 두 발 뻗고 자본 적이 없다며 웃는 그다.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그럴 것이 영화는 1990년대 '관부(關釜)재판'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일본 사법부가 위안부 피해와 관련해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조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탓이다.

과거사에 대한 부채 의식과 실화의 무게는 배우 스스로 작품을 들여다보고 선택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님에도 그동안 들어보거나 접한 적도 없던 자신을 반성했다. "잘 알지 못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연기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무라 생각했습니다."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가슴 아픈 역사를 증언한 할머니들의 뜨거운 용기와 함께 '허스토리'가 주목하는 건, 그 옆을 든든하게 지킨 사람들의 노력이다.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이라는 인물도 그 중 한 사람.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열린 스물 세 차례의 재판을 이끈 원고단 단장이었던 그는 사비를 털어가며 열 분의 할머니를 이끌고 일본을 오갔다.

"'허스토리'의 문정숙이라는 인물은 여성을 떠나 멋진 인간의 모습이었거든요. 자유로웠죠. '여배우는 예뻐야 하고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조차 깨버린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촬영하면서 거울을 안 봤어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문정숙은 실존 인물인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을 모델로 했다.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경제인이자 여행사 대표였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유창한 사투리와 일본어 구사는 필수였다.
.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가 혼합된 대사를 소화하느라 진땀 좀 뺐어요. 실은 진땀 수준이라 아니라 사실 인생의 도전이었죠. 제가 대사 외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웃음) 나이 많은 배우가 왜 저러느냐며 망신 당할까봐 겁도 났고요. 또 귀한 영화인데 '발연기'하면 안 되잖아요. 가위를 눌릴 정도로 부담감이 컸죠. 준비와 연습만이 살길이었습니다."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캐릭터를 위한 각고의 노력은 배우 김희애의 연기 경력에도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연기하면서 녹음기를 켜 놓고 대사를 나눠 점검한 경험도, 매일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 녹취본을 듣고 잠든 경험도, 모두 처음이라 했다.

"녹음을 하면서 제 연기를 확인한 건 처음이었죠. 모든 작품이 늘 과제고 도전이지만 특히 이 작품은 제게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늘 그동안의 김희애를 뛰어넘는 역할을 기다려 왔거든요. 개인적으로도 그런 순간을 맞이한 게 참 벅차고 또 기뻤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묵직한 사명감으로 '허스토리'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관부재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중 시나리오를 받았고, 아픔에 공감했으며, 출연에 응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극적인 변화보다도 "한 번이라도 더 주위를 둘러보고 관심을 두는 태도"가 남았다고 했다. '허스토리'가 그에게 남긴 유산이 작지 않다.

"극 중 문정숙이 처음부터 큰 사명감 혹은 의협심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 보면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하고, 오해도 받았잖아요.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 있게 자기 할 일을 해내는 모습에 공감이 갔어요. 영웅이 아닌 보통의 한 사람이 변화가 김희애라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Y터뷰] 김희애, '허스토리'로 증명한 우아함 그 이상

김희애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허스토리'가 여성들의 연대와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이를 넘어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할머니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 해주셨잖아요. '니들 내 살아있는 거 무섭지'(예수정), '내 몸이 증거고 역사'(문숙), '지금 기회를 줄게. 부디 인간이 되라'(김해숙)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끝내 버틴 결과, 역사의 증언대에 선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어요. 거기서 오는 감동과 통쾌함이 큰 영화고요. 그 용기를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YG 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