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조용히 사라진다" 다시 보는 '능변가' 김종필 어록

박민지 기자 2018. 6.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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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정치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며 “집에서 쓰러진 뒤 119구급대로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 달 전부터 기력이 떨어져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말 재주’로 정평나있던 인물이다. 적재적소에 맞는 말을 감칠맛 나게 표현했다. 오랜 정치경험을 통해 뜻하는 바를 공격적으로 전하기도 했고, 비유적으로 돌려 저격키도 했다. 총리까지 지낸 잔뼈 굵은 거물급 정치인답게 상황이나 자신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내었다. 그의 뒤에는 항상 능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특히 ‘촌철살인’에 능했다. 숱한 대권 주자들이 그의 자택을 찾아와 조언을 들을 정도였다. 그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에도 적극적인 발언을 내놓으며 정치권에 영향력을 유지했다.

1963년 그는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일면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6·3 사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 그는 “제 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 시키겠다”면서 뜻을 꺾지 않았다. 같은 해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대표적인 ‘말’이다.

노태우 정부시절에는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며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3년 5·16 민족상 시상식에서는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 5·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계승자다.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이다”라고 평가했다.

뼈 있는 말은 그의 특기였다. 1995년 새해가 밝던 날 자신의 퇴진을 거론하는 새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건네자 “있는 복 빼앗아가지나 마시라”고 일갈키도 했다.

1996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서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듬해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에 참석한 그는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라면서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998년 총리 서리 당시에는 기자들이 “서리 꼬리가 언제 떨어질 것 같으냐”고 묻자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녹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같은 해 언론 인터뷰에서는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고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날을 세웠다. 그는 “백 날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라고 각을 세웠다.

2001년 초에는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이 그를 두고 ‘서산에 지는 해’라고 발언하자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라며 여유있게 응수했다.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는 “노병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 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고 스스로를 평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실세’ 다운 발언도 돋보인다. 그는 2005년 박정희 전 대통령 26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그가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라며 박 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2015년 부인의 장례식장에서는 후배 정치인에게 쓴 소리를 했다. 그는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으려하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같은 시기에 “대통령 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다”는 말도 남겼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하야 죽어도 안 한다. 누가 뭐라도 해도 소용 없다.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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