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너무 착해서 실험한대요, '비글'의 눈물

남형도 기자 2018. 6. 2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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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행복권-⑤]국내 동물실험 지난해 308만마리..건강해도 대부분 '안락사'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2016년 경기도 남양주 한 유원지에서 유기견으로 떠돌다 구조된 나리(7)는 실험용 비글이었다./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나리(7)는 2016년 여름 경기도 남양주 한 유원지에서 버려졌다. 여아였다. 갈색 귀에는 일련의 숫자가, 몸 곳곳엔 수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실험용 비글'이었다. 실험자 중 누군가 나리를 안타깝게 여겨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수년간 실험을 당하고 먹을 것을 찾아 떠돌다 유기견 보호소로 오게 됐을 터였다. 이 곳에서 며칠만 지나면 안락사 될 위기였다. 다행히 비글구조네트워크가 구조했다. 비로소 빛을 본 나리는 배변도 잘 가리고 짖음도 적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강한 녀석이었다.

실험동물이 운다. 실험을 위해 태어나 길러지고 온갖 고초를 겪는다. 쓰임이 다해도 온전한 삶을 못 산다. 건강해도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를 당하거나 아깝단 이유로 교육기관 등에 보내져 실험·실습을 다시 한 번 겪는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심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하지만 대안이 있음에도 불필요한 동물실험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관련법도 보완할 부분이 많다.

20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동물실험에 사용된 동물들은 총 308만 마리에 달한다. 이중 66% 이상은 실험동물들이 심각한 통증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 등급 D와 E 실험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은 호주(813만마리)·노르웨이(552만마리)·영국(393만마리)·캐나다(357만마리)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로 실험동물을 많이 쓰는 국가이기도 하다.

포유류 중 인간과 가장 흡사한 개는 주요 실험동물이다. 특히 세계 실험견 중 94%가 '비글'이다. 다른 개들보다 친화적이라 반복적 실험에도 덜 물리는 등 저항이 덜하다는 것이 이유다. 낙천적인 성격도 실험견으로 적합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안 좋은 것들을 빨리 잊기 때문이다.

실험용 비글들. 과거를 잘 잊는 비글도 맨날 주사를 맞고 이상한 약을 먹으니 항상 겁에 질려 있다./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이들에게 행복할 권리란 요연한 얘기다. 연구 논문이나 제약회사 개발 등에 쓰이는 일명 '브랜드 비글'은 실험동물 전문 생산업체에서 주로 태어나는데, 새끼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물지 않는 훈련, 잡았을 때 꼼짝하지 않는 훈련 등이다. 이를 거쳐 주사기만 들어도 발을 내어주는 강아지들도 생긴다. 훈련을 마치면 귀에 일련의 숫자가 적힌 바코드를 찍는다. 성별, 태어난 날 등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험이 끝난 뒤 건강한 개체들은 내보내면 좋지만 대부분 안락사 된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5년 동안 실험에 동원된 개 15만마리 중 구조된 것은 21마리에 불과하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실험이 끝난 뒤 병력적 문제가 없는 비글은 밖으로 내보낼 수 있지만 10건 상담하면 1건 가능할까 말까 하다"며 "결정권자의 동물권 인식이 약하고 나가면 시끄러워 질 수 있어 안 보내주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건강한 실험동물에 한해서는 외부로 기증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강제 사항이 아닐 뿐 아니라 인식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안락사를 피한 실험동물의 삶도 고통스럽다. 실험 프로젝트가 끝난 뒤 아깝다는 이유(브랜드 비글 가격 약 300~500만원)로 대학 등에 기증돼 실험·실습용으로 또 쓰인다. 최소 6~7년은 계속 견뎌야 한다.

실험용 비글 '사랑이'는 5년 동안 한 대학기관서 같은 실험용 비글을 생산하는 역할만 했다. 이후 출산율이 떨어지니 2년 반 동안 실험용으로 또 썼다. 피부쪽을 실험했는지, 무릎 밑 절반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의해 결국 구조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19일 수산업 발전을 위해 실험·연구과정에서 희생된 동물(실험용 어류, 쥐 등)의 넋을 위로하고, 연구자들에게 동물사랑과 생명존중 윤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실험동물 위령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이 같은 과정은 실험동물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유 대표는 "과거를 잘 잊는 비글도 맨날 주사를 맞고 이상한 약을 먹으니 항상 겁에 질려 있다"며 "유기견 비글만 해도 꼬리를 치는데, 실험용 비글은 사람 눈을 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 대표는 실험용 비글을 구조한 뒤 안전하고 넓은 곳에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혼자 쉴 수 있게 둔다. 이어 사회성 좋은 비글들을 같이 지내게 해 본연의 습성을 회복시킨다. 가정으로 보내 임시보호를 하면서 배변 등 문제가 없는지 파악한다. 세 달이 지난 뒤에야 입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3년 동안 40~50마리를 구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5년부터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동물실험을 피하는 3대 원칙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첫째는 대체(살아 있는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최대한 피하는 것), 둘째는 감소(동물실험을 할 경우 사용 개체 수 줄일 것), 셋째는 고통 완화다.

하지만 국내 관련법 및 인식은 갈 길이 멀다. 명보영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 소속 수의사는 "우리나라 실험동물 관련법 자체가 회사 등에 용이하게끔 돼 있고 형식적"이라며 "윤리위원회 역할 등이나 법적 조치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SynDaver사가 만든 개 카데바 모형./사진= SynDaver 사이트


실험동물을 대체할 대안도 있다. 유 대표는 "카데바 모형(수의 임상 실습용 인공개)만 봐도 상당히 정교하고 실제 개와 진짜 똑같다"며 "수의사가 된 뒤 실습 등을 얼마든 익힐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교육과정에서부터) 실험동물을 데리고 매스를 들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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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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