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기업 'C레벨' 자녀들의 기가막힌 '귀족인턴'

반기웅 기자 2018. 6. 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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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내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등으로 파업사태를 맞은 글로벌 IT기업 한국오라클이 거래처 기업의 고위임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귀족 인턴’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오라클 인턴십은 별도의 공개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부 추천을 통해 ‘알음알음’ 섭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채용된 인턴들은 인턴십 기간 동안 별다른 업무를 하지 않고 한국오라클 측으로부터 고가의 식사 등 ‘접대’를 받고 ‘스펙’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인턴에게 지급된 수당은 한국오라클과 거래하고 있는 대행업체에서 지급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또 한국오라클 임원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고도 사건을 축소한 뒤 피해 여직원의 퇴직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내 노동력 착취 등으로 파업 사태 한국오라클의 ‘귀족 인턴십’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됐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에 맞춰 이뤄졌다. 한국오라클 인턴십은 여느 기업과는 채용절차부터 달랐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시행하는 인턴십은 채용공고를 내고 정해진 전형에 따라 합격자를 선발하지만 한국오라클 인턴십은 자체적으로 채용대상을 정해놓고 ‘초빙’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인턴십 참여자격은 한국오라클과 제품을 이용하는 대기업의 임원 혹은 파트너사 대표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졌다. 특히 오라클 제품 구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비롯한 이른바 ‘C레벨’(업계 VIP 임원을 뜻함)의 자녀들이 ‘초빙’ 1순위에 올랐다.

당시 인턴십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오라클 직원은 “회사에서 내가 관리하고 있는 기업 임원의 자녀가 있는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대학생일 경우 인턴십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의사를 물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인턴십에 참여한다고 하면 직접 임원 자녀에게 인턴십 일정을 알려준 뒤에 형식적인 이력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인턴십은 각 사업부서 주도 하에 개별적으로 진행됐다. 주로 금액이 큰 계약을 앞두고 있거나 대규모 마케팅이 필요한 부서에서 인턴 대상자를 모집했다. 보통 20명 안팎의 임원 자녀들을 모아 인턴으로 채용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소수정예로 추리기도 했다. 2015년 여름 한 사업부서에서는 모두 4명의 인턴을 채용했다. 당시 인턴은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으로 이들 중에는 A사의 임원 아들과 한국오라클의 주요 파트너사인 B사의 대표이사 딸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 오라클 관계자는 “당시 진행했던 인턴십은 백그라운드가 없는 대학생은 참여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며 “오는 애들 대부분이 외국 대학을 다녔고 방학때 잠깐 한국에 들러 인턴십을 마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계획했던 인턴십이 취소되기라도 하면 영업사업들이 그 뒷감당을 해야 했다. 지난 2016년 여름, 거래처 임원 자녀를 상대로 인턴십을 준비하던 한국오라클 내 모 사업부서는 내부 사정으로 인해 계획을 취소했다. 예정된 인턴십이 돌연 무산되자 당시 오라클 주요 거래처인 모 IT 대기업 임원은 ‘아들에게 얘기해 뒀는데 내가 뭐가 되느냐’며 한국오라클 영업사원을 대놓고 나무라기도 했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취소된 다음날 고객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며 “인턴십 한 번 잘못 취소했다가 그해 여름에 영업사원들이 여러 방식으로 보복을 당했다”고 말했다.

거래처 뇌물로 전락한 ‘인턴십’ 2016년 당시 한국오라클 측으로부터 이른바 ‘귀족 인턴’ 제의를 받았던 IT 대기업 임원은 “오라클에서 먼저 ‘자녀분 인턴십을 할 생각이 없느냐’며 제의를 해왔다”며 “그러다 오라클 측에서 본사와의 소통문제로 인턴십이 취소됐다고 전달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항의를 한 사실은 기억에 없다”고 털어놨다.

한국오라클 영업사원들이 개별적으로 ‘모셔온’ 인턴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거의 없었다. 단순업무를 하거나 업무보조를 하는 게 전부였다. 아예 일을 주지 않고 종일 쉬도록 하는 경우도 잦았다. 당시 인턴십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위에서 ‘인턴들에게 별도의 일을 주지 말고 책을 읽도록 하거나 쉬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멘토 역할을 하는 직원을 정해놓고 ‘인턴들이 뭘 물어보면 응대를 잘하라’는 업무지시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턴들이 하루 중 가장 바쁜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한국오라클 영업사원을 비롯한 관련 부서 직원들이 앞다퉈 인턴들과 점심약속을 잡았다. 점심시간마다 직원들이 인턴들을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가는 웃지 못할 풍경을 빚기도 했다. 당시 인턴십을 진행했던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밥 한 번이라도 더 사주고 얼굴 도장을 찍어놓아야 했다”며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얘기 좀 잘해달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식사비는 한국오라클 직원들의 법인카드로 처리했다. 회사에서도 인턴 ‘접대’에 법인카드를 쓸 수 있도록 비용 승인을 해줬다. 당시 인턴들을 데리고 식사를 한 경험이 있는 오라클 직원은 “이런 애들 밥을 사주고 다녔다는 데 자괴감을 느낀다”며 “우리 애들이 컸을 때 내가 임원이 아니라서 취업 못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오라클 본사로부터 지원받아 진행된 정식 인턴십이 아니기 때문에 본사 명의의 수료증 등 증명서는 발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오라클 인사시스템에도 인턴에 대한 근무경력은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오라클 부서별로 자체 수료증을 만들어 출력해서 나눠줬다. 덕분에 한국오라클 거래처 임원 자녀들은 방학 기간 동안 글로벌 기업의 인턴 경력을 얻을 수 있었다. 부서에서 제작한 수료증이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학점으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업무 여부와 별개로 인턴들에게는 110만원의 급여도 지급됐다. 인턴 급여는 한국오라클의 업무 대행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오라클에서 대행업체에 마케팅 비용 등의 명목으로 돈을 보내면 대행업체에서 인턴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인턴십을 진행했던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인턴이 들어오면 대행업체나 파트너사에서 인턴들의 통장과 신분증을 요청했다”며 “우리가 취합해서 보내주면 그 통장으로 해당 업체에서 인턴들에게 돈을 보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한국오라클 본사에서 인정하는 공식 채용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 명의로 돈을 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실 대행업체가 인턴 급여로 지출한 비용에 대해 회사 측에서 정산을 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관리 솔루션과 클라우드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기업에 공급하는 세계적인 IT기업이다. 국내에서만도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기업이라면 오라클 제품을 대부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재계에서는 한국오라클의 귀족 인턴 영업이 상위 거래처에 대한 전형적인 ‘뇌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대부분이 자체 윤리규정 등을 통해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으로부터 사적인 금품수수나 편의제공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오라클 사례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내부 윤리규정 위반에 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한국오라클의 귀족 인턴 영업이 해당 대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라클의 솔루션을 사용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돼 갱신이 필요하거나 아예 새 DBMS 장비 구매가 필요할 경우 기업은 합리적인 절차와 규정을 준수해 계약 갱신이나 제품 구매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귀족 인턴 영업이 어떤 방향으로든 계약 연장이나 제품 구매에 영향을 줬다면 이는 반대로 회사와 주주들의 재산상 피해를 야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오라클 솔루션 재계약 시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재계약하는 경우 등이다. 한국오라클의 귀족 인턴십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러 대기업의 고위 임원 자녀들이 꾸준히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성추행 조사 않고 피해자 퇴직 종용 한국오라클은 회사 임원이 부하직원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행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오라클은 성추행 피해자에게 퇴직을 강요했고, 결국 피해자는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ㄱ씨에 따르면 성추행 사건은 지난 2014년 부서 워크숍을 위해 갔던 강원도 평창 한 리조트 지하 노래방에서 발생했다. 부서원들은 회식을 마친 뒤 다 함께 노래방에 갔고 ㄱ씨의 상사였던 ㄴ상무는 ㄱ씨를 노래방 내 별도의 방으로 불렀다. 호출을 받고 간 자리에서 ㄴ상무는 ㄱ씨를 강제 성추행했다. ㄱ씨는 이후 상부에 보고했고 같은 부서 직원들도 ㄱ씨의 성추행 피해사실을 알았다. 필요하면 관련 사실을 증언하겠다는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도 ㄱ씨는 가해자 ㄴ상무와 1년 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했다.

이후 회사 측은 ㄱ씨에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회사 측은 오히려 ㄱ씨에게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성과급을 챙겨주지 않겠다며 퇴사를 강요했고, 2016년 12월 ㄱ씨는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가해자로 지목된 ㄴ상무는 ㄱ씨 성추행 사건 외에도 또 다른 성추행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회사에서 조직적으로 성추행 사건을 쉬쉬하며 덮었다”면서 “사건이 내부에서 공론화되자 행여나 외부로 새어 나갈까봐 직원들 입막음하느라 바빴다”고 말했다.

한국오라클은 귀족 인턴십과 성추행 은폐의혹 등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한국오라클은 한국 내에서의 법률과 법령을 준수한다”는 입장만 밝혀 왔다.

한 달 넘게 파업을 진행 중인 한국오라클 근로자들은 성추행 문제 외에도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사측의 각종 갑질 문제를 호소 중이다. 10년간 임금이 동결됐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주 80시간이 넘는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철수 한국오라클 노동조합 위원장은 “회사 내 적폐가 너무나도 많아 직원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지금도 사측에서 파업 중단만을 요구하며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회사인 한국오라클은 회계감사를 포함해 어떠한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다. 회사 매출이나 직원 규모 등 회사의 경영정보 역시 모두 ‘비공개’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드러나 국세청으로부터 3147억원의 법인세를 부과받기도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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