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긴 생머리→ 숏컷, 렌즈 대신 안경.. '꾸밈 노동'서 해방

임주언 조민아 기자 2018. 6. 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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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볼은 항상 발그레하지 않아도 된다"
한 여성이 SNS에 긴 머리카락을 자른 인증 사진을 올려 또 다른 여성들의 탈코르셋 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탈(脫)코르셋’ 운동은 각 세대 여성들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여성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로 시작된 의문은 ‘여성이 결혼과 육아를 꼭 해야만 하는가’라는 제도와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도 이어졌다. 꾸밈과 결혼, 육아 등 그동안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해왔던 행동양식에 여성들이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르셋(체형 보정용 여성 속옷)을 벗기로 한 1020세대 여성들은 긴 생머리, 화장한 얼굴 등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통념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재수생 강지연(가명·20·여)씨는 과거 즐겨 입던 딱 붙는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화장도 줄여나가다가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나서는 아예 맨얼굴로 다니게 됐다. 렌즈 대신 안경을 끼게 된 것도 강씨의 변화 중 하나다.

“중학교 때부터 댄스부 활동을 했는데 야한 춤을 춰야 호응이 많았어요. 그래서 선정적인 안무나 옷을 많이 선택했는데 당시엔 내가 나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는 걸 몰랐죠.”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은 소비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화장품과 옷 등 ‘꾸밈노동’을 위한 물건을 파는 회사들은 대부분 여성 상대 마케팅을 펼쳤다. 좋은 화장품과 예쁜 옷을 소개해주는 TV프로그램이 유행하고 화장법을 알려주는 뷰티 유튜버까지 등장했다. 대학생 최유진(가명·22·여)씨는 이런 상황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화장품과 짧은 반바지를 다 버렸다. 최씨는 “돈도 권력인데, 여성은 (돈이 드는 화장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런 차이를 줄이고 싶어서 탈코르셋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움직임이 미(美)에 대한 시각 변화를 넘어 ‘여성의 인간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여성학자)은 22일 “가부장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이제 여성이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사람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가부장제를 토대로 만들어진 결혼제도를 거부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30대 여성인 박현지(가명)씨는 이혼 후 비(非)혼주의로 돌아섰다. 박씨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이후 결혼 생활 안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박씨는 “남편에게 가사노동과 육아를 동등하게 맡자고 제안하고, 명절 제사를 거부해도 가부장제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남편의 개인적 흠결을 알게 돼 복합적 이유로 탈혼(이혼) 후 비혼을 선언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비혼 지지층은 생각보다 두텁다. 김모(25·여)씨가 시작한 비혼선언 배지 크라우드 펀딩에는 지난 20일 기준 183만원이 모였다. 목표금액(35만원)의 5배가 넘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공동대표는 “여성이 비혼을 선택한다고 해서 억압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부장제 속 가족제도나 결혼제도에 편입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년·노년 여성 사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일 2만여명이 운집할 정도로 파괴력이 커진 혜화역 페미니즘 집회에는 딸의 손을 잡고 나온 중년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네 살 손자를 둔 박순애(67·여)씨도 “남자아이는 분홍색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근데 최근 성평등 교육을 듣고 선생님이 그런 건 좋지 않다고 꼭 짚어주니까 이제 아이들을 성차별적으로 키우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강요된 성역할에 의문을 가지고 행동하는 남성들도 나타났다. 올해 처음 시작된 ‘100인 부산 아빠단’에는 200명이 넘는 아빠들이 신청서를 냈다. 부산 아빠단은 아빠에게 올바른 육아법을 알려주고 성역할 교육도 함께하는 부산시 시범사업이다. 아빠단에 신청서를 낸 전창환(40)씨는 “내 가정에서부터 성별 구분 없이 분담이 잘 이뤄지면 아이들도 그런 걸 보고 자랄 것”이라며 “그럼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루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조민아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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