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초보기자의 내몽고 여행기] 광활한 초원에서 마치 칭기즈칸의 후예가 된 듯..

글·사진 월간산 서현우 기자 입력 2018. 6.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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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내몽고 미리 답사.. 진황도~승덕~적봉시 일원에서 7박8일 팸투어
아스하투 석림에서 내려다 본 공거얼 초원.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는 중국 북부 몽골 접경지역에 있는 중국 내 몽골족 자치구다. 전체 면적은 118만3,000㎢로 한국의 약 11배 크기다. 해발고도가 평균 500m 이상인 고원지대로, 여름이 7~8월 60일 정도로 짧고 겨울이 길고 몹시 춥다. 내몽고에는 총 2,47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몽골족은 420만 명으로, 몽골(외몽고)의 인구(312만 명)보다 많다.
중국은 독립국가인 몽골을 외몽고로 칭한다. 몽골의 청나라 때 행정명칭이다. 원래 몽골족은 내·외몽고에 나누어 거주해 왔으나 1912년 청나라 멸망 후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분단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외몽고의 몽골 공화국 독립을 지원했으나 몽골 문자를 없애고 자국의 키릴 문자로 대체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은 내몽고를 자국 영토로 편입한 대신 자치구로 인정하고, 청나라 때부터 이어온 한족 이주정책과 더불어 몽골 문자인 비치그를 병기하게 해주는 등 융화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내몽고 내 독립투쟁은 치열하지 않은 편이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몽골족은 내몽고와 외몽고로 나눠졌지만 풍속이나 생활에 큰 차이점이 없다고 한다.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 탓인지 몽골족은 열정적이고 술을 좋아하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과 성향이 비슷하다.
내몽고의 역사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흔히 내몽고 하면 드넓은 초원을 연상한다. 애석하게도 아직 내몽고의 초원은 ‘녹색의 바다’라는 애칭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평선까지 펼쳐진 광대한 평원은 내적 자유와 평온을 선사해 주는 광경이었다. 또한, 내몽고는 초원 외에도 바위, 산, 사막 등 다채로운 자연의 풍광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매일 색다른 면모를 뽐낸다. 자연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도 잘 보존돼 있다.
이번 팸투어(Familiarization+Tour, 지자체나 여행사가 관광지에 여행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떠나는 사전답사여행)는 내몽고 중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이 잘 찾지 않았던 적봉시를 중심으로 다녀왔다. 적봉시는 내몽고 내 동남부, 북경에서 동북부 방향에 있으며 면적은 한국과 비슷하다.
4월 23일 17시 인천항에서 강영일 전 한국등산중앙회 회장이 총괄하고 위즈여행사(대표 장종석)의 남상득 대장이 주관한 7박8일 일정의 팸투어가 첫 발을 뗐다. 강 전 회장을 비롯한 각 여행사 대표 및 유력 산악회 회장, 언론 및 오피니언 리더를 포함해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일정은 인천항에서 출발해 중국 하북성 동부 진황도秦皇島로 가는 진인해운회사의 신욱금향호를 이용했다.

여정문 앞 오른쪽의 수사자는 여의주를 발아래 두고 있다. 여의주는 지구를 의미해 지구를 주무르겠다는 뜻. 왼쪽의 암사자는 발밑에 새끼사자를 두고 있는데 이는 후손을 보필하겠다는 의미다. 입장료는 145위안.
피서산장 연우루. 호수 위에 떠 있는 연우루는 중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황제의 딸’ 촬영지로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
옥룡사호 낙타 시승. 시즌에는 100~300마리가 대기한다. 마치 캐러밴을 떠나는 상인이 된 듯 착각을 일으킨다.


배 위에서의 특별한 하루
전날부터 이어진 강풍과 강수로 인해 출발이 다소 지연됐다. 서해 먼바다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출항의 순간을 기다렸으나 새벽 3시가 돼야 출항이 가능하다는 선사 측의 설명을 듣고는 바로 잠들었다.
눈을 뜨자 낯선 진동이 느껴졌다. 창밖을 바라보자 서해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지만 배가 워낙 커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다. 인천항에서 진황도로 가는 평균 운항시간은 23시간,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하지만 배 안에는 여러 시설들이 갖춰져 있어 적적하지 않다. 선측 갑판사무장은 일행을 인솔해 선내투어를 진행하면서 선박과 시설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배는 lolo 방식의 페리로 선박 앞쪽에 화물을 싣고, 뒤쪽에 여객이 탑니다. 1995년에 건조된 배로 각 객실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배가 조금 오래 됐다고요? 노후화된 만큼 안전 규제를 더 심하게 받는데다가 한·중 양국의 안전 관리를 엄격히 받고 있고, 이를 어기면 출항 자체가 안 됩니다. 불법 개조 같은 것도 일절 할 수 없어요. 1척당 100명이 탑승 가능한 라이프보드도 4척 비치돼 있습니다.”
배 안에는 도서관, 소주와 맥주를 포함해 먹거리를 파는 매점, 중국식 마작이 가능한 카지노, 오후에만 운영하는 노래방, 라운지바, 영화관 등이 갖춰져 있다. 여름이 되면 갑판의 수영장을 오픈하고 비치 체어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무장은 “크루즈와 달리 이 배는 화객선이라 서비스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항해 도중 동행과 같이 즐길 거리를 따로 준비 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진황도에 도착했다. 진황도란 지명은 진시황이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만리장성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며, 중국의 중요한 석탄후송지이다. 진황도에서 석탄이 수송되지 않으면 중국 23개성 중 8개성이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할 정도로 경제적 요충지이다.
여기서부터는 현지 가이드인 독립운동가 후손 중국교포 채수철씨와 결혼 후 이주한 전가이씨가 동행했다. 가이드의 인솔 하에 간단히 현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처음으로 맛본 중국 음식은 제법 입에 맞았다. 함정처럼 깔려 있는 산초의 강렬한 향에 당첨되지 않도록 온 후각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식사 후 승덕承德의 피서산장避暑山莊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피서산장 옆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다. 승덕의 어머니강, 열하熱河다. 겨울에도 강이 얼지 않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친숙한 강이다. 황제가 입장했던 정문인 여정문麗正門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피서산장이 시작된다.
“피서산장은 1703년 청나라 강희제가 착공에 들어가 89년 동안 건설돼 손자인 건륭제 재위인 1792년에 완공됐습니다. 총면적은 약 170만 평으로 주위의 담장 둘레만 10km에 달하죠.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채씨는 이어 “북경의 더운 여름을 피해 여름이면 이곳에서 황제들이 정무를 돌봤다”며 “피서산장은 단순한 별장이 아니라 제2의 궁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채씨의 해설과 함께 문무대신을 접견한 담백경성전澹泊敬誠殿, 내부 회의를 하던 서지서옥西知書屋, 행궁 중 유일한 2층 건물인 운산성지雲山胜地를 거쳐 수운문岫雲門을 지났다.
수운문을 지나면 느닷없이 조망이 터지면서 별세계가 펼쳐진다. 오른편으로는 전나무 너머로 호수가 반짝거리고 왼편의 산지에는 우거진 수림이 들어서 있다. 남쪽의 궁전 구역을 지나 본격적인 자연경관 구역이 시작된 것이다.
“호수 너머 북쪽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이 사냥터예요. 청나라 황제들은 매년 몽고 귀족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풀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동시에 사냥으로 무력과시도 했습니다.”
채씨의 해설을 곁들여 호수 주변을 가볍게 돌아봤다. 호수를 관통하는 산책로에는 버드나무와 소나무, 전나무들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이곳은 중국 강남지방의 호수와 명승지를 참고해 지었다고 한다. 항주의 서호가 가진 태고의 신비스러움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더 아기자기한 정원다운 멋이 있다. 일본 도쿄의 이노카시라공원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다. 걷는 맛도 났다.

옥룡사호의 지프 투어는 수십m 높이의 사구의 사면을 지그재그로 달리고, 경사도 70도에 이르는 수m 높이의 모래절벽을 오르고 내리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아찔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위즈여행사 제공.


내몽고, 사막과 사람과 산
피서산장을 둘러본 뒤 바로 내몽고 탐험의 주 무대인 내몽고 적봉赤峰시로 향했다. 2017년 10월 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적봉시가 주요관광도시로 선정돼 시설을 전폭적으로 정비하고 도시 경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내몽고 가이드는 현지인 리 빈씨가 맡았다.
호텔에서 숙박한 후 옥룡사호玉龍沙湖로 향했다. 이곳은 커얼친사막의 일부로 사막 한가운데에 호수가 있어 사호라 불린다. 옥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에서 연대가 기원전 4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옥기인 옥룡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적봉을 용의 고향이라고도 부른다.
드넓은 초원지대를 달리다보면 점점 식생이 줄어들다가 이윽고 사막 구간에 이른다. ‘옥룡사호’라고 쓰인 큰 비석에서 좌회전하면 사막 한가운데에 바위와 사구로 둘러싸인 작은 호수가 나온다. 옥룡사호다. 사막 한가운데 호수와 나무들이 빚는 매우 이색적인 광경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따스한 모래를 맨발로 밟고, 온몸을 모래로 찜질할 수 있다. 또한 푸른 하늘과 맞닿은 사구에 올라 끝이 없는 모래바다의 풍광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도 있다. 더불어, 지프와 낙타 등을 이용해 옥룡사호의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청산 안자락에는 내몽고 고유종인 개살구 꽃이 지천에 피어 있다.
정상 부근의 빙구. 각양각색 모양의 빙구가 1,000개 남짓 있다. 위즈여행사 제공.
게르 안에서 몽골 현지 복장을 착용해 본 권미리 씨.
여행자들을 위한 대여용 게르들.


옥룡사호를 둘러본 뒤 내몽고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리씨는 “내몽고인들은 멀리서 손님이 오면 첫 인사를 겸해 전통주를 내놓고, 손님은 약지로 술을 찍어 하늘에 한 번, 땅에 한 번 뿌리고 이마에 한 일(一)자를 긋는다”며 “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교감을 의미한다”고 내몽고 전통 인사법을 알려줬다. 이 전통주는 도수가 60도에 이르기 때문에 3번 마시는 것이 원칙이지만 주량에 따라서는 한 번만 하거나 다른 술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눈 후에는 ‘하다그’를 걸어준다. 하다그는 몽골 전통의상의 하나로 허리끈으로 사용된다. 하다그는 총 5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파랑색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존경과 우정의 뜻으로, 하얀색은 순수한 우정을 가진 친우에게 선물한다. 노랑, 빨강, 초록색은 종교적 의미로 참배할 때 사용한다.
식사 후 청산빙구군靑山冰臼群으로 이동했다. 청산은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정상 부근에 발달한 빙구로 유명하다. 빙구란 지표 밑에서 얼음이 성장해 정상부의 퇴적층이 갈라진 후 침식을 받아 생긴 것으로, 마치 바위를 한 스푼 떠먹은 것처럼 보인다.
청산공원 입구에서 하차하면, 리프트 승강장까지 400m를 걸어야 한다. 주변에는 내몽고 고유종 개살구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다. 리프트를 타면 8부 능선까지 한 번에 오른다. 거기서 600m만 더 오르면 정상이다. 도보로 오르려면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소요 시간은 6시간 정도. 아쉽게도 아직 개장하지 않아 빙구군을 보지 못하고 들머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 도로 위에서 길을 막는 것도 예삿일이다.
아스하투석림의 하이라이트바위인 독수리바위.
남방계 해설상으로는 칠선녀바위지만 북방계 해설로는 개선장군바위다.


대초원의 품에 안기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대초원으로 가는 날이 밝았다.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산들이 점점 고도가 낮아지더니 이윽고 평지가 시작됐다. 리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는 공거얼초원입니다. 이곳이 초원인 이유는 토양의 깊이가 평균 50~150cm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토양 밑이 전부 현무암이라 뿌리 깊은 나무가 자라지 못해요. 가끔 토양이 깊은 곳에는 몽고 상수리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승냥이, 여우, 멧돼지 등 70여 종의 야생동물도 살고 있어요. 승냥이는 내몽고인들이 영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직선으로 180㎞에 이르는 도로 양쪽에는 끝없는 대지가 펼쳐져 있다. 초원 곳곳에서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리씨는 “이곳의 소들은 아침에 풀어두면 해질 무렵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알아서 축사로 돌아간다”며 “도로 위에도 서슴없이 올라오는 초원의 교통경찰”이라고 전했다.
초원의 내몽고인들은 가축의 배설물을 말려서 땔감으로 쓰기 위한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리씨는 “이 작업을 하는 남성의 배설물 더미가 클수록 내몽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며 “더미가 큰 만큼 거느린 가축이 많다는 뜻이며, 즉 재산이 많다는 지표”라고 알려줬다.
안다목장의 중간에는 차가무른이라는 작은 강이 흐른다. 안다목장의 게르에서는 내몽고 전통복장을 착용하고 승마, 활쏘기 등의 내몽고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게르에서 1박하며 캠프파이어와 함께 내몽고의 별도 볼 수 있다.
공거얼초원에서 버스로 30분 이동하면 아스하투석림阿斯哈图石林이다. 석림이란 말대로 기괴한 모양의 돌로 된 숲이다. 해발 1,700m 고도에 형성된 이곳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화강암 석림으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다. 리씨는 “제 4기 빙하기 때 빙천 운동으로 형성된 천연 석림”이라며 “널빤지를 켜켜이 얹어 놓은 것 같은 수평절리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공원 입구에서 버스로 자작나무 숲을 지나 안부에 오르면 안부에서 양쪽 능선을 따라 각각 4개의 코스에 석림이 형성돼 있다. 특이하게도 공원 내 안내판에 바위의 이름과 유래, 형성 배경이 한글로 병기돼 있다. 리씨는 칠선녀바위에서 “칠선녀라는 표현은 중국 남방적 해설에 가깝다”며 “오른쪽의 장군이 개선하고 자식을 만나는 모습이라고 보는 게 북방적 해설”이라고 안내판에 있는 내용 외에도 풍부한 해설을 전했다.


또한 산자락에 빼곡하게 자란 자작나무 숲과 지나온 공거얼초원의 구릉지대가 펼쳐져 뛰어난 조망을 선사해 준다. 안구가 아닌 어떤 렌즈로도 담을 수 없을 파노라마다. 리씨는 “6월이 되면 석림 주변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초원이 진녹색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고 귀띔했다.
적봉은 자연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다. 옥으로 유명한 홍산문화와 요나라 수도가 바로 이 적봉지역에 있었다. 적봉시박물관赤峯市博物館은 이런 유구한 역사를 모두 담고 있다. 총 9만 점의 유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중 3,000개가 전시돼 있다. 전시관은 총 4개로 구성돼 있으며, 제1전시관은 홍산문화와 선사시대의 유물, 제2전시관은 청동기, 제3전시관은 요나라, 제4전시관은 원청 시대 유물들이 연대순으로 배치돼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옥룡사호에서 발굴된 옥룡의 확대본이 정면에 있다. 이 옥룡은 중국의 옥문화와 용문화의 최초발상이 되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물이다. 홍산문화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시대를 ‘옥기시대’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스하투석림이 여름을 맞으면 바위 주변을 나무와 풀이 감싸고 야생화가 구석구석 핀다. 위즈여행사 제공.


“도시를 알려면 박물관을 가라”
“학자들은 이 전시관 초입에 있던 신석기 초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돌로 조각한 유물을 통해 당시를 모계사회라고 추측합니다. 여자 중에도 임신하면 더 높은 지위가 돼 보좌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전시관 끝에 와서는 신석기 말 손잡이가 남근을 닮은 그릇들이 보이죠? 이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남자의 지위가 상승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또한 제3 전시관의 내몽고를 중심으로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 시기의 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마민족이자 정복왕조답게 투구와 화살통, 둔기와 안장 등 무기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활을 쏠 때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한 변발의 초기 형태도 엿보였다.
또한 적봉은 요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묘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그릇들이 많이 출토됐는데 실제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구성성분이 광물질이라 독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귀고리, 말에 다는 장식품 등 다채로운 장신구들이 전시돼 있다.
채씨는 화려한 장식품들을 두고 “그만큼 요나라가 강대했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내리막길을 걸은 이유”라며 “너무 화려한 것에 집착하다 보니 다른 민족에게 와해돼 1125년 요나라가 멸망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한족 큐레이터의 해설을 들으면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제1, 3전시관에서 해설한 시간에 비해 제2, 4전시관에 할애한 시간이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설 배분은 적봉이 홍산문화와 요나라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감안된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집중 해설하고, 고조선과 유사성이 높은 내몽고의 청동기는 덜 설명한 것은 동북공정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이미 멸망한 거란족은 중점적으로 다루고 몽골족의 원, 여진족의 청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것도 중화주의의 단편으로 느껴졌다. 물론, 실제 그런 의도 하에 해설을 진행했는지는 미지수다.

강희제의 딸이 입었던 도포. 당시 여자가 입은 옷 중 용이 그려진 도포는 매우 희귀한데 이 옷에는 좁쌀 만한 진주를 이어 붙여 용의 형상을 만들어 넣었다.
요나라 시기 정교하게 세공된 장신구들.
적봉시 박물관 전경.
4200~3600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로 발이 3개인 것은 사막 지형에서 모래에 토기를 꽂아 큰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기 위한 것. 또한 식탁문화가 발전되지 않아 그릇의 높이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남근그릇.
옥룡사호에서 출토된 옥룡의 가품. 진품은 북경박물관에 있다. 입은 멧돼지를 닮았고 말갈기가 있으며 몸은 뱀이다. 이후 현대의 용으로 모습이 변천된다.
비파형청동검의 존재로 고조선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내몽고 특산품, 양과 약
마지막 코스는 내몽고의 드넓은 초원에서 자란 양으로 양모제품을 생산하는 조우다Zhaowuda문화원과, 평원에서 나는 약재를 이용한 제약회사인 천기몽중제약회사를 견학했다. 원래 일정은 승덕으로 돌아가 외팔묘를 보는 것이지만 일정이 변경됐다.
조우다는 중국 내 양모제품 기업에서도 유명도와 생산량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으로 11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조우다 스카프는 손에 낀 반지 사이로 스카프가 통과한다 하여 반지스카프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굉장히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한다. 현지 매장은 국내 동일 품질의 제품에 비해 20~50% 정도 저렴하다. 또한, 매장 내에서 양모제품 외에 내몽고 특산품인 옥장신구, 인감, 전통주, 육포 등도 구입할 수 있다.
기대했던 대초원은 이제 막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릴 녹색의 초원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을 내몽고의 광대한 대지를 그저 마음속에서 평화의 진녹색으로 채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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