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특집 | 백두산 화보] 우리 민족의 영혼이 담긴 그릇, 백두산 천지

글 월간산 신준범 기자 2018. 6.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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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사진가 안승일의 필생의 역작 공개
하늘에서 본 백두산 천지의 압도적인 위용. 지인을 통해 중국 산불감시용 항공기를 얻어 타고 찍었다.
살랑대는 바람이 천지 속으로 드리운 우리 민족의 산봉우리들을 흔들고 있었다. 안승일 사진가는 백두산을 처음 보았을 때 큰절을 올렸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만 306년 전 숙종 38년(1712) 음력 5월에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됐다. 음력 5월이면 양력 6월이다. 이후 간도지방을 두고 분쟁이 있었으나 일제가 개입하는 바람에 간도가 청나라로 넘어가고 말았다. 원래 있던 백두산정계비에는 ‘西爲鴨綠서위압록, 東爲土門동위토문, 故於分水嶺고어분수령’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 그것으로 물과 산의 경계를 나눈다’는 의미다. 그런데 토문강을 놓고 분쟁이 일었다. 조선은 토문강을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으로, 동간도 일대가 조선 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어쩌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일제는 철도부설권을 받는 대가로 간도를 청에 넘기고 말았으니….

천지의 국경. 지뢰나 철조망도 없다. 총을 든 군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지도 않다. 안승일 사진가는 그때 조국이 생각났다. 그날부터 우리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백두산 천지의 봄. 눈이 많은 해는 봄에 꽃들이 더 탐스럽게 핀다. 눈이불은 솜이불보다 따뜻하기 때문이다.
55만 년 전, 화산폭발로 천지에 칼데라 벽이 병풍처럼 생겨났다. 천지의 바위는 주로 회백색, 자회색의 거품돌이다. 돌은 가벼워서 바람에 날리거나 천지 물 위로 떠다니기도 한다.
천지 일출. 천지와 아침 인사나 나누자고 안승일 사진가는 텐트를 나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문득 세차게 불어온 바람이 동쪽 구름을 한켠으로 몰아붙이더니 하늘이 열렸다.
그는 백두산에서 눈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아 며칠을 지냈다. 먹을 것이 바닥난 아침, 꼭 사진을 찍어야 할 시간에 구름이 걷혀 주었다. 천지는 백운봉에서 볼 때 제일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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