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생기던 인형뽑기방..왜 발길 끊겼나

권오석 입력 2018. 6. 22. 06:30 수정 2018. 6. 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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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1개서 작년말 2098개로 100배 급증
중독·사행성 우려에 확률조작 등으로 인기 시들해져
업계 "인형공장 및 수입업자들 모두 줄도산" 호소
'코인노래방' VR방 등 최신 유행으로 업종전환 모색
인천 남구의 대학가에 위치한 인형뽑기방에 정작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권오석 기자)
[이데일리 권오석 최정훈 기자]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인형뽑기’ 열풍이 급격히 식고 있다. 적은 예산으로 창업이 가능한 점 등 힘입어 인형뽑기방은 불과 2년새 100배이상 증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확률조작 등 부정적 이미지가 커진데다 인기마저 시들해지면서 인형뽑기방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인형뽑기방을 접고 코인노래방·VR(가상현실)방 등 업종 전환에 나서는 업자들이 늘고 있다.

◇인형뽑기방 2015년 21개서 작년말 2098개로 100배 급증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말 전국에 21개소밖에 없었던 인형뽑기방은 작년말 2098개로 100배나 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들어 문을 닫는 인형뽑기방이 줄을 이으면서 4월 기준 인형뽑기방은 2109개소로 전월대비 16개소가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문을 닫은 인형뽑기방은 더 많지만 가게 임대기간이 남아 아직 폐업신고를 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형뽑기방이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데는 적은 비용으로도 개업이 가능하다는 게 한 몫을 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데다 대당 200만~300만원대인 경품기계 몇대면 손쉽게 창업이 가능했다.

사행성 게임임에도 불구, 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1000~2000원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즐겨 찾으면서 전국적인 열풍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독·사행성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뽑기 확률을 조작한 불법 영업장들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급격히 인기가 식고 있다,게임위가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44개 뽑기방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01개소(70%)가 관련 규정 위반 업소로 적발됐다. 이중 12개소(8.4%)가 기계 개·변조를 통해 뽑기 확률을 조작했다.

뽑기방을 자주 이용했다는 대학생 유진(20·여)씨는 “지난해 친구들과 만나면 놀이삼아 항상 인형뽑기방을 찾았다”며 “하지만 올해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시들해지고 확률 조작 얘기까지 나오면서 안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인형뽑기 인기 시들…뽑기기계 공장, 인형도매업자 직격탄

인형뽑기방 열풍이 가라앉으면서 업자들은 물론 봉제인형을 조달하는 제조·수입업자들도 단체로 직격탄을 맞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대 인근에서 인형뽑기방을 운영 중인 A씨(39)는 “34㎡(약 10평) 기준으로 월세는 평균적으로 300만원 안팎에 보증금은 1억원 이상”이라며 “하루 매출이 20만원 정도는 돼야 대출도 갚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요즘은 매출이 크게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서구에서 인형도매업을 하고 있는 정모(48)씨는 “언론에서 지난해 인형뽑기방이 사행산업이라고 지적하면서 길거리에 놓여있는 인형 뽑기가 단속 대상이 된 뒤 주문량이 급감했다”며 “갑자기 주문량이 준 탓에 재고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호황을 누리던 인형뽑기 기계 제조업체들이다. 신제품을 출시해도 새로 문을 여는 곳이 없다보니 판매가 쉽지 않은데다. 싼값에 쏟아지는 중고매물에 밀려 매출이 급감한 상태다.

한 중고물품 매매 포털사이트에서는인형뽑기 기계가 새 제품 가격의 5분의 1 수준인 40만~6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매물을 올린 인형뽑기방 업주는 “1년 정도 가게를 운영하다가 장사가 안돼 정리하는 중”이라며 “주변에 기계를 팔려고 했지만 모두 사지 않아서 중고포털사이트에 물건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인형도매업자 김모(50)씨도 “업계가 전반적으로 줄도산 상황”이라며 “가장 큰 피해는 인형뽑기 기계공장이고 그 다음은 인형 수입업체”라고 전했다. 김씨는 “인형을 수입할 때 억 단위로 수입을 하는데, 지난해 4월 들어 인형 수입업자들 전체 매출이 50~60% 하락한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어떤 수입업자는 20억원 어치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인형뽑기 열풍 대만 카스테라·벌집아이스크림 전철 밟나

전국을 휩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순식간에 열기가 식어 줄 폐업 사태를 낳은 것은 인형뽑기방 이전에도 많았다.

2016~2017년 반짝 인기를 누린 ‘대만 카스테라’가 대표적이다. 카스테라에 달걀·밀가루 등 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고 광고한 것과 달리 식용유 등 일부 첨가제를 넣고 있다는 방송이 나간뒤 급격히 인기가 시들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잇따라 사업을 접어야할 정도로 타격이 컸다.

2013년 한해를 풍미했던 벌집아이스크림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소라빵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고 여기에 다시 벌집을 올린 일명 ‘벌집아이스크림’은 기존 아이스크림 시장 판도를 흔들 만큼 큰 인기를 모았지만 벌집에 양초성분인 파라핀이 함유돼 있다는 보도 이후 급격히 사양길에 들어섰다.

인형뽑기방 업주들은 폐업을 고민하거나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인형뽑기방을 운영 중인 B씨(45)는 “보통 하루 평균 1~2번은 떨어진 인형을 채워넣었는데 요즘은 아예 채워넣지 않는 날도 있다. 매출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며 “VR(가상현실) 게임방이 뜨고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알아보는 중인데 준비 자금이 너무 비싸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인천 남동구에서 뽑기방을 운영해온 최모(39)씨는 “요즘은 일(1)코노미라고 해서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대학생들까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오락업이 인기”라며 “특히 대학가 근처에 코인노래방이 유행한다고 해 창업 문의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권오석 (kwon032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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