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변종모의 세계의 골목] 산 중의 '푸른 바다'.. 그 곳에선 모두 열대어처럼 골목을 헤엄친다

변종모 여행칼럼니스트 2018. 6. 22.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파란 집들로 가득한 ‘산중의 바다’…마치 바닷속을 걷는 듯
해가 지면 더 짙은 젊음으로 거듭나는 파란 마을, 쉐프샤우엔

모로코 북쪽 리프 산맥 근처에 자리한 쉐프샤우엔은 마을 전체가 파랗게 물든 ‘산속의 바다’다./변종모

여름이 오고 있는데 왜 바다가 생각나지 않고 깊은 산중의 풍경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걸까? 분명 산속의 작은 마을인데 왜 내게 깊은 바다로 출렁거릴까? 그날 눈 앞에 펼쳐지던 파란 골목들이 마음속 깊이 푸른 물길을 내고 있다. 한 번쯤 나를 잘 믿는 착한 친구들에게 지중해처럼 푸른 바다로 가자며 그 산속으로 데려가고 싶어진다.

◇ 어느 계절에도 변함없이 푸른 ‘산속의 바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북쪽 모로코(Morocco). 모로코에서도 북쪽에 은둔한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리프 산맥의 언저리에 앉아있다. 도시라고 불리기엔 겸연쩍은 크기의 산중마을이다. 산중의 작은 마을에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마을 전체가 파랗게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벽에 파란 페인트를 칠한 것이지만, 한두 집이 아니라 골목까지도 온통 파란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하얀 회벽의 집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풍경은 푸른 파도의 하얀 물거품처럼 느껴져 더욱 청량감을 더했다. 덕분에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변함없는 바다처럼 푸른 마을. 만약 아주 높은 창공에서 슬쩍 내려다본다면 산중의 호수라 착각할 수도 있겠다.

집도, 계단도, 골목도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변종모

쉐프샤우엔은 베르베르어로 “뿔들을 보라”라는 뜻이다. 마을 뒤로 삐죽하게 솟아난 두 개의 산봉우리 때문에 그리 지어졌다. 그래서였는지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린 염소 뿔처럼 철없고 맹랑했다. 반대로 노인들은 뿔처럼 뾰족한 모자가 달린 전통의상 젤라바를 입고서 요정처럼 파란 골목을 오갔다.

산비탈의 작은 성곽 안에 담긴 마을은 처음부터 파란색을 입힌 마을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남부 그라나다에서 기독교의 박해를 받던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건너와 정착을 했을 때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회벽에 붉은 지붕의 집들이었다. 이후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유대인 이주자들이 생겨나면서 푸르게 칠해지기 시작했다.

모로코 북쪽의 항구도시 탕헤르(Tangier)에서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이면 다시 만나게 되는 산중의 바다. 작고 푸른 물방울 하나가 모여서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이 마을로 들어서면서부터 바닷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지중해의 어느 섬에서나 볼법한 파란색 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방금까지 걸어온 마을 바깥의 풍경이 오히려 낯설다.

온통 파란색으로 물든 산속의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바닷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변종모

골목 끝으로 열린 하늘도 머리 위의 하늘도 모두가 파란색이니 헤엄치듯 걷는 형형색색의 여행자들이 열대어처럼 경쾌하다. 온종일 경쾌한 마음으로 골목을 뒤지고 다녀도 별 소득 없이 비슷한 풍경이지만 아마도 마음속 한구석이 푸르게 멍들 것이다. 아픈 게 아니라 아름답게 멍들 것이다.

◇ 조금만 더 천천히... 나를 싱그럽고 파랗게 적셔 보자

크기로만 따지자면 쉐프샤우엔은 아무리 천천히 돌아다녀 봐도 반나절이면 족하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그냥 골목 한 번 휙 둘러보고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서둘러 식사를 하고 기념품 몇 개를 챙겨서 다음 도시로 이동을 해버릴 만큼 파란색 골목 이외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마을의 중심 우타엘 하맘(Uta el-Hammam)광장 주변으로 이슬람사원을 비롯한 몇몇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파란 골목을 보러왔으니, 골목이 끝나면 여행이 끝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산속의 바다에 빠져 오래도록 허우적거리는 여행자들 또한 많이 있다. 이곳은 모로코에서 가장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니까. 아우성을 치며 달라붙는 호객꾼도 없고 피곤하게 거짓말을 하는 장사치도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투명한 파랑. 오래된 여행자들은 이 파랑에 매료되어 날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파란색에 대해서 말하거나 말하지 않고서 조용히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일로도 하루가 짧다는 것을 안다.

호객꾼도 장사치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의 파란 벽에 등을 기대고 여유를 찾아보자./변종모

마을 전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산비탈에 고요하게 자리한 스페니쉬 모스크(Spanish Mosque)다. 작은 냇가를 지나 수심을 벗어나듯 오르막을 오르면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하얀색 모스크. 바다 위의 등대처럼 우뚝한 그곳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흰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맑은 그림 같다. 누군가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처럼 정성스럽다.

나는 날마다 그 언덕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한낮의 투명에 가까웠던 푸른빛이 변해가는 시간을 조우하기 위해 매일 저녁 언덕에 올랐다. 이상하게도 푸른 마을은 해가 지면서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짙은 인디고블루가 된다. 파랑이 젊은이라면, 낮이 청춘이라면 기울어가는 밤은 빛을 잃고 돌아 앉아야 할 일인데, 더욱 짙고 푸른 젊음으로 거듭 태어나는 이상한 풍경이다. 이도록 청춘은 뜨겁고 강렬한 것일까? 아마도 이 마을은 먼 미래에도 오늘처럼 계속 젊어 있을 것이다.

푸른 마을은 해가 지면 더 짙은 인디고블루로 물든다. 더 짙고 푸른 젊음으로 거듭나는 이상한 풍경이다./변종모

천천히 세상의 모든 파랑과 그 파랑에 뒤지지 않는 지금 현재 당신의 가장 젊은 순간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나도 다시 한번 그곳으로 가서 그때 가장 젊었던 나와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를 만나 골목처럼 푸르고 싶다. 바다로 가자며 산으로 데려간 친구들과 오래도록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가며 그날 봤던 파란 골목처럼 싱싱한 기억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아직도 나는 여름이 오면 바다가 생각나는 일보다 산중의 파란골목이 더욱 자주 생각난다.

PS 산중의 파란 도시, 쉐프샤우엔

주변 대도시에서 주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가는 방법이 가장 흔하다. 유명세 덕분에 차편은 부족하지 않다. 대부분 숙소는 메디나 안쪽에 몰려있으며 모로코 전통방식의 숙소를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도시 크기에 비해 비교적 숙식이 양호한 편이다. 직물이나 카펫 같은 수공예 특산품이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할 것은 없다. 겨울철만 피해서 간다면 날씨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전통 복장을 한 소수부족의 장이 열리는데 꼭 볼만하다. 여행자가 많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주변 도시 이동 며칠 전에는 반드시 버스표를 예매해 두는 것이 좋다. 아니면 비싼 값을 치르고도 낡은 택시마저 구하기 힘들 때가 있다.

◆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