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시선 권력에 저항과 조롱의 반작용

CBS노컷뉴스 김명지 기자 2018. 6.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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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부수기, 긴 머리 자르기 등 여성 억압적 문화로부터 해방 움직임
탈코르셋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는 반작용, 조롱과 비난도 잇달아
"평가의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고, 성 대결 비난 말아야"
'탈코르셋'을 선언하면서 오여경씨는 불편한 옷가지들을 모아 버리기 시작했고, 허양은 화장품을 뭉개 부쉈다. (사진=오씨, 허양 제공)
긴 머리에 뽀얀 화장, '예쁘지만 불편한' 옷차림을 거부하는 '탈(脫)코르셋' 운동이 번지고 있지만, 조롱과 비난도 만만치 않아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 "화장품을 뭉개 부수고 마음이 편해졌다"

SNS에 #탈코르셋 해시태그를 건 대학생 오여경(21)씨는 "편하다. 살 것 같다"고 했다.

30㎝ 넘게 잘라낸 머리카락이 귀 위로 찰랑거리던 오씨는 "화장을 지우고, 콘택트렌즈도 더 이상 끼지 않아서 아침 시간도 넉넉해졌다. 예전엔 몸에 딱 맞는 블라우스를 자주 입었는데, 배에 힘도 들어가고 소화도 잘 안되고 항상 불편했다. 지금은 넓은 바지에 편한 티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다닌다"고 했다.

오씨는 "예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하고 나니 이런 민낯과 옷차림이 아무렇지 않아졌다. 나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장과 머리 스타일, 옷차림 등에 있어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됐던 사회적 기준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탈코르셋 움직임이 활발하다.

SNS 상엔 '탈코르셋'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뷰티 유튜버들까지 나서서 "꾸밈 노동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획일화된 사회의 미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인 허모(18)양도 최근 SNS에 탈코르셋 선언을 했다. BB크림과 팩트, 아이섀도를 버리고 얼굴에 로션만을 바른 지 한 달째다.

허양은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고, 저도 예쁘게 보여야 한단 생각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며 "중학생 때 잠시 일했던 고깃집에선 사장님이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화장을 하고 오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화장의 시작이 자발적이었는지, 사회적 코르셋을 감지한 뒤부터였는지 불분명하지만, 탈코르셋을 결심하고 화장품을 부수고 나니 "후련하다"고 했다. 꾸밈 노동을 강요받은 기억으로부터 해방된 셈이다.

◇ "예쁜 사람들은 잘 꾸미고 다니던데"…평가하는 권력의 모습

탈코르셋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탈코르셋을 강요하지 말라는 여성 유튜버들의 동영상이 올라오는가 하면, 탈코르셋 게시물에 달린 남성들의 경멸과 조롱도 SNS를 달군다. '페미니즘은 암(癌)'이라는 댓글도 잇따른다.

길거리 인터뷰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0)씨는 "시대가 바뀌었는데, 현실 감각이 없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여자들이 하는 꾸미기의 가장 큰 목적은 남자가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예쁜 사람들은 알아서 잘 꾸미고 다니는데, 탈코르셋 운동은 오히려 자신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탈코르셋이 '외모 하향 평준화'를 향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모(22)씨는 "외모가 못나도 불평등한 취급을 안 받게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럼 우리 다 같이 못생겨지자'는 쪽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물론 지금도 유리천장 등 여성들에게 불리한 문제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탈코르셋 운동은 이런 불평등을 단순히 남녀 문제로 몰아가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직장인 김모(36)씨 역시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사회에선 남자든 여자든 성별을 떠나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걸 억압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신들만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게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말했다.

허양은 SNS에 탈코르셋 해시태그를 단 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원래 너희 같은 애들은 화장해도 못생겼고 안 해도 못생겨서 그런 걸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런 비난의 메시지 역시 여성의 미에 대한 '평가의 권력'의 단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는 "'쇼트커트'를 하고 속옷을 입지 않겠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남자가 되고 싶냐'는 반응, 자신의 가치를 외모로 판단 당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넌 못생겼다'는 반응 자체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떤 식으로 평가해왔는지를 보여준다"며 "탈코르셋은 이 같은 획일화된 미의 기준과 규범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평했다.

또 "두발 단속엔 머리 기르기로 대항했고, 한때 저항의 상징이었던 미니스커트가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미의 규범과 이에 대한 반발은 시대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변했다"이라며 "탈코르셋 운동은 자신에 대한 선택권의 문제며 단순히 성 대결 측면에서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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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명지 기자] div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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