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보다 정확.. 6·25전사자 신원 '동위원소'로 밝힌다
[동아일보]
이곳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 전사자 유해 발굴은 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언급됐을 만큼 6·25전쟁 참가국들의 큰 관심 사안이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본격적인 신원 감식이 이뤄진 지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덕갈고개는 1951년 2월 5일 ‘횡성전투’가 벌어진 장소다. 국군과 북한군, 유엔군이 뒤얽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이때 아군 75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주현 국유단 발굴팀장은 “미군과 중국군의 보급품이 뒤섞여 출토됐다. 근접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강이뼈 주변 3m 지역에 수사 현장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띠가 둘러졌다. 당시 평균 신장과 인체 뼈 206개가 이루는 해부학적 요소 등을 고려해 최초 식별 지역 주변으로 발굴 지역을 좁혔다. 만년필도 정강이뼈가 있던 자리에서 북쪽으로 50cm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됐다.
발굴된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치한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옮겨져 신원 확인을 위한 감식을 진행한다. 약 12만3000여 위의 호국용사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총 1만1206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127위에 그친다. 발굴 유해의 1%만 신원이 확인됐다는 뜻이다.
문제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유전자를 통한 신원 확인 가능성이 4분의 1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장유량 국방부 중앙감식소장은 “현재 기술은 1, 2촌 내 가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향후 DNA 분석 기술이 더 발전하리라 보고 8촌 이내 가족의 DNA 시료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단은 현재까지 유족 약 4만 명의 DNA 시료를 확보했다.
DNA 검사에도 한계는 있다. DNA로는 국군과 북한군, 중국군을 구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국유단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과 공동으로 6·25 전사자의 고향을 찾아줄 새 단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새 단서는 바로 동위원소다. 동위원소는 양성자 수(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쌍둥이 원소’를 말한다. 지구상의 공기, 바위, 물, 식물, 동물은 모두 스트론튬(Sr) 동위원소를 갖고 있다. 음식을 섭취할 때 Sr의 4가지 동위원소가 치아나 뼈에 저장된다. 정창식 KBSI 지구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동위원소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며 “6·25 당시에는 산지에서 나는 음식을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유해 속 동위원소 비를 통해 고향을 역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남한 지역 곳곳의 지하수, 머리카락 등을 확보하고, 분석을 토대로 동위원소 지도를 작성했다. 현재는 더 정확하고 세분된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쟁 실종자를 발굴하기 위한 미국 측 기관인 ‘DPAA’도 KBSI에 방문해 동위원소 분석 시설과 기술을 견학했을 정도로 연구진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동위원소로 고인의 생전 이동을 추적하는 연구 자체가 국내에선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표준 분석 방법이 마련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KBSI는 강원 속초 지역 해안가에서 발굴된 ‘동해 망상전투’ 전사자의 유해로 시범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최적 분석법이 확립되면, 신원 확인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횡성·오창=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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