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상등산사] 방금 내려온 에베레스트를 다시 올랐다, 아내를 구하러

김홍준 입력 2018.06.22. 01:12 수정 2018.07.08. 23:30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 아르센티예프 부부
에베레스트 무산소로 오른 부부
8500m 죽음의 지대에서 헤어져
혼수상태 아내가 허공에 속삭였다
"제발.. 날 버리고 가지 마세요"

아내는 베이스캠프에 없었다. 남편은 산소통을 모두 챙겼다. 그리고 내려온 길을 되짚어 다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향했다. 아내를 구하러.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왼쪽)와 세르게이 아르센티예프 부부. 중앙포토.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 1958년 하와이 태생인 그녀는 1998년 5월24일 이후 에베레스트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중앙포토

1998년 5월,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와 남편 세르게이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수차례 노렸다. 날씨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5월 22일,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랐다. 무산소 등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다. ‘죽음의 지대(8000m 이상)’에서 비박을 해야 했다. 8500m 지점이었다. 무산소 등정이었으니 산소통은 없었다. 고소증세가 덮쳤다. 게다가 프랜시스는 설맹에 걸린 듯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어둠과 눈보라 속에서 프랜시스와 세르게이는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문득, 세르게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아내와 멀리 떨어진 뒤였다. 세르게이는 아내가 먼저 하산한 줄 알고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아내는 없었다. 그는 산소통을 최대한 모았다. 그리고 아내를 찾아 나섰다. 8848m 꼭대기로 다시 향했다
에베레스트 전경. 4000명 넘는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등반 중에 사망했다. 중앙포토
세르게이는 도중에 우크라이나 팀을 만났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그 여성에게 산소통을 주고 왔다”고 했다. 세르게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영국인 이안 우달과 남아공에서 온 캐시 오다우드는 정상 300m 아래에서 멈칫했다. 보라색 형체가, 길에서 조금 벗어난 슬로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보라색’은 여성 등반가였다.
“날 버려두고 가지 마세요.”
그녀는 입술을 간신히 뗐다. 그녀의 얼굴은 왁스를 바른 듯 창백했다. 그리고 물렁했다. 눈은 풀려 있었다. 캐시를 쳐다보며 말했지만 허공에 대놓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제발, 날 버리지 마세요.”

그녀의 곁에는 러시아산 산소통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팀이 건네준 것이었다. 그녀의 안전벨트는 로프와 연결 돼 있었다. 이안 일행은 재킷에서 튀어나온 그녀의 팔을 다시 재킷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앉은 자세를 고쳐줬다. 지상이라면 힘 하나 안 들일 이 움직임들에, 일행은 숨을 계속 헐떡였다.
에베레스트 고도에 따른 사망자를 보여주는 그래픽. 중앙포토
이안 일행은 갈등에 휩싸였다. 그녀에겐 산소마스크가 있었지만 이안 일행의 산소통과 규격이 맞지 않았다. 산소통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산소마스크까지 주며 희생을 감수해야 할까. 그녀가 다시 공허하게 내뱉었다.

"왜 제게 이러는 거죠?“

“난 미국인입니다. 미국인.”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가만, 미국 팀은 며칠 전에 이미 하산하지 않았던가. 혹시 이 여자는 세르게이의 아내 프랜시스가 아닌가.

지나가던 우크라이나 팀이 왔다. 이안 일행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팀은 다른 대원들이 산소통을 이 여성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그녀의 몸은 무거웠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체중을 다리에 실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함께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무너졌다.

영하 30도였다. 이안 일행의 손가락은 얼어붙었고, 발은 급속히 온기를 잃었다. 급경사였고 슬로프는 불안정했다. 그녀는 의식을 꺼뜨리고 있었다. 모두가 절망했다. 그들은 에베레스트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봤지만, 눈앞에서 사위여가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안 일행은 한 시간 넘게 그곳에 있었다. 이제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가 위기를 맞이할 것 같았다. 그녀, 미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자 프랜시스를 놔두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올게요.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너무 늦었다. 1998년 5월 24일이었다. 그녀는 조난 뒤 사흘을 버텼다.

프랜시스의 곁에는 남편 세르게이의 장비들이 흩어져 있었다. 세르게이는 1년 뒤 발견됐다. 프랜시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내를 구하는 와중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안 우달이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붉은 원)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고 있다. 중앙포토
영국인 이안 우달은 2007년 5월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프랜시스의 사망 9년 만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그는 프랜시스에게 성조기를 덮어줬고 곰인형을 선물했다. 중앙포토
이안 우달은 9년 뒤인 2007년에 프랜시스를 다시 찾았다. 그녀를 좀 더 낮은 곳으로 옮긴 뒤 성조기를 덮어주고 테디 인형을 안겨줬다. 그리고 에베레스트의 묘지로 일컬어지는 북벽으로 밀어 넣는 의례를 했다. 함께 내려오지 못했음을 사죄했다.
1905년 첫 등정 시도 후, 에베레스트에는 4000명 넘는 등반가들이 저마다 영광의 깃발을 정상에 꽂았다. 하지만 영광 뒤엔 그늘도 있다. 1905년부터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분류한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해마다 평균 7명이 에베레스트에서 숨진다. 대부분 추락과 눈사태가 원인이지만, ‘죽음의 지대’라 불리는 8000m를 넘어서면 고소에 의한 사망이 급증한다. 에베레스트에만 200명이 움직이지 않은 채 화석처럼 있다. 이들은 등정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린부츠'. 인도 등반가로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94년 째 에베레스에 있는 조지 맬러리. 중앙포토
배낭에 기대어 앉은 한넬로르 슈마츠. 중앙포토
8500m 지점에 일명 ‘그린부츠(Green Boots)’가 있다. BBC는 그 부츠의 주인공이 젊은 인도 클라이머인 체왕 팔조르라고 보도했다. 그린부츠는 1996년 ‘에베레스트 재앙’ 중에 희생된 8명 중 한 명이다. 그린부츠는 2014년 이후론 보이지 않았다. 눈사태에 파묻혔거나 강풍에 휘말려 날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넬로르 슈마츠는 1979년 이후 계속 앉아 있었다. 자신의 배낭에 기댄 채 눈을 뜨고 있었고 머리는 바람에 계속 날렸다. 그녀는 정상 등정 뒤 자신의 캠프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서 더이상 하산하지 못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 모습으로 있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녀의 별명은 ‘독일 여자(The German Woman)'였다.

1924년 영국의 2차 에베레스트 원정대였던 조지 맬러리는 94년 째 에베레스트에 있다. 동료 앤드류 어빙과 함께 묶었던 로프를 허리에 맨 채다. 어빙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에베레스트에서 ‘잠자는 미녀(The Sleeping Beauty)’로 불렸다.

그들은 왜 오늘도 산으로 가는가.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일상등산사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