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으로 뛰어들고 .. 무작정 사막을 걷고 ..

노진호 2018. 6. 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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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대수술 나선 위기의 지상파
롤플레잉 게임 끌어들인 '두니아'
다큐멘터리풍 '거기가 어딘데??'
기존 오락문법 깨뜨린 파격 구성
초반 낮은 시청률에도 반응 좋아
식상했던 지상파 예능이 달라지고 있다. MBC는 모바일 게임을 원작으로 한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를 선보였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형식의 예능이다. [사진 MBC]
지상파 예능은 ‘냄비 속 개구리’ 같았다. ‘지상파’라는 플랫폼 우위를 믿고 고정 시청층만 바라보며 비슷비슷한 예능을 만들어왔다. 10여년 전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의 물꼬를 텄던 ‘1박 2일’(KBS)과 ‘무한도전’(MBC) 이후 연예인(가족 포함) 관찰 예능과 먹방 등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tvN·JTBC 등 유료 채널이 예능·드라마 등의 트렌드를 이끌게 됐고, 지상파는 점차 콘텐트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 걸까. 최근 지상파 예능이 달라졌다. ‘이거 정말 지상파 맞나’ 싶은 참신한 시도를 보여준다. 선두에 선 건 MBC. 지난 3일부터 넥슨의 모바일 게임 ‘듀랑고’를 원작으로 한 예능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를 시작했다. 1인 방송을 예능으로 끌어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기획했던 박진경 PD가 연출을 맡았다.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는 특이하게도 ‘언리얼리티(unreality)’ 예능을 표방한다. 지난 10여년간 ‘예능=리얼’로 받아들였던 암묵적 공식을 깨뜨린 것. 공룡이 살고 있는 ‘두니아’라는 가상 공간에 연예인과 모델 등 10명이 강제로 순간이동을 당하고, 이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인다.

박진경 PD
출연진은 정말 자신이 순간이동을 당한 듯 연기하고, 컴퓨터그래픽일 게 뻔한 공룡을 보며 놀란다. 낯선 존재를 보고 먼저 공격을 할지, 그냥 숨어있을지 등 중요한 결정은 시청자 투표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해진다. 그에 따라 이들의 운명도 달라진다. 이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인공을 키우고 미션을 해결하는 롤플레잉(RPG) 게임을 연상시킨다. 젊은 세대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게임과의 접목은 지상파는 물론 유료채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시도다.

박진경 PD는 “시청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상파’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봤던 제작진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작법부터 다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엄청난 도전”이라고 말했다.

식상했던 지상파 예능이 달라지고 있다. KBS는 다큐멘터리와 흡사한 ‘거기가 어딘데??’를 선보였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형식의 예능이다. [사진 KBS]
KBS는 ‘1박 2일’을 맡았던 유호진 PD가 연출한 예능 ‘거기가 어딘데??’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진희·차태현·조세호·배정남 등 네 명의 출연자를 극한의 상황으로 보내버린다. 첫 회는 아라비아반도의 오만에서 벌어지는 3박 4일간의 사막 탐험. 언뜻 보면 기존 ‘생고생’ 버라이어티와 맥을 같이 하지만, 내용은 지상파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법을 담고 있다. 인물만큼이나 경치가 비중 있게 담기고, 바람 소리와 언뜻 의미 없게 들리는 출연진의 수다, 그리고 자막이 복불복 내지는 미션을 대신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지진희가 하염없이 모래 위를 걷다 문득 “우리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차태현은 답한다. “사람은 항상 생각한 대로 하고 싶잖아. 근데 참 보면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또 그렇게 (계획 없이) 했을 때 더 기분이 좋은.” 이에 조세호도 “어떤 느낌일지 알겠다”며 말을 보탠다. “예전에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었다. (중략) 어느 순간 욕심을 안 내보니까 희한하게 또 기회들이 오더라.”

유호진 PD. [연합뉴스]
이런 대화에도 제작진은 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인위적 편집을 더하지 않는다. 그저 사막을 걷는 4명의 출연진을 조그맣게 담을 뿐이다. 이를 만든 KBS계열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의 서수민 예능부문장은 “춥거나 덥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이 실제 그런지,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우리는 또 뭘 배울 수 있는지 직접 ‘거기’로 가서 확인하는 것, 즉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간극을 보고 싶다’는 게 우리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유료채널의 8년 차 PD는 “지상파가 당장 제작 방식이나 생각을 바꾸기에 덩치가 큰 게 사실이지만 분명 위기감은 갖고 있을 것”이라며 “두 방송사의 이번 시도는 유호진과 박진경이라는 두 스타 PD의 제안이었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트렌드를 이끄는 유료 채널의 참신한 시도 또한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tvN은 지난 4월 숲속 조그마한 오두막에 연예인을 데려다 놓고 미니멀 라이프를 살게 한 다큐적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을 선보였고, 최근엔 기존 힐링 예능을 농촌 예능으로 분화시켜가고 있다. 자신이 먹을 동·식물을 길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담는 ‘식량일기’는 ‘어떻게 자신이 키운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느냐’는 거부감과 별개로, 동물 복지와 육식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으며 새로운 지점을 보여준다. 25일 시작하는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시골 ‘삶큐멘터리’가 모토다.

지상파의 이번 도전, 성적을 매겨본다면 몇 점일까. 기존 잣대인 ‘시청률’만 보자면 말할 것도 없이 실패다. ‘두니아’는 첫 회 3.5%(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해 3회 2.5%까지 떨어졌다. ‘거기가 어딘데??’도 3.3%로 시작해 최근까지 3.5% 수준. 그럼에도 ‘망했다’라고 섣불리 말할 건 아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고답적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적으로 가던 기존 지상파 입장에서 보면 두 프로그램은 망하기로 작정하고 나선 프로그램”이라며 “이런 시도 없이 계속 쉬운 길만 가려 한다면 시청자들부터 외면당하는 퇴행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와 유료채널 등 콘텐트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시청 습관 또한 바뀌면서 지상파 플랫폼 우위는 이미 사라졌다”며 “기존처럼 한다면 불 보듯 뻔한 싸움이다. 치밀한 기획과 시즌제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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