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우주와 맞닿은 어둠의 끝그곳엔 은하수가 있었다

제주도 푸른 밤

한라산의 명칭은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다(雲漢可拏引也)’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라산에서 가장 멋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1100고지휴게소 백록상에서 본 은하수. 안세진씨 제공

한라산의 명칭은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다(雲漢可拏引也)’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라산에서 가장 멋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1100고지휴게소 백록상에서 본 은하수. 안세진씨 제공

한라산 1100고지서 바라본 우주
아직은 ‘빛 공해’ 미치지 않아
손 내밀면 잡힐 듯 말 듯 가까워

화산 활동으로 수많은 동굴 생성
180만년 전의 제주, 화성과 비슷
외계인들에겐 최고의 탐험지역

서귀포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엔
허블망원경·큐리오시티 모형
심우주와 화성 탐사 활약 담아
생생한 우주 개발 경험도 선사


■ 제주도 푸른 별 아래

제주가 그리울 때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 밤’을 들으면 향수를 달래준다. 그의 노래는 서정적인 가사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긴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가사 중에서도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라는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 일상의 답답함을 떨쳐버리고 제주도로 가자는 내용은 지금도 공감하지만 그사이 제주도가 참 많이 변했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복잡해졌고, 오가는 인파도 늘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푸른 밤 그 별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뿐이다. 흔히 해가 저물면 여행을 멈추고 빛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곳을 여행하든 여정의 반은 어둠의 세상이다. 빛 공해가 덜한 자연을 여행한다면 더욱 그렇다. 해가 지고 별이 뜨는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기면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별들의 세상을 만난다. 잠시 고개를 들어 우주극장을 바라보자. 세계적인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젊은이, 진정한 어둠을 경험한 적이 있은가?’라고 물었다.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존재하지 않으면 별빛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대도시는 별 볼일 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밤 풍경은 온갖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몇 년 전 밤에 우주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밤 풍경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불야성의 남한과 어둠으로 덮인 북한의 이미지가 극명하게 구분됐기 때문이다. 과연 지구상에 완벽한 어둠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제주도 역시 빛 공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육지에 비하면 아직 상황이 좋은 편이다. 오래전, 별을 좋아하는 지인에게서 1100고지가 한라산에서 가장 멋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라산의 어원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다’라는 의미이니 은하수를 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 탐라에서 우주까지

제주에서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서귀포 안덕면에 위치한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가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만든 허블우주망원경과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축소 모형이 있다. 지난 50년간의 우주탐사를 되돌아보면 허블우주망원경과 큐리오시티의 활약이 눈에 띈다. 1990년에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은 첫 번째 우주망원경으로, 대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명한 우주의 모습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2012년에 화성에 착륙한 큐리오시티는 드릴을 장착한 첫 번째 화성 탐사로봇으로, 오염되지 않은 화성의 토양을 분석해 화성 탐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국내에 있는 다른 과학관에도 모형 전시물이 있지만 실물의 축소 모형은 이곳이 유일하다. 과학에서 실물 크기의 모형을 보는 건 크나큰 감동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미션을 마친 우주선 모형을 그대로 박물관에 전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실물을 접하기 어렵다. 화석이나 동물 표본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고 직접 인간이 그 안에 들어가 우주를 다녀왔다는 생각을 하면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진다. 그래서 실물이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 허블우주망원경은 나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과학기자로 일하며 첫 기획물로 쓴 기사가 허블우주망원경에 대한 것이다. 2010년은 허블우주망원이 발사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간의 특집기사는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아름다운 우주 이미지를 주로 소개했다. 뭔가 새로운 소재를 찾던 중 허블우주망원경과 인연이 있는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두 명의 천문학자를 만났고, 발사에 얽힌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90년 4월24일 오전 8시23분 마침내 허블우주망원경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우주로 발사됐다. 발사장 주변은 수만명의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우주의 속살을 관측한다는 점에서 유인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와 성격이 달랐다. 몇 달 후 허블우주망원경이 첫 번째 관측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한껏 기대했던 천문학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우주사진을 기대했지만 초점이 나간 사진이 전송돼 왔다. 자칫 2조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NASA의 입장도 난처했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핵심 부품인 지름 2.4m짜리 반사경에 문제가 있었다. 반사경의 초점에 또렷한 상이 맺히지 않았다. 머리카락 두께의 50분의 1 정도를 잘못 가공했기 때문이다. 반사경의 정밀도는 허블우주망원경의 한계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문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있는 허블우주망원경 축소 모형.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있는 허블우주망원경 축소 모형.

“반사경을 깎는 장치에 프로그래밍 오류가 발생했어요. 음수부호가 들어갈 부분에 양수부호가 들어간 겁니다. 오류 때문에 반사경의 곡면을 측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우주공간에는 대기가 없어 천체의 상은 반사경 성능만큼 좋게 맺힌다. 그런데 허블우주망원경의 반사경에 문제가 있으니 큰일이었다. NASA는 고민 끝에 보정장치를 만들어 설치하기로 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지구로 가져와 수리할 계획도 세웠지만 귀환 시 발생하는 충격이 문제였다. 결국 보정장치를 우주왕복선에 실어 우주로 보내기로 했다. 3년 연구 끝에 광학계 보정장치를 개발했고, 마침내 1993년 12월2일, 7명의 우주비행사와 보정장치를 실은 우주왕복선 인데버호가 발사됐다. 망원경 수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1994년 1월 마침내 허블우주망원경은 초점이 선명하게 맞은 사진을 보내왔다. 당시 미국 내 분위기는 인데버호 발사 전까지 언론에서 단 1건의 비난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하루빨리 우주망원경을 고치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인간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인간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수조원의 비용이 투입되고 실패의 과정을 용인하고 지켜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직접 허블우주망원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를 쓰며 매일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딘가 떠 있을 허블우주망원경을 떠올리며 지구에 돌아온다면 꼭 한번 만나러 가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다행히 큰 고장 없이 지금도 미지의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눈앞에 마주한 허블우주망원경 모형이 남달랐다. 허블우주망원경의 실물은 생각보다 크다. 무게 12.2t, 반사경 지름 2.4m, 경통의 길이는 약 13m에 이른다. 박물관에 있는 것은 축소 모형이지만 실물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해 놨다. 당장이라도 우주공간에 보내면 태양 전지판이 작동해 전기를 만들어 움직일 것만 같았다.

지난 27년간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우주사진은 과학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재료가 됐다. 우주 사진을 본 사람들은 시, 소설, 그림, 퀼트로 표현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을 위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후대에 남겼다.

화성을 탐사 중인 탐사로봇 큐리오시티.

화성을 탐사 중인 탐사로봇 큐리오시티.

허블우주망원경 모형 바로 옆엔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실제 크기 모형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실물이다. 이 화성탐사로봇의 실물이 대단한 이유는 무게가 900㎏이라는 점이다. 지구에서 약 4억만㎞ 떨어진 행성에 약 1t 무게의 로봇을 착륙시키는 일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바로 전에 화성에 착륙했던 로봇에 비해 5배가량 무거운 쇳덩어리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일은 과학계의 큰 도전이었다. 이전까지 화성에 착륙하는 방식은 에어백이 로봇을 감싸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큐리오시티에는 통하지 않았다. 우선 지름 17m짜리 초대형 낙하산으로 속도를 반으로 줄인 다음, 역추진이 가능한 스카이 크레인에 달린 밧줄에 매달려 착륙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2012년 8월5일 무사히 착륙한 큐리오시티가 성공적으로 첫 이미지를 보내오자 수십명의 과학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됐다. 당시 뉴욕 타임스스퀘어 앞에는 이 역사적인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무엇보다 팔에 소형 드릴이 달려 화성 표면 내부의 지질학적 성분을 연구할 수 있다.

화성에 도착한 지 1년 뒤 큐리오시티는 첫 번째 드릴 작업을 수행했다. 그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믿기 힘든 결과를 마주한다. 지구 생명체의 필수 원소인 탄소, 질소, 산소, 인, 황산 성분이 모두 암석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흐르는 물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점토 광물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통해 화성의 과거 환경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상태였을 거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큐리오시티가 착륙한 지점이 게일 분화구라는 것이다. 제주의 오름처럼 과거에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에 착륙하고 그 지역을 조사한다는 점이다. 화산활동이 일어난 지역은 분출 때 지표 아래에 있는 다양한 성분이 밖으로 나와 쌓이기 때문에 화성의 과거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만약 화성의 외계인이 지구로 탐사로봇을 보낸다면 제주도가 가장 유력한 착륙 후보지가 될 거다. 굳이 제주도의 오름 중 가장 유력한 후보지를 꼽는다면 분명 거문 오름이다. 우선 거문 오름은 규모가 큰 화산 폭발로 오름의 한쪽 면이 무너져내려 분화구 중심으로 탐사로봇의 진입이 용이하다. 또 하나 거문 오름은 용암이 해변까지 흘러가면서 대규모 동굴을 만들었다. 화성탐사에 있어서 동굴은 유력한 인간 거주지로 꼽는다. 최근 일본 우주항공개발기구(JAXA) 연구팀이 달의 지하에 있는 길이 50㎞짜리 용암동굴을 발견했다. 달 탐사위성 ‘가구야’가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보니 과거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동굴로 밝혀졌다. 이 동굴은 달 표면의 ‘말리우스 언덕’으로 불리는 지역에 있다. JAXA는 향후 달 탐사 때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방사선과 극심한 온도 변화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부가 무너지지 않아 땅속의 암석 등에 얼음과 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전파를 이용해 얻은 주변 지하구조 데이터를 2016년부터 자세히 조사한 결과 수직동굴에서 서쪽을 향해 100m 정도의 너비로 약 50㎞에 걸쳐 동굴이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측면에서 거문 오름이야말로 화성인 입장에서 최고의 지구 탐험지역이다.

지금이야 온갖 식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이지만 180만년 전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화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좀 더 우주적인 상상을 해본다. 한라산과 주변 오름을 태양계에 빗대어본다. 누구라도 한라산을 태양에 비유할 것이다. 나머지 행성은 어떤 오름이 대신할까. 크기로 구분하자면 한라산 동쪽에 위치한 거문 오름을 목성이나 토성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수백개의 작은 오름은 소행성 정도로 해두자.

▶필자 문경수

[전문가의 세계 - 문경수의 탐라도 탐험] (11)우주와 맞닿은 어둠의 끝그곳엔 은하수가 있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한 과학탐험가다. 지난 10여년간 과학을 주제로 서호주·몽골·알래스카 등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2010년)를 했고, <효리네민박>(JTBC), <어쩌다 어른>(tvN), <세계테마기행>(EBS)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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