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며 육아' 사라졌나요?..갈 길 먼 '일·가정 양립' 노사 인식차 뚜렷

조형국 기자 2018. 6. 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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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결혼 2년차인 직장인 장현아씨(30·가명)는 서울에 있는 한 공공기관에 재직 중이다. 6월 들어 장씨는 일주일에 3일씩 야근을 했다. ‘처리해야할 일이 많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장씨의 ‘하루 걸러 야근’에는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집에 가지 않는 상사들, 퇴근시간 따위 고려 않는 국회의 자료 요구, 연장수당 없이는 생활이 빠듯한 급여, 근무시간이 늘어질 수밖에 없는 부서간 업무협조, “왜들 이렇게 열심해 해’라며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관리자는 밤 10시 넘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까지 장씨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된다면 장씨가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씨가 아이 갖기를 2년째 미뤄온 것도 그런 이유다.

장씨의 회사 분위기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 아이들은 1년 만에 다 자라지 않고, 돌봄을 고민하는 삶은 계속 이어지지만 어쨌든 장씨의 직장에서는 법이 정한 최소한의 ‘일·가정 양립’은 지켜진다. 문제는 한국 사회 대부분 직장의 일·가정 양립 여건이 최소한도에 맞춰져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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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가정 양립에 대한 회사와 노동자의 인식 차는 상당하다. 회사는 ‘잘 하고 있다’고 보는 대부분의 일·가정 양립 제도를 두고 근로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같은 인식 차는 한국 사회의 일·가정 양립이 아직 ‘노동자의 권리’로 인식되기보다 ‘사업자의 시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가정 양립 둘러싼 노사간의 ‘온도 차’

일·가정 양립에 대한 회사와 노동자의 인식 차가 설문으로 확인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관련 법에 따라 정부는 2011년 이후 매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실시해왔지만, 조사 대상을 회사 인사담당자로 국한해 설문에는 사측 입장만 반영됐다. 이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최초로 근로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일·가정 양립 근로자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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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이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30~44세 임금노동자 1000명, 그리고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1000곳을 표본추출해 조사한 결과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이들의 인식 격차는 뚜렷했다. 먼저 ‘출산전후 휴가제도’의 경우 노동자의 66.8%는 ‘쓸 수 있다’고 응답했고 14.5%는 ‘쓸 수 없다’고 답했다. 반면 사업체들은 81.8%가 ‘제도가 도입돼 있다’고 밝혔고 18.9%가 ‘제도가 없다’고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도 상황은 같았다. 직장에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39%, ‘쓸 수 없다’는 답은 29.5%였다. 나머지 31%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반면 회사들은 60.9%가 ‘쓸 수 있다’고 했고 39.1%는 ‘쓸 수 없다’고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10명 중 4명에 그치지만, 정작 이들이 일하는 회사들 10곳 중 6곳은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임신·출산 후 복직’에 대한 노동자와 사측의 반응 역시 온도 차가 났다.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임신·출산 후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비율은 38.7%에 달했다. 그러나 회사 73.7%는 ‘출산휴가 종료 후 복직’한다고 답했다.

‘육아휴직’도 격차가 컸다. 노동자의 34.9%는 ‘육아휴직 할 수 있다’고, 34.1%는 ‘할 수 없다’고 해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쓴 적 있다’는 노동자는 9%였다. 하지만 회사들의 59.1%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고 답했고, 또 54.5%는 ‘활용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답한 노동자는 9.3%에 그쳤지만, 이렇게 답한 회사는 46.2%에 달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쓸 수 있다는 노동자는 17.1%였지만 쓸 수 있다는 회사는 38.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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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하는 노동자는 많았지만, 야근을 시키는 회사는 없었다. 노동자 16.9%가 ‘거의 매일’ 야근을 한다고 답했지만 같은 답변을 한 회사 비율은 2.9%에 그쳤다. ‘1주일에 2~3일’은 각각 25.3%와 11%, ‘1주일에 1일’은 9.1%와 7.1%였다.

주말에도 ‘일 시키는 회사’보다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거의 매번’, ‘1달에 2~3회’, ‘1달에 1회’ 주말근무를 한다는 노동자는 50.2%였지만 회사의 76.7%는 ‘주말야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에 노동자 43.2%(전혀 그렇지 않다+그렇지 않다)는 아니라고 답했지만 회사의 75.1%(매우 그렇다+그렇다)는 자유롭다고 응답했다.

‘연차를 쓰지 못하는 이유’에서도 노사의 답변이 갈렸다.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선택한 답변은 ‘상급자·동료의 눈치(32.6%)’, ‘일이 많아서(28.3%)’ 등이었지만 회사는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25.6%)’, ‘연차 부여일수가 많아서(16.2%)’ 순이었다. 연차 사용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노동자들은 ‘연차사유 묻지 않기 등 사내눈치문화 개선(31.3%)’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나 회사는 ‘미사용 연차 금전 보상 개선(25.5%)’을 꼽았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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