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주52시간 근무 도입 속도..특수직군은 난제

이진경 2018. 6.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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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BK기업은행 홍보실은 6월 주 52시간 시범운영을 해보고 있다. 조간신문 모니터 당번은 오전 6시30분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이다. 저녁 가판신문 모니터 담당은 오후 7시까지 있어야 하기에 오전 9시에 출근한다. 공휴일 당번(4시간 근무)은 전날 오후 2시에 퇴근한다. 이런 식이면 주 45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다른 부서들도 오후 6시 모든 업무용 PC에 자동으로 팝업창이 떠 연장근로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한 직원은 “야근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잘 정착된다면 삶의 질이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2. 여의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이면 시작된다. 전날 세계 증시 상황을 살피고 조간신문을 훑으면 오전 7시30분 회의 시간이 다가온다. 회의 후에는 오전 9시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전화를 통해 기관 투자자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아침 업무가 끝나면 비로소 기업 탐방이나 기관 발표 행사 등에 참석한다. 외부 일정 소화 후 다시 사무실로 복귀, 보고서를 쓴다. 빨라야 오후 7시쯤 끝난다. 주말에 나와 일하거나 자료 분석으로 날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 애널리스트는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면 명목상 퇴근하고 집에서 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청이 지난 20일 산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52시간 근무제 위반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6개월 유예했지만 금융권은 그와 무관하게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권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1년 유예받은 부문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단속·처벌 6개월 유예가 나오기 전에도 주 52시간 도입 취지에 공감하면서 장시간 근로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 없이 도입을 앞당기려다 보니 잡음이 적지 않다. 은행 특수영업장 근무자나 증권사 애널리스트, 영업 등 특수직무군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연근무제 등 속속 도입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대체로 주 52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PC오프제나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곳이 많다. 일반 영업점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업을 하기에, 전후 준비·정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52시간 근무제의 조기도입에 대해 은행 노·사 모두 공감하고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가 관련 안건을 논의 중이다. 금융노조 소속 33개사 중에는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공기업이 포함돼 있어 이들 공기업은 7월1일부터 도입한다. 같은 산별 노조 내에서 일부만 도입을 한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금융노조는 시중은행도 조기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들도 앞서 지난 4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에서 요청을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에 각 은행들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부서별 근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증권업계도 근무시간 단축 방안을 고민 중이다. KB증권은 PC오프제와 유연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유연근무의 경우 시차출퇴근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6월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한국투자증권이나 삼성증권은 매주 수요일을 패밀리데이로 정해 오후 5시 강제퇴근을 시행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NH농협생명 등 대형 보험사 위주로 다음달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주로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근로시간을 맞추면서 1년 동안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에 차질없이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평균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선택근무제와 탄력근무제 등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바로 도입하지 않는 보험사들도 PC오프제 등을 통해 근무시간 단축 실험에 나서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근무시간 단축을 위해 커피 마시는 시간도 아껴 근무에 집중하고 야근은 최소한으로 줄여 전반적으로 빨리 퇴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말·밤샘 근무 많은 직무 어떻게

문제는 금융권에는 ‘9 to 6’ 근무가 힘든 특수 직무가 많다는 점이다. 은행의 경우 24시간 근무하는 공항영업점을 포함해 애프터뱅크, 주말 영업점 등 근무시간이 다양하다.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기도 한다. 기업금융 담당 부서는 정기적으로 결산이 끝나고 외감보고서가 나오면 신용평가를 해야 하고, 감사부서는 금융감독원 감사를 앞두고 밤샘근무가 많아진다. 외환딜러는 밤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은행 사용자협의회는 △인사 △경영 △자금관리 △재무 △여신심사 △경영계획 △연수원 △안전관리실 △정보기술(IT) △기관영업 등의 직무는 바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며,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금융노조는 일관 도입을 주장하면서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증권 영업점은 주식 매매 시간에 매여 있어 유연근무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개장은 오전 9시지만 오전 8시부터 주문이 시작돼 오전 10시, 11시 출근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영업직의 외근은 근로시간을 산정하기도 어렵다. 애널리스트나 해외주식시장 거래자도 주 52시간이 지켜지기 쉽지 않다. 김호열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증권사 다양한 직군에 대해 사측은 유연근무제를 하면 된다는 식으로 모른 척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업권도 영업·홍보 등 부서는 외근이, 전산 등 특수부서는 주말·새벽 근무가 많다. 고객의 보험 가입여부를 검토해 결정하는 언더라이팅과 보험금 지급을 심사하는 클레임 담당 직원도 야근이 잦다. 보험사 관계자는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것은 암묵적으로 합의해 알아서 근무시간에 넣지 않고 있는데 정부에서 분명하게 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5개 업종을 제외하면 무조건 주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탄력근무도 법적으로 3개월까지만 허용돼 활용도가 낮은 실정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인력 보강이 필요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 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력수급계획을 짜놓는데 52시간 도입 등 갑작스런 변수로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다면 시간이 지나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경·백소용·조병욱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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