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 '난민괴담'.."외국인남자 마주치면 겁나"

김희래,이희수 2018. 6. 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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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난민의 날인데..제주 예멘난민 반대 靑청원 30만명
20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에 위치한 제주출입국 외국인청 종합민원실에서 외국인 거주자들이 체류기간 연장, 체류자격 부여 등을 위해 통합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희래 기자]
"우리는 지금 제주도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어요. 예멘 사람들이 한국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일 오전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사 앞에서 만난 예멘인 압둘라 만 알가드르 씨(30)의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예멘에서 격화되고 있는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다시 한국 제주도로 온 그는 난민 신청을 위해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을 방문했다. 그는 고국인 예멘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패닉(Panic)'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압둘라 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잠잘 곳은 물론 먹을 것, 마실 것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공포를 피해 제주도에 오긴 했지만 압둘라 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제주도에 체류 중인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중 그를 포함한 100명가량이 직업을 찾지 못해 생계 유지가 막막한 상태다. 게다가 예멘인의 제주도 이탈을 막는 '출도제한 조치'가 지난 4월 30일부터 시행 중이어서 당장 취업을 못 하고 있는 난민들이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제주도에서 취업에 성공한 예멘 난민 중 '일이 힘들고, 보수가 적다'는 이유로 취업을 포기하는 인원이 속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제주도민들은 눈총을 보내고 있다.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 따르면 지난 14일 열린 예멘 난민 신청자를 위한 취업설명회를 통해 예멘 난민 70여 명을 어선 선원으로 연결해줬지만 현재 10여 명이 취업을 포기했다. 제조업 등 원했던 업종이 아니고 보수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예멘 난민 신청자 190여 명이 양식장 등에 취업하거나 일할 예정이었지만 일에 대한 이해 부족, 의사소통의 어려움, 종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취업을 포기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택시기사로 30년간 일한 정성환 씨(69)는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취업을 시켜줬더니 일하기 싫다고 하는 건 경우가 아니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멘 난민들은 자신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지만 제주도 내 전반적인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 19일 제주의 예멘 난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제주지역 '맘카페(주부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예멘 난민들을 조심하라는 경고글과 함께 '난민 행동수칙'이란 제목의 게시물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난민들 사이 일종의 행동수칙 같은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장애 여성에게 접근하라' '무조건 한국 여성을 임신시켜라' '한국 국적 취득을 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해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괴담 수준의 이야기지만, 이따금 외국인 체류자들을 마주치는 제주지역 여성들은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제주 서귀포시 항구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 모씨(23·여)는 "야간에 술을 사러 오는 외국인들이 많다"며 "아무리 '카더라' 식 소문이지만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기국숫집을 운영하는 고 모씨(62)도 "가끔 취한 난민들이 가게 내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다"며 "불법체류자들이 쫓겨나기 싫어서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어 외국인들 방문을 꺼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예멘 난민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폄하하는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유럽에서 이슬람 난민들이 오로지 강간만을 위한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더라"며 "우리나라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에서 자국민이 저지른 5대 강력범죄 2만6241건 중 강간·유사강간 사건은 6294건으로 비율은 24%에 달한다. 반면 이슬람권 국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키르기스스탄 등 세 나라 출신 범죄자들의 5대 강력범죄 758건 중 강간·유사강간 건수는 4건으로 비율은 0.5%에 불과하다.

"국민 세금으로 난민이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헛소문도 떠도는 중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예멘 난민이 1인당 매월 138만원을 받는다던데 이럴 돈이 있으면 취업 못 한 우리나라 청년이나 지원하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난민법 제40조에 따르면 난민신청자는 신청 후 6개월간 취업이 불가해 생계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난민인권센터는 생계비 예산을 분석한 결과 2016년 난민신청자 중 생계비 지원자는 4.25%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원금도 41만9000원가량에 불과했다.

제주도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찰은 난민신청자들이 몰려 있는 숙소 주변과 유흥가 인근, 주요 도로변 등에서 순찰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부정적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20일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게재된 '제주도 난민 수용 반대 청원'에는 총 30만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 김희래 기자 / 서울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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