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의 2002년 기적 다시..'레게 머리' 젊은 지도자로 돌아온 시세 감독

김지한 2018. 6.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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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알리우 시세 세네갈 감독. [AP=연합뉴스]

레게 머리에 정장 차림으로 벤치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지도자.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선 세네갈의 알리우 시세(42) 감독은 32개 본선 진출국 감독 중 최연소답게 외형도 톡톡 튄다. 알고 보면 16년 전 한국·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세네갈의 주장으로 '8강 돌풍'을 일으켰던 세네갈 영웅. 그는 지도자로서 또한번의 돌풍을 예고하고 나섰다.

시세 감독이 이끄는 세네갈은 20일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H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폴란드를 2-1로 제압했다. 조 톱 시드를 꺾는 파란이었다. 경기 내내 서서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어낸 시세 감독은 "이 세대가 많이 인정받고 존중 받아야 한다. 우린 누구와도 싸울 수 있다"며 16년 만의 월드컵 본선 승리에 크게 기뻐했다.

2002년 6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우루과이전에서 골이 터진 뒤 동료들과 기뻐하는 알리우 시세(왼쪽). [AP=연합뉴스]

프랑스,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다 2012년부터 세네갈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시세 감독은 39세의 젊은 나이였던 2015년 세네갈 대표팀 감독이 됐다. 그는 자신이 주장으로 활약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8강 돌풍'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당시 프랑스와의 개막전(세네갈 1-0 승)을 비롯해 조별리그 2경기와 16강, 8강 등 총 4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조국의 기적을 이끌었다. 지난 3월 국제축구연맹(FIFA)과의 인터뷰에서 시세 감독은 "벌써 16년이 흘렀다. 당시 우리는 강팀들을 상대로 모험을 펼쳤고, 그 누구도 우리를 막지 못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집중했고, 즐겼다"고 말했다.

물론 최고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시세 감독은 2002년 9월 1900여명이 사망한 역사상 최악의 해상 사고였던 세네갈 줄라 페리 침몰 사고로 11명의 가족을 잃었다. 당시 그는 이웃 국가인 나이지리아와의 자선 경기를 주최하고, 스스로 5000파운드를 기부하는 등 세네갈 축구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2009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시세 감독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 지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축구는 보편적인 스포츠다. 축구를 넘어 질적으로도 능력있는 흑인 지도자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 아프리카와 세계 축구를 대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20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알리우 시세 세네갈 감독. [AP=연합뉴스]

그새 2006년 독일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대회 본선에 나서지 못한 조국의 월드컵 실패를 멀리서 지켜봤던 시세 감독은 세네갈 지휘봉을 잡고 팀 체질을 바꿨다. 유럽에서 가능성있는 활약을 펼치던 사디오 마네(리버풀), 체이쿠 쿠야테(웨스트햄) 등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쿠야테는 "시세 감독은 아무도 나를 모를 때던 2012년에 벨기에를 처음 찾아왔던 지도자다. 늘 동기 부여가 될 만 한 말을 하고, 선수들과 가까이 지내려 했다.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선수 개인기를 중시하는 다른 아프리카 팀들과 달리 조직력과 준비된 움직임을 더 중요시하는 스타일로 팀 경쟁력도 키웠다. 유럽 곳곳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한데 모아 조직적인 팀으로 탈바꿈한 세네갈은 아프리카 최종 예선에서 남아공을 제치고 16년 만에 본선 티켓을 땄다. 시세 감독은 "우리가 변화시키고 있는 건 기술을 연마하는 게 아니라 사고 방식이다. 우리를 통해 아프리카 축구의 전체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우리의 최대 목표"라면서 "현 세네갈 대표 선수들은 최고의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알리우 시세 세네갈 감독. [AP=연합뉴스]

러시아 월드컵에 나선 감독 중에 유일한 흑인 감독인 시세 감독은 스스로 "아프리카를 대표해 자랑스럽다"고 할 만큼 자부심이 강하다. 그와 함께 하는 코칭스태프도 토니 실바, 오마르 다프 등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이 함께 한다. 유럽 출신들이 벤치를 대부분 지키는 다른 아프리카 팀들과 차별화돼 있다. 공교롭게 조별리그 1경기씩 치른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네갈은 아프리카 팀 중엔 유일하게 승리를 거뒀다. 그는 2002년 대회 때 자신을 지도했던 고(故) 브뤼노 메추(프랑스) 감독을 머릿 속에 떠올린다. "이 일(감독)이 내 직업이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건 브뤼노를 만난 것"이라던 그는 "브뤼노를 생각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보고, 우리는 그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아프리카 팀이 월드컵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아프리카는 그럴 능력이 있고, 점점 발전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시세 감독. 그는 "새로운 세대들은 좋은 선수를 넘어서 그 이상을 이뤄낼 수 있다. 우리에게 맞는 전략이 있고, 충분히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네갈은 25일 0시 일본과 H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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