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크리트 걷어낸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대역사 마무리(종합)

입력 2018.06.20. 15:10 수정 2018.06.20. 18:13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문화재연구소 현장설명회..단일문화재 중 최장 기간·사업비도 2번째
기존 재료 재사용률 81%.."석조문화재 수리 전범"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수리 후 공개 (익산=연합뉴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전북 익산시 금마의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간 수리를 마치고 20일 설명회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익산시 제공=연합뉴스] kan@yna.co.kr
20일 언론에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일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최근 수리를 마친 석탑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석탑의 동북측면. 2018.6.20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익산=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에 걸린 보수정비 작업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탑 유산 중 하나인 이곳은 1998년 구조 안전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은 뒤 이듬해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 결정됐다.

해체 보수를 맡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일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최근 수리를 마친 석탑 모습을 공개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향가 '서동요' 주인공이자 백제 후기에 중흥기를 이끈 무왕(재위 600∼641) 시대에 지은 건축물이다.

미륵사를 구성한 3탑 3금당 중 서탑인 이 탑은 목탑처럼 석재 2천800여 개를 짜 맞춘 형태로 석탑 양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16세기 전후 절이 황폐화하고 벼락을 맞은 석탑은 상당 부분 훼손되고 어긋난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붕괴된 부분을 시멘트로 땜질해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2001년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간 미륵사지 석탑은 이날 높이 14.5m, 6층 탑으로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가설 시설물 안에 갇혀 있지만, 당장 앞으로 넘어질 듯 위태위태했던 옛 모습과 비교하면 당당한 위용이었다. 수천년 풍화 속에서 변색하거나 마모된 옛 부재(탑 재료)와 새 부재가 조각조각 맞춰지면서 외관은 다소 얼룩덜룩했다. 옛 부재와 새 부재 비율은 각각 65%, 35% 정도라는 게 연구소 설명이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 설명회 (익산=연합뉴스) 문화재청 국립문화연구소가 20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현지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의 보수정비 언론설명회를 하고 있다. [익산시 제공=연합뉴스] kan@yna.co.kr

미륵사지 석탑은 본래 25m 높이로 추정된다. 18세기 기행문 와유록(臥遊錄)에는 미륵사지 석탑이 7층까지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탑을 어떠한 상태로 보수 복원할 것인가를 두고 학계 안팎에서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지만, 6층까지 세우는 부분복원안으로 결론 났다.

이날 현장을 안내한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7층 위로는 옛 부재(탑 재료)가 하나도 안 남은 데다 새 부재를 올리면 아래 옛 부재들이 하중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6층 축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는 단일문화재로는 최장 기간 체계적인 수리가 진행된 사례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투입된 사업비만 230억 원으로, 숭례문 복원(250억 원)에 이어 2번째로 많다.

연구소는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기술 조사연구,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손으로 긁으면 부스러질 정도로 연약한 것으로 판단한 콘크리트는 예상외로 단단해, 해체 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 미세하게 남은 콘크리트도 치과에서 사용되는 기계까지 사용해 걷어냈다. 해체 당시 나온 콘크리트는 185t에 달한다.

이후 보수공사 및 보존처리는 2013~2014년, 탑 조립은 2015~2017년 진행됐다. 구조 조사결과 미륵사지 석탑은 외부 치장석과 내부 적심의 이원화한 구조를 갖추고 있음이 확인됐다.

부재 지질조사에서는 인근 미륵산에서 캐낸 석재들을 아래로 굴린 뒤 우차 등을 사용해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증명하듯 미륵산 정상에서는 돌을 떼어낸 흔적들이 발견됐다.

연구소는 옛 부재 중 81%를 재사용하면서,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인 황등석을 캐어다가 새 부재로 충당했다. 가령 기단부 갑석은 원래 부재했으나, 기단이 물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재로 보강하는 식의 방법을 썼다.

익산 미륵사지 서측면 (익산=연합뉴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전북 익산시 금마의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간 수리를 마치고 20일 설명회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8.6.20 [익산시 제공=연합뉴스] kan@yna.co.kr

배 실장은 서측의 경우 신재가 생각보다 많이 쓰였다는 지적에 "신재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최대한 구재를 많이 쓰면서 원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1만여 점 유물 중에서는 복제한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유리구슬 등을 원장소인 심주석 상단에 묻었다. 얇은 금판에 글자를 음각한 금제사리봉영기 덕분에 미륵사 창건 배경과 발원자(사택왕후), 사리 봉영 시기(639년) 등이 밝혀졌다. 수호신상으로 제작된 석인상도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

연구소는 다음 달 말 석탑 외부에 설치한 가설 시설물 철거와 주변 정비를 시작해 12월에는 일반에 공개할 방침이다. 공식 준공식은 내년 3월 12일 열린다. 사리가 봉양된 날짜(639년 정월 29일)를 음력으로 맞춘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제적 기준을 따르면서 원재료와 기법을 최대한 보존하고, 부족한 부분은 현대적 기술로 보강해 석탑 문화재 복원의 전범이 됐다고 자평했다.

최종덕 국립문화연구소장은 "국제적으로 가장 공감을 얻는 방법으로 수리하려고 했다"라면서 "수리 과정에서 5건의 특허도 획득하는 둥 문화재 기술사 적으로도 한 획을 그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서는 전라북도 주도로 1992년 복원됐으나 문화재 복원의 최악 사례라는 비판을 받아온 맞은편 동탑 또한 화제에 올랐다.

배 실장은 "익산시와 전라북도, 문화재청, 백제추진단 등이 함께 고민하고, 문화재위원회 등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공론화를 하면서 처리 방안을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연합뉴스 자료사진]

ai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