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랭킹쇼]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위기 정당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김수형 2018. 6.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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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당사·주류 퇴장·이념 변경·당명 교체·인재 영입 등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고 김성태 권한대행 체제로 바꿨다. 이번 상황이 보수정당이 이렇다 할 혁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과거 위기의 정당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1. 천막당사 속 읍소
2004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현판을 천막당사로 옮기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비상이 걸렸다. 2002년 대선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이 2003년 말 불거지면서 당이 흔들렸다. 또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 12일 국회에서는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주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처리됐다. 민심은 야당에 분노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3월 20일 열린우리당은 45.1%, 한나라당은 14.6% 지지율(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을 얻고 있었다. 야당의 참패가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은 최병렬 대표의 사퇴로 3월 23일 전당대회를 치렀고, 박근혜 전 대표가 당대표에 당선됐다. 박 전 대표는 당의 심각성을 깨닫고 당사를 여의도공원의 '천막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반성하는 모습의 CF 등을 통해 지지를 호소했다. 총선 직전인 4월 10일 열린우리당은 35.7%, 한나라당은 26.5% 지지율로 격차를 한 자릿수로 좁혔고, 당초 100석 붕괴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영남권을 충심으로 선전해 121석을 얻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도 있어 4월 12일 정 의장은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박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2. '폐족' 낙인 속 장래 모색
역대 정당별 광역단체장 분포
올해 지방선거를 2006년 지방선거와 비교하곤 한다. 이 당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6곳 가운데 1곳에서만 승리해 지금의 자유한국당보다 더 참패했다. 2004년 탄핵 열풍에 힘입어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에 과반의 의석을 줬다. 그러나 이후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 논란이 있었고 계파 간 갈등 등으로 당의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당시 조사된 정당별 선호 분석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12.6%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은 3배 높은 43.1%(한국선거학회 조사)였다. 오죽했으면 열린우리당 회의실 배경이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였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그리고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 수도권의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장 69곳 중 여당은 1곳도 얻지 못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헤쳐 모였고 열린우리당은 소멸됐다. 2007년 대선 뒤 안희정 당시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 패해 국회로 돌아온 친노(친노무현) 인사는 거의 없었다. 당시 주류였던 친노는 퇴장으로 환골탈태를 기대해야 했다. 그리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2010년 지방선거에 도전한 안희정·이광재·김두관 지사가 당선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도 2012년 당시 총선에 출마했고, 문 대통령은 2012년 총선 당선 뒤 대선까지 도전했다.

3. 스펙트럼을 넓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을 승리했고, 2008년 치러진 총선에서 뉴타운 열풍 속에 한나라당은 친박연대의 분열 속에서 153석을 가져갔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연대와 무소속까지 합치면 보수 세력은 200석에 가까웠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은 81석을 가져오는데 그쳤다. 2004년 열린우리당 152석의 절반 정도였다.

2010년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야권의 선전으로 나타나자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주요 당직자들이 모여 환호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광옥 상임고문, 정세균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이미경 사무총장.[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변화를 꾀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변경한 것이다. 2008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중도개혁주의 정당임을 선언'으로 강령이 바뀌었다. 기존에 '많은 기회, 더 높은 책임, 더 넓은 배려'와 '소외계층의 보호'라는 문구가 삭제되며 중도개혁으로 방점을 '중도'로 바꾼 것이다. 이후에도 민주당의 이념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스펙트럼의 변화를 꾀하는 노력을 거치며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다.

2010년 통합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16개 시도지사 가운데 7개를 차지했다.

4. 당명도 당색도 사람도 교체
한나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했지만 서울은 오세훈 시장이 개표 다음날 신승하며 가까스로 지켰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지방선거에 승리한 민주당이 공약인 무상급식 정책을 실현했고, 오세훈 시장은 여기에 발목이 잡혀 시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2011년 10·26 재보궐선거는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더군다나 선거 당일 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가 접속되지 않는 '디도스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대해 특검이 실시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원희룡·남경필·유승민 최고위원이 잇따라 사퇴했고 홍준표 대표도 물러났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린 것이다. 디도스와 민주당 대표 경선으로 인해 2012년 1월 민주당의 지지율은 33.8%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0.2%(리얼미터)로 역전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2002년 2월 16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 당사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명 공모 당선자에 대한 시상식을 하고 있다.[사진=김재훈기자]
이를 수습한 것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비상대책위원장은 2012년 2월 총선을 앞두고 15년 동안 사용해온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 색깔도 전통적인 파란색 계열에서 빨간색 계열로 180도 바꿨다. 비상대책위원에 당시 20대였던 이준석 위원을 영입하는 파격도 있었다. 결국 그해 4월 치러진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절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해 민주당의 127석에 앞섰다.

당시 민주당은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물리쳤고, 박 전 대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대로 승승장구하며 2012년 대선을 준비했다.

5. 당명 바꾸고 인재 영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최고위원들이 2016년 1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현 지도부의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득, 유승희, 정청래 최고위원, 문 대표, 이 원내대표, 전병헌, 추미애 최고위원.[사진=이충우기자]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이 200석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직전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기도 했고, 2015년 12월 새천년민주연합에서 김한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갈라져 나오며 야당이 분열됐기 때문이다. 200석은 단독 개헌을 추진할 수 있을 뿐더러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의석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고 과감한 인재 영입을 시도했다. 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도왔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선대위원장을 맡겨 칼자루를 쥐어줬다. 그리고 1차 영입과 2차 영입을 통해 끊임없이 인재를 영입했다. 표창원, 김병관, 이수혁, 김정우, 권미혁, 이철희, 박주민, 김병기, 조응천 의원 등을 영입해 2016년 치러진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새누리당을 한 석 차이로 이기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6년 1월 여론조사 당시 향후 총선에서 어느 당 후보를 찍겠느냐는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37.9%, 안철수 신당 20.9%, 더불어민주당은 16.6%(한국갤럽)로 조사됐다.

6. '중앙당 해체' 선언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가운데)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18일 중앙당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수습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김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로 한국당은 중앙당 해체를 선언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곧바로 중앙당 해체 작업에 돌입하겠다"면서 "권한대행인 제가 직접 중앙당 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청산과 해체 작업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인사를 영입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권한대행은 "최대한 우리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당내 인사가 혁신 전권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혁신비대위 구성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권한대행이 '깜짝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혁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일각에서는 김 원내대표 자신부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혁신작업을 주도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또 권한대행의 '월권'이라는 점, 혁신안에 대해 의원총회 등을 거치지 않는 등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점, 당 해체와 비대위 체제가 과거에도 되풀이되던 대안이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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