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난민 갈등, 또다시 수면 위로

2018. 6. 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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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곳곳에 극우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민에 포용적인 EU의 통합 리더십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때 통합·포용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독일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된다.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이탈리아 극우·포퓰리즘 정부가 본색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지중해상에서 구조된 난민들을 싣고 온 선박의 입항을 거부했다.

이탈리아 해양경비선이 6월 12일 지중해상에서 난민구조작업을 벌이는 선박 아쿠아리우스호 쪽으로 향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탈리아 연정의 한 축인 극우 동맹당은 지난 3월 총선에서 50만 불법 이민자 즉각 추방 등 강력한 반이민 공약을 내걸었다.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도 반이민 기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정부를 구성하고 공약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면서 유럽 난민위기가 고조되고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프랑스 비정부기구(NGO) ‘SOS 지중해’는 8일부터 이날까지 3일간 지중해 리비아 해상에서 구조작전을 벌여 총 629명의 난민을 구했다. 구조선 아쿠아리우스를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 주도인 팔레르모 항구에 대려다 거부당했다. 극우 동맹당 대표로 새 내각의 내무부 장관이 된 마테오 살비니는 이런 결정을 내린 뒤 트위터에 “오늘부터 이탈리아도 인신매매와 불법이민은 안된다고 외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내 목표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우리 이탈리아 아이들에게 평온한 삶의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입항을 거부시킨 아쿠아리우스호에는 미성년자 123명, 아이 11명에 임산부도 7명이 타고 있었다.

살비니 내무장관은 앞서 입항을 거부한 남부 인접국 몰타 등 다른 나라들을 비난했다. 페이스북에 “몰타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프랑스는 국경에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스페인은 무기로 국경을 방어한다”고 썼다.

아쿠아리우스호로 떠오른 유럽국 갈등

지중해를 표류하던 아쿠아리우스는 스페인 정부가 받아들였다. 이튿날인 11일 스페인 정부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인도주의적 재앙을 피해 사람들에게 안전한 항구를 확보해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면서 난민선 ‘아쿠아리우스’의 입항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 항에 아쿠아리우스호를 수용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스페인의 포용적 조치로 유럽국 간 갈등은 잠시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불똥은 프랑스에서 튀었다. 이탈리아의 아쿠아리우스 입항 거부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작심하고 비난하면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조치는 “냉소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사법에 따라 난민구조선은 가장 가까운 항구로 가야 한다며 이탈리아를 압박했다. 돌로레스 델가도 스페인 법무장관은 “이탈리아의 국제인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마크롱을 거들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13일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초치했다. 프랑스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살비니 장관은 이날 상원에 출석해 공식 사과가 없으면 오는 15일 주세페 콘테 신임 이탈리아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취소돼야 한다고 맞섰다.

살비니 장관은 프랑스 정부가 위선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의 인구규모·경제력에 따라 난민을 분담 수용하기로 했는데 그 비율에 따라 충분히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비니는 최근 3년간 프랑스에 할당된 난민 9800여명 중 340명만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했다. “마크롱은 말을 행동으로 옮겨라”면서 반대로 마크롱 대통령을 압박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CNN 등 세계 각국 주요 언론들은 아쿠아리우스호 사태로 유럽국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이 6월 13일 상원에 출석해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 입항 거부에 대해 설명한 뒤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탈리아만 비난할 수는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EU는 난민이 처음 발을 내디딘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난민을 수용하도록 하는 더블린 조약을 맺었다. 유럽으로 들어가는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는 달라도 들어가는 입구 국가는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탈리아는 리비아 정정 불안에 시리아 내전까지 겹치면서 지난 5년간 70만명이 넘는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낮은 경제성장률, 높은 청년실업률로 신음하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 모든 문제를 난민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EU 통합 리더십

동맹당과 오성운동은 그런 반감·절망감을 먹고 자랐다. 유럽 각국이 해양 경비를 강화하면서 지난해 여름 이후 현재까지 동기 대비 유입 이민자 숫자는 7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새 리비아를 중심으로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자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새 정부가 강경책을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곳곳에 극우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민에 포용적인 EU의 통합 리더십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때 시리아 난민을 100만명 넘게 받아들이며 통합·포용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독일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난민 지위가 거부된 이라크 출신 이민자가 14세 독일 소녀를 살해한 사건이 전해지면서 반이민 정서는 최고조에 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마저 “난민 지위 획득에 실패한 사람들이 신속하게 행정법원 절차를 밟고 본국에 빨리 보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말했을 정도다. 난민 지위 불인정에 대한 이의신청 접수기간 내지는 이후 독일 체류 가능기간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기민련)과 연정의 한 축이자 바이에른 지역 자매당인 기독사회연합(CSU)은 난민정책이 너무 관대하다면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CSU 소속 내무장관 호르스트 제호퍼와 메르켈 총리 사이에 갈등도 노출됐다. 제호퍼 장관은 다른 EU 회원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독일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조치 등을 포함한 난민법 패키지에 메르켈이 서명하길 바랐다. 하지만 메르켈이 서명을 거부하자 서명식 등 행사를 취소시켰다.

CSU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 때문에 지지기반을 잃을까 우려한다. 기민련보다 더 보수적인 CSU는 난민 추방 등 극우 목소리를 내는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밀리고 있다. AfD는 반난민 구호를 앞세워 지난해 처음 의회에 입성했다. 지지세를 넓혀나가 CSU의 든든한 정치적 기반인 바이에른 지역의회까지 노리고 있다. 〈도이체벨레〉 등 현지 언론은 AfD가 올해 지방선거로 바이에른 지역의회 과반을 점하고 있는 CSU의 위상을 흔들 것으로 본다.

<박효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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