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 기로에 선 대한민국..'3개의 관문' 넘어야

정진우 2018. 6.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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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사형 집행 중단 선언 추진
청와대 "건의 접수 후 대통령이 판단"
21년간 사형 집행 0건 '사실상 폐지국'
국민 66% "사형제 폐지 반대"
개헌, 형법 개정에 진통 예상


'사형제 폐지' 기로에 선 대한민국
이르면 올해 안에 사형 집행이 공식적으로 중단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는 12월 12일 ‘세계 인권의 날’에 사형 집행을 중단하기 위한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권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 형식으로 직접 사형 집행 중단을 선언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인권위는 선언 이후 국제규약 가입과 법 개정 등을 통해 '사형제 완전 폐지'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심상돈 인권위 정책교육국장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기념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형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해 12월 인권위가 대통령 특별보고 자리에서 ‘사형제 폐지’를 요청하면서다. 지난 3월엔 대통령 개헌안에서 사형 관련 규정이 삭제되며 사형제 폐지를 위한 포석이 마련했다. 당시 청와대는 현행 헌법에서 유일하게 ‘사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제110조4항을 삭제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비상계엄하에서 사형은 단심으로 형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 조항은 그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판단한 근거로 작용했다.


21년간 사형 집행 '0건'…'실질적 사형 폐지국'
2014년 ‘경북 칠곡 의붓딸 사망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 당시 어린이 관련 인터넷카페 회원들이 ‘사형’ ‘항소’ 등을 적은 종이를 들고 선고형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우리나라는 법률상 사형제 존치국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1310명에 대해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 국내 교정 시설에 수용된 사형수도 61명(군인 4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에선 대한민국을 ‘실질적인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한다. 재판을 통해 사형이 선고되고 있지만 지난 21년간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건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12월 30일, 사형을 선고받았던 23명(살인 15명·강도살인 4명·상습강도강간 2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유영철·강호순 등 사형을 선고받은 강력 범죄자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형이 집행된 적은 없다.


법원의 사형선고 연 평균 1.6건
법원의 사형 선고 역시 눈에 띄게 줄고 있다. 90년대 연 평균 23.9건에 달했던 사형 선고(1심 기준)는 2010년 이후 1.6건으로 줄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사형폐지 운동을 벌여 온 덕분이다. 최근엔 재판부 역시 흉악범이라 해도 사형 선고에 대해선 신중을 기하는 기류가 강하다.

딸의 친구인 중학생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연합뉴스]
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된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월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사건이다. 당시 서울북부지법은 여중생 딸의 친구를 추행한 뒤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은 이씨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며 “준엄한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영원히 이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0년간 지속된 공방…헌재는 사형제 '합헌' 결정
'사형제 폐지'는 지난 20여년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슈다. 종교계에선 꾸준히 사형제 폐지를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선 연쇄살인 등 흉악범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쏟아진다. 법정 최고형인 사형제가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사형을 하는 것이 정당한 형벌인지에 대한 공방도 여전하다.

일단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는 1996년·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1996년엔 7:2의 비율로 합헌 결정이 난 것과 달리 2010년엔 5:4로 위헌 의견이 늘며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유지됐다. 향후 또 한 번의 위헌 심판이 진행될 경우 헌재에서도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지난해 9월 17~18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정부가 사형 집행 중단을 넘어 공식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기 위해선 개헌과 형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사형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에 우세한 만큼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9월 17~18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6.1%가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19~29세의 경우 응답자의 70.4%가 사형제를 폐지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사형제 존치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여론은 그간 국회의 법률 개정 시도가 무산된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99년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한 번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형제 중단 선언을 한다 해도 형법 개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법률상 사형제 폐지는 불가능하다. 사형제 중단 선언에 이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텐데 현재 여론을 고려했을 때 매끄럽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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