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로 1년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됐어요"

양승준 입력 2018. 6. 20. 04:43 수정 2018. 6. 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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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진 서재원·선 정다혜·미 이수연 인터뷰
지난해 미스코리아 선 정다혜(22ㆍ서울)와 진 서재원(22ㆍ경기), 미 이수연(23ㆍ경북)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나 환히 웃고 있다. 김주성 기자

#수영복 심사는 큰 부담 없지만

34-25-36 등 치수화는 반대

#요즘 미코는 미용실 추천 아냐

아파트 운동시설에서 몸 만들어

#졸업 앞둔 취업준비생으로

대회 경험이 삶에 큰 버팀목 됐죠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크누아홀. 정적이 깔린 무대 중앙에 앉아 있던 무용수가 일어서 서쪽으로 처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오른쪽 어깨엔 바비인형이 얹혀 있다. 정적을 깬 이 무용수를 따라 다른 여섯 무용수는 바비인형을 각자 손에 쥔 채 차례로 무대에 드러눕거나 인형을 바닥에 던지며 몸짓을 이어간다. 긴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는 바비인형은 비현실적인 미(美)의 이상향이자 상징이다. 어떤 이는 바비인형 같은 비현실적 아름다움의 이상향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누군가는 등을 돌려 제 길을 걷는다. 저 먼 이상을 뜻하는 작품 제목(‘아이디얼’ㆍideal)처럼 공연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정답은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남기고 간 화석 같은 말이 공연의 씨앗이 됐다. 이 공연엔 지난해 미스코리아 진의 영예를 거머쥔 서재원(22ㆍ경기)이 참여했다. 그는 한예종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다. 여성대회의 정점에 섰던 이의 아름다움에 대한 틀을 깨는 공연이라니. 역설처럼 보이지만 서재원은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후 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책임감이 커진 것도 이유다.

“주체적 여성뿐 아니라 ‘아름다움이 무엇일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대학 동기들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고요.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누가 정의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창작 공연을 꾸리게 됐죠.”

서재원을 비롯해 2017년 미스코리아대회 선 정다혜(22ㆍ서울)와 미 이수연(23ㆍ경북)을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해 7월 머리에 은빛 왕관을 쓴 뒤 1년여 만의 재회다.

“21학점 듣는데, 피아노 전공 교수님한테 엄청나게 혼나고 있어요”(정다혜). “졸업작품(영화) 준비하느라 바빠요. 학교에선 화석(4학년) 신세고요”(이수연). 만나자마자 학교 생활을 공유하는 미스코리아 진 선 미는 평범한 여대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정다혜는 “고작 1년 지났는데 (미스코리아)대회가 먼 일처럼 느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회를 끝낸 후 세 미스코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는 무대 밖 일상으로 옮겨졌다. 아름다움에 대한 문화적 가치는 변하기 마련. 미 담론의 한복판에 서 있는 미스코리아들도 움트기 시작한 여성주의적 미적 가치 변화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스코리아대회는 요즘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레첸 칼슨 미스아메리카 조직위원장이 지난달 미국 방송 ABC 뉴스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우린 더 이상 참가자를 외모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97년 만에 수영복 심사를 없애겠다고 깜짝 발표한 뒤다. 미스유에스에이는 수영복 심사 폐지 의사를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 양대 여성 대회로 꼽히는 미스아메리카의 새로운 변화는 국내 여성 대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미인대회에서 수영복 심사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논란의 근원지였다. 참가자가 수영복을 입고 무대를 걸으면 TV에 자막으로 신체 크기가 적힌 숫자가 뜨곤 했다. 세 명의 미스코리아는 뜻밖에 수영복을 입고 무대를 걷는 것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특정 부위를 수치화해 화면에 노출하는 건 잘못된 관행으로 보고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몸도 예술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라질 삼바를 출 때 춤꾼들 의상도 수영복 못지않은데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죠. 의상이 아니라 ‘34-25-36’ 식으로 신체 부위별 수치를 드러내고 그러면서 ‘가장 이상적인 몸매’라고 방송에서 호명하는 게 문제라고 봐요.”(정다혜)

세 사람은 미스코리아로서 환호를 들었지만 때론 눈총도 받았다. 덕분에 1년 동안 인생 공부도 크게 했다. 가수 이효리는 2013년 낸 히트곡 ‘미스코리아’에서 미스코리아를 역경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아이콘으로 노래한다. 세 청년이 미스코리아가 된 뒤 얻은 가장 큰 소득도 자신감 회복이었다. “1년 동안 또래 친구와 비교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취업준비생으로 세상 공부도 톡톡히 했고”(정다혜), 사소하게는 “엄동설한에 김장 봉사로 이웃뿐 아니라 가족에 직접 담근 김치를 먹이며 뿌듯함”(이수연)도 느꼈다.

세 사람은 ‘큰돈’ 들이지 않고 미스코리아가 됐다. 돈이 없어 미스코리아가 될 수 없다는 건 옛말이다. 막상 대회에 가면 개인 물품을 쓸 수 없다. 모두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드레스와 신발, 장신구 그리고 메이크업 제품만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시 성복동에 사는 서재원은 아파트 내 샤워실 없는 운동시설을 다니며 몸을 만들었다. 이용료가 시세의 30% 수준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한 없이 화려해 보이는 미인대회의 모습은 선입견과 달랐다.

“미스코리아가 되려면 소위 ‘빽’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며 반신반의로 지원했고요. 설사 내가 누군가의 ‘빽’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주위에서 제가 미스코리아가 돼 정말 대회가 공정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서재원)

“미스코리아들은 1~2차 사전 인터뷰에서 어떤 가치관을 지닌 채 여성대회에 참가했는지 심층 면접을 거쳐요. TV로 비치는 건 화려한 모습뿐이지만요. 미스코리아와 달리 지난 5월 한국 참가자가 세계 미남 대회인 미스터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우승하자 ‘악플’은 없고 찬사만 있더라고요. 미스코리아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이수연)

세 미스코리아는 최근 미스코리아 2018 지역 예선에 도전한 후배들을 보고 “능력이 뛰어난 분이 많아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명은 다음달 4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릴 본선 무대에 서 왕관의 주인공을 가린다. 올해로 62회를 맞은 이 행사는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과 뮤직으로 생중계된다. 지난해 미스코리아 진 선 미는 후배들에 값진 당부도 전했다.

“미스코리아에 ‘코리아’가 붙었잖아요. 그만큼 영예로운 자리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한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란 생각도 하게 되고요. 때론 버팀목이 되기도 해요. 전 미스코리아 경험을 통해 큰 역경을 만났을 때 빠르게 일어설 힘을 얻었어요.”(서재원)

“대회에 참가해보니 나의 차별화를 더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가장 아름다울 시기, 인생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니 꼭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정다혜)

“주체성을 대회에서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그 소신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요.”(이수연)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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