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훼손된 덕수궁 제 모습 찾는다..광명문 이전 착수

여태경 기자 입력 2018. 6. 19. 09:19 수정 2018. 6. 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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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처럼 사용된 광명문..올해 말까지 이전
사라진 돈덕전, 대한제국 자료관으로 재탄생 예정
덕수궁 국장화첩(1919년) 광명문. 문화재청 제공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덕수궁이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시작으로 제 모습 찾기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19일 오후 3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개최하고 올해부터 일제에 의해 변형·왜곡된 덕수궁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19년 고종 승하 이후 제 모습을 잃어버린 덕수궁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광명문, 돈덕전, 선원전의 원형을 연구해 2038년까지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경술국치인 1910년까지 13년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됐다. 당시는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포함된 넓은 궁역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덕수궁의 궁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잘려나가고 궁궐의 전각들은 헐렸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지금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길이 조성돼 덕수궁이 둘로 쪼개지게 됐고 조선왕조의 근원인 선원전 영역은 총독의 손에 넘어가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됐으며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또 덕수궁 중심영역의 공원화 계획으로 돈덕전마저 헐려나가고 함녕전의 정문이었던 광명문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유물을 보관하는 전시관처럼 변해버렸다. 앞서 문화재청은 일제 때 옮겨진 광명문을 제자리로 이전하기 위해 2016년 원래 자리를 발굴한 결과 광명문과 배치형태가 동일한 건물지 1동을 확인했다.

건물지는 12기의 적심시설(건물의 기둥을 받치기 위해 초석 아래쪽을 되파기한 후 자갈 등을 채워 넣은 것)을 가진 정면3칸, 옆면 2칸의 건물지로,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중건 배치도(1910년) 상의 광명문지와 그 위치와 배치상태 그리고 평면형태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의 광명문 모습.(문화재청 제공)

광명문은 원래 함녕전의 남쪽 행각 너머에 있었지만 일제가 1938년 석조전 서관을 증축해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할 때 현재 위치로 옮겼고 물시계인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흥천사명동종(보물 제1460호) 등을 광명문 아래에 진열했다.

광명문 제자리 찾기 공사는 이날 기공식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이전을 완료할 예정이다. 창경궁 자격루와 신기전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 보존처리하고 흥천사명동종은 부피와 중량을 감안해 경복궁 궐내각사지에 임시 처리장을 만들어 보존처리할 예정이다. 보존처리가 끝나면 자격루와 신기전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흥천사명동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적당한 장소를 검토해 옮길 계획이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축하 예식을 하기 위한 서양식 연회장 용도로 지어졌다. 고종을 만나기 위한 대기장소나 외국사신 접견장소, 국빈급 외국인 방문시 숙소 등으로 활용됐으며 1907년에는 순종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하지만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덕수궁 공원화사업 때 훼철(毁撤)됐다.

돈덕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는 지난해 완료됐으며 현재는 복원을 위한 설계가 진행 중이다. 또 올해 안으로 공사에 들어가 2021년 완공할 계획이며 복원이 끝나면 대한제국과 관련한 자료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돈덕전과 석조전 애뉴얼리포트(1911년 조선총독부, 위 사진), 돈덕전 복원 투시도(아래). 문화재청 제공

선원전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 가장 먼저 신축했던 중요한 건물이었지만 1900년 10월 화재로 불타게 되자 당시 미국공사관 북쪽 수어청자리(옛 경기여고 부지)로 옮겨 1901년 7월11일에 복원됐다.

그러다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모두 없어져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경기여고 부지로 사용되다 주한미국대사관에 양도됐다.

2003년 6월 미국대사관 기숙사 건립을 위한 문화재 지표조사 중에 덕수궁 선원전터가 확인되면서 용산 미군기지 내 부지와 맞교환하기로 합의되어 2011년 우리나라로 소유권이 다시 넘어왔다.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전(眞殿·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한 건물)인 선원전, 빈전(殯殿·왕이나 왕후 승하 후 그 시신을 모셔둔 곳)으로 사용되던 흥덕전, 혼전(魂殿·발인 후 삼년상이 지나고 신주를 모셔둔 곳)인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건물 54동, 배후림(상림원), 궁장(宮牆) 등을 복원해 나갈 예정이다.

또 올해 선원전 지역의 발굴조사를 위해 미 대사관에서 사용하던 조선저축은행 사택, 미부대사관 관저 등 건물 9동과 시설물들을 철거할 계획이다.

덕수궁 복원정비 조감도.(문화재청 제공)

har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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